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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6.09 10:35

[칼럼] 남자다운 모습은 남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 매력적인 男 스타 (본 사진은 본 칼럼과 관련 없음)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결혼정보회사(D 업체)가 1,021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이상형으로 남성은 여성스럽고(13.1%) 애교가 많고(10.1%) 날씬하고(8.8%) 상냥한 여성(8.5%)을 뽑았고, 여성은 자상하고(15.5%) 가정적이고(12%) 남자답고(8.1%) 적극적인(8.1%) 남성을 이상형으로 뽑았다.
 
이성에게 여자답고, 남자다워야 끌린다고 답변했다. 말 그대로 다른 성이기에 성의 특징이 부각될수록 끌린다. 남성은 청순하고, 지조 있고, 섹시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반면, 여성은 능력 있고 건강하고 우람한 체격을 남자답다고 보는 경향이 많다.
 
정신분석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여성의 전유물로 여겼다. 히스테리의 어원은 자궁이라는 뜻을 가진 히스테라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왔다. 여성을 예민하고, 감성적인 존재 자체로 보는 시각은 아직 여전하다. 반면 남성은 이성적이고, 감정 활동에 단순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은 남자가 훨씬 쿨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통으로 문제 되는 남성의 이야기는 많다. 고부갈등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가정 폭력을 행사하거나, 헤어진 연인을 해치거나 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 보면 전혀 이성적이거나 쿨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큰 잘못이 없는 남성도 질타받는다. 사소하게 사과할 줄 모르거나, 삐치거나, 자주 눈물을 보이는 남자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하기 전에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인정해야 한다. 태초의 인간 ‘아담’은 여호와의 명을 거스르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이브에게 받아먹었다. 바이블에 보면 여호와는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물었고, 아담은 아주 뻔뻔한 대답을 한다. “당신이 만들어 준 이 여자가 내게 먹으라고 해서 먹게 되었다”고 답변한다. 과거에 이브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사랑 고백했던 아담은 사랑하는 여인을 감싸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여인의 행동을 고발한다. 아담은 비겁하다 못해, 남자답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렇다. 태초의 남자 ‘아담’은 전혀 남자답지 않았다.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남자다움을 중요시했을까?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가 탄생한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선사시대에 남자들이 사냥 활동에 특화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건강한 육체와 사냥하면서 필요한 추진력, 집중력. 그리고 사냥 결과물을 획득하는 능력이 바로 남자답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남성중심의 가치관을 옳다고 한다면, 과연 여자다움은 무엇일까? 
 
우리는 남성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하다. 선사시대의 여성은 식솔만 관리하지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 남자 이상의 활동을 했다. 육아, 가사, 채집 이상의 생존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여자다움의 매력은 만능 멀티태스킹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여자다움은 많은 특징 중에 유독 남자가 하지 못하는 출산과 임신에 관련된 부분에 집약돼 있다.
 
사실 남자가 하는 모든 것은 여자도 할 수 있다. 여자도 사냥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성적인 기능에서마저 여자는 남자보다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정자가 있으면 난자가 있고, 몽정과 사정도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자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는 임신할 수 없고, 출산할 수 없다.
 
농업의 발전으로 재산이 발생하고, 재산의 발생으로 계급이 발생하면서 인류는 변화를 이뤄왔다. 그 과정에서 재산과 권력의 중심은 남성에게 있었다. 재산과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서 여성을 필요한 존재이자, 유일의 존재였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여성에게 평등한 힘을 내주게 된다면 남성의 힘은 그만큼 적어졌을 것이다.
 
남성중심의 사회를 이륙하다 보니 여성의 역할 축소를 위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남자다운 남자는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잔재물이 아닐까? 여성성의 매력이야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본능이라고 하지만, 남성성의 매력은 오랜 시간 만들어진 매력에 가깝다.
 
남자가 반드시 우람한 체격에 건강한 육체여야 하고, 사회적, 물질적으로 능력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꾸며진 매력에 중심 없이 남성성을 강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성은 사냥에 맞춤화된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남녀의 매력은 단순한 성적 매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남성에게는 사냥에 타고나지 않았어도 열심히 사냥해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와 여성에게는 치열한 남성 사회에 들어와 자리 빼앗지 말고, 존속 번식을 도와달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
 
상대의 매력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의 전조라면 좋은 일이다. 외모가 중요한 요즘, 성적 매력 만능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적 매력이 각자 발전에 충분한 기여 가능한 시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매력이라는 이름으로 역할을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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