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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사회
  • 입력 2015.02.07 07:25

'일베'와 '관심'의 이유, '극단의 위험성을 경계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었을 때 인간은 소속과 애정에 대한 즉, 사회적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마저 충족되면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은 자존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 윗단계가 바로 마지막 단계인 메타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관계는 보다 복잡해지고 구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인구가 늘면 비례해서 개인과 개인의 거리는 조밀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이 가지는 비중이나 가치는 줄어들고, 자기만의 영역마저 타인에 의해 침범당하게 된다. 굳이 원하지 않아도 타인과의 관계가 강요되고 자신을 얽매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얼굴조차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비대해진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새 집단에 매몰되어 자신을 잊어가기 시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한 방식일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굳이 생존을 위해 걱정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먹거나 입거나 숨쉬고 배설하는 모든 생리적 행위는 인터넷 밖에서 이루어진다. 안전 역시 이른바 '신상털기'라는 행위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실제 일상까지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란 어딘가에 소속되어 애정과 신뢰라는 따뜻한 관계를 가지고 싶은 사회적 욕구일 것이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현실의 세계와는 달리 오로지 인간의 관계만이 존재하기에 더 따뜻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인터넷이 단순한 정보와 지식의 도구를 넘어서 삶의 일부로까지 여겨지게 되는 이유다.

어딘가 소속되었다. 직접적인 관계는 아닐지라도 일단 같은 집단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어떤 유대감같은 것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다음단계는 무엇일까? 인터넷에서도 네임드라 불리우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특별한 개인들이 존재한다. 커뮤니티에서의 관계란 바로 이들 네임드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네임드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서로를 특정하고 서로의 관계를 정의한다. 비로소 의미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바로 그런 네임드를 존재케 하는 것이야 말로 모두의 인정이고 존경일 것이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

▲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아픔을 그린 배우 김혜진의 작품 ⓒ김혜진

원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특정한 개인의 말이나 행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기억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그렇게 모두가 아는 이름 '네임드'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그같은 네임드의 위치나 영향력을 탐내는 어떤 사람들은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려 한다. 그런 행위를 초창기에는 점잖게 '매명', 즉 이름을 팔려는 행위라 비웃고는 했었다. 말했다시피 인터넷에서의 욕구란 소속과 애정, 그 다음이 바로 인정과 존경의 욕구이기에 그를 위해 상당한 무리수까지 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낚시'도, '주작'도, '어그로'도 그렇게 생겨난 용어들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비난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그로부터 만족을 얻는 이들이 있었다. 악명이든 오명이든 명성은 명성이다.

일베. 정확히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따뜻한 유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베라고 하는 공간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은 오로지 서로에 대한 비하와 무시, 경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같은 자기모멸적 관계는 개인의 열등감에 기생한다. 자기를 비하하고 학대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헤집고, 타인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통해 보상을 받으려 한다. 어차피 서로가 하찮고 한심한 존재이기에 자신 역시 하찮고 한심한 채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소속감을 얻게 되었다면 그 위를 바라보게 된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강한 비하와 멸시가 그 보상으로써 더 큰 자존감을 바라게 되는지 모른다. 바로 일간베스트다. 모두가 자기가 올린 게시물을 주목하고 공감이든 비판이든 반응을 해준다. 자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준다. 어떤 방식으로든.

최근 두 가지 일베와 관련한 큰 사건이 미디어를 장식했다. 청와대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전화를 걸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다니던 단원고의 교복을 구해입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물고기들이 훼손했을 것을 빗대어 '친구먹었다'라는 게시물을 만들어 올렸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에서 경찰의 수사결과 체포된 범인들은 한결같이 '관심'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었다. 주위로부터 '관심'받기 위해 그같은 행위들을 저질렀다. 국가원수가 머무는 대통령관저를 폭파하겠다 허위로 협박하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들이 단지 '관심'을 받고 싶다는 동기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일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보의 바다인 만큼 인터넷에서는 그에 비례하여 허위정보들도 넘쳐난다. 대부분 이유는 높은 조회수를 바라서다. 추천수도 높으면 좋고, 무엇보다 댓글이 많이 달리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흔히 이런 경우를 인터넷 초창기부터 '낚시'라는 단어로 일컫고 있었다. 단지 인간관계의 따뜻함이 배제된 일베라고 하는 공간의 특성상 그 일탈의 방향이 사회의 통념마저 넘어서고 있었다는 것이 이번 두 사건에서 보여지는 특별함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은 절박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다른 가능서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각박하고 맹목적인 본능이 가엾기조차 하다.

역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회가 너무 고도화되었다. 인구도 너무 많고, 개인과 개인의 거리도 너무 조밀하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는 갈수록 미약해지고, 자존감이라는 것을 느끼기에 현실은 너무 열악하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가상의 공간에 기댄다. 가상의 관계에 의지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자존감이 너무 약하면 인터넷에서까지 여전히 조밀하고 복잡한 관계에 지쳐한다. 그렇다고 혼자인 것은 싫다. '관심'이 사고를 부르는 이유다. 더구나 관계에 서툴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서툴기 쉽다. 인간에 대한 무지가 때때로 넘어서는 안되는 선까지 넘어서고 만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악해서가 아니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관심은 받고 싶은데 인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아는 관계란 '일베'가 유일하다.

아이들이 말과 행동을 짐짓 상스럽게 거칠게 꾸며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주위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그렇게라도 주위를 위협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한다.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일베에서 일부러 위악으로 자신을 꾸미려는 이유와 같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러 사고를 치고, 그로 인해 주위를 곤란하게 만들고, 그럼에도 그것을 무용담처럼 주위에 떠들게 된다. 자존감이 지나치게 약한 경우도 상습적으로 거짓말까지 해가며 거칠고 위험한 자신을 연기하여 주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한 집단의 위악이 자기단조와 연마를 통해 보다 첨예화되며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세상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증거다.

이를테면 인터넷이란 현실의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들의 도피처이기도 하다. 고도화된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온 낙오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그러한 열등감을 공격성으로 바꾸어 비루한 자신을 감추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나름대로 그곳은 그런 이들을 위한 안식처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는 가운데 그것을 실제로 믿어버리는 것이 현실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을 것이다. 잘못도 잘못이 아니고 죄도 죄가 아니다. 현실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그것이 더 편하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오로지 자신들만의 '사회'가 남게 된다. 그들만의 세계다.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다. 당연한 욕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계가 없는 인터넷이다 보니 스스로 경계를 만들고 가두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것이 전부라 여긴다. 일베의 '위악'이 전부가 된다. 위험한 이유다. 이미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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