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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5.07 10:21

[김윤석의 드라마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 21회 "장모란의 부탁, 엄마 강순옥 달리다!"

먼치킨 김현숙, 개연성 없는 변화가 낯선 이유

▲ '착하지 않은 여자들'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압도적인 적과 싸우기 전 밥지을 솥을 부수고 타고 온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그만큼 필사의 의지를 다지기 위한 의식이었을 것이다. 강을 등지고 후퇴할 길을 막음으로써 오로지 나가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가지고자 하는 것 만큼 그에 비례하여 댓가를 치러야만 한다. 더 크고 더 가치있는 것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사 그것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현정(도지원 분)도 그렇게 살아왔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혼자 힘으로 자신들까지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와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항상 열등감에 주눅들어 지내던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잡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이 아버지의 대신이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이 가족들을 지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항상 긴장해 있었고, 벼린 날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만큼 강하지 못했다. 김현정이 이기적이라거나 냉정하다는 말을 듣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비로소 그 필사적인 가면이 이문학(손창민 분)에 의해 벗겨지고 만다. 바랐을 것이다. 누군가 기꺼이 자신의 짐을 나눠 질 수 있는 한 사람을.

장모란(장미희 분)과 안종미(김혜은 분)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일깨우고 마는 자신의 양심이 무서운 것이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무심코 강순옥(김혜자 분)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차마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그만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만다. 배신의 댓가로 바리바리 명품을 사들고 고향집을 찾지만 이미 먼저 와 있던 강순옥을 본 순간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만 쫓기듯 도망쳐야만 했다. 그녀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곳이었지만, 그러나 그곳은 이제 그녀가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고향집도, 강순옥도. 아들 이루오(송재림 분)를 정마리(이하나 분)에게서 떼놓기 위해 나현애(서이숙 분)는 한충길(최정우 분)에게 이루오의 친아버지 행세를 해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인간은 어디까지 파렴치해질 수 있는가.

장모란이 병을 얻은 이유였다. 그리고 강순옥에게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혼자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김철희(이순재 분)로부터 모든 진실을 듣고 난 뒤, 더구나 김철희가 사고까지 당하면서 원망과 미움에 더해 죄책감까지 더욱 그녀를 궁지로 내몰고 있었을 것이다. 잊기 위해서라도 일에 매달려야 했고, 더욱 악착같이 학대하듯 자신을 궁지로 내몰아야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기댈 곳이 생겼다.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떼를 써도 좋은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이 그녀에게도 생겼다. 차라리 엄마에게 기대는 어린 딸과 같았을 것이다. 나이차이 나는 언니에게 매달리는 어린 여동생과 같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그치며 살았던 것일까.

그런 것들을 남자다운 행동이라 착각한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그러나 가족들마저 모르는 그의 행동에 모두가 걱정하고 만다. 혹은 워낙 어려운 일들이 많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랑곳않고 자신의 선의에만 도취되고 만다. 가족으로서 뒤늦게나마 땀흘려 일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래서 그 선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가족들이 무려 30년만에 돌아온 가장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고작 그런 것들이었을까? 시간은 벌써 이만큼이나 흘렀고, 어느새 가족 모두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굳이 김철희가 나서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낯선 것이다. 어색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역시 김철희 나름의 각오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늦게나마 가족으로서 인정받고 싶다.

그래도 사랑은 뒤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러날 곳부터 살폈다. 도망칠 곳부터 먼저 마련했다. 생존본능이다. 뒤가 없으면 죽는다. 어머니와 맞설 수는 없었다. 아직 어린 이도진(김지석 분)에게 새엄마인 나현애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너무나 거대한 상대였다. 양보하고 배려한다. 그나마 이번에는 조금 솔직해지더라도 나현애를 거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현애는 바라고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용감해진다. 정마리에게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약간은 떼도 쓰고 협박도 곁들인다. 비로소 동생 이루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이미 정마리의 마음은 이루오를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만 늦게서야 본격화된 삼각관계가 조금은 지치게 만든다. 정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결과도 정해져 있다.

거의 먼치킨이다. 요리는 강순옥마저 감탄할 정도이고, 장사수완 역시 정작 가게의 주인인 안종미마저 넘어서는 수준이다.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스킬 역시 상당한 경지에 있다. 한심할 정도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화투 정도이던 김현숙(채시라 분)이 이제는 못하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기는 때때로 지나치게 복잡하게 꼬인 갈등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처럼 특정인물에게 극단적으로 많은 것들을 몰아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중심이다. 하지만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개연성이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어색할 지경이다.

하여튼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관계도 아니다. 걷어차주겠다 말한 적 있다고 진짜 걷어차달라고 부탁하는 장모란이나, 당황해하면서도 해달라니 호텔로비에서 처음 보는 남자를 향해 걷어차려 달려가는 강순옥이나. 어쩌면 과거 장모란이 약혼자로부터 파혼당하고 김철희에게 한동안 의지했던 것이나, 남편 김철희가 죽었다 여기고 모든 것을 강순옥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것들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래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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