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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2.17 06:57

[칼럼] 현대판 민며느리제 만연, "남녀관계에 페미니즘은 없다"

▲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 포스터 ⓒ우노필름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생긴 지 2세기가 지났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상 가장 먹고살기 풍족한 세상에 살게 되면서 인류는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긴 인류는 의식, 인권, 평등 영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이란, 여권주의를 뜻하는 단어로서 현대에는 여성 인권보다 성 평등사상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조된다.

양성이 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남녀는 과연 평등하게 지내고 있을까?

얼마 전, 친구네 언니가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 전부터 소식을 간간이 듣고 지냈다. 친구네 언니는 당시 예비 신랑 측에서 분당 혹은 한남동에 신혼집을 마련해줄 테니 신부는 약소하게 3천만 원 혼수만 해오라고 했다고 했다. 친구네는 집안의 첫 결혼인지라 요즘 결혼 준비에 대한 추세가 어떠한지 정보가 없다며 당황했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남자가 집을 해 오고, 여자가 혼수를 해가는 것이 막연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했다. 주변에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개념이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 보니, 친구네 언니의 예비 신랑은 띠동갑 차이의 사업가였다. 남자가 나이가 많고, 경제적으로 풍족했다. 예비 신부가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오래 교제해왔고, 남자 측은 결혼을 더 서두르고 싶은 눈치였다. 사연을 모두 알고 나니 예비 신랑이 집을 해오는 문제는 특수한 것이었다. 남자는 집 마련이 어렵지 않은 형편이고, 여자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사회적, 경제적 처지가 다르다 보니 결혼 준비에서 발생하는 비용 처리는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 달에 약 3~400만 원 정도 버는 내 친구 D는 아직 취업하지 못한 남자친구와 결혼 비용을 자신은 4, 남자는 6으로 하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같은 업종을 햇수로 6년 일해 온 친구 D는 남자친구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형편인데 말이다. 여성신장과 페미니즘이 만연한 세상에서 결혼으로 발생하는 비용만큼은 평등하지 않은 걸까? 여자가 더 어린 나이기 때문일까?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는 막연하다. 아니면 남자가 더 많이 벌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내 친구는 왜 결혼 비용에서 40%만 부담하기로 한 것일까?

남녀의 입장은 경우의 수가 많은데 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개념이 보편적일까?

현대에 결혼하는 모습은 마치 민며느리제를 떠올리게 한다. 삼국시대 옥저의 혼인 풍습이었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혼례 풍습은 아니었다. 실제로 여자 집에 지참금을 주고 어린 신부를 데려오지는 않지만, 결혼에 발생하는 비용의 차이를 생각하면 지참금을 지급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고구려에서 처녀들을 탈취하여 비첩(婢妾)으로 삼는 것을 대항으로 처녀성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한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특히 남자 측이 부유하고 여자 측이 빈곤한 경우에 많이 행해진 것으로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대판 민며느리제가 보편적이다. 왜 그럴까?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경제포럼(WEF)이 2009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글로벌 성 격차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같은 일을 한다고 봤을 때 성별 임금 차이는 특히 커서, 125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또한, 일부 직종의 남녀 불균형 성비가 임금 격차를 부추기고 있다. 아직 사회적으로 양성은 평등하지 않다. 보편적으로 남녀의 경제적 처지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고작 67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신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 생활 속 여성신장은 뜨겁게 체감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첫 총선에서 남녀 모두 투표권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와 신탁통치를 겪은 우리에게 여성 투표권은 페미니즘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70년대부터 중공업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한 우리에게 여성의 사회적 모습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성장하면서 구조의 변화도 이루어진다.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사회처럼 우리의 인식은 빠르게 따라가지 못한다.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남녀는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판 민며느리제가 만연한 까닭을 여하를 막론하고 비난할 수는 없다. 옥저 사회의 특수성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옥저 시대처럼 부유한 남자만 결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공평하다. 혼인을 서약하면서 남녀는 살림을 합치고, 삶을 공유하게 된다. 혼인이라는 게, 노고를 함께하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혼전에 각자의 처지를 존중해줘야 하지 아닐까?

남녀관계에 페미니즘은 없다. 그리고 결혼 준비를 통해서 민며느리제를 떠오르게 해서도 안 된다. 옆집을 따라서 결혼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복잡한 사회와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금, 현대판 민며느리제나 새로운 결혼 풍습은 없어야 한다. 애정과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남녀 삶의 합체 과정에서 서로의 처지를 격려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진정한 합체 과정이 아닐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함께 누리자고 건네는 낭만. 그것이 존재하는 결혼이 진짜 우리가 바라는 혼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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