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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4.09.08 18:53

일베와 인터넷, 인간과 네트워크를 말하다

일베라고 하는 극단을 이해하기 위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네트워크란 선이다. 선은 면과 면을 잇는다. 세계는 입체로 이루어져 있다.

네트워크를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세계란 곧 눈앞에 있는 면일 것이다. 면을 통해 다른 면과 소통하고 면과 면을 잇는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현실의 세계는 입체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의 인식과 현실의 세계과 유리되는 이유다.

네트워크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 인간의 인지와 인식은 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겪으며 알아가고 깨달아갔다. 인간은 아직 현실세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네트워크의 발달은 그러한 개인의 경험을 보다 쉽고 빠르게 다른 개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지 않아도 자신이 직접 그런 것처럼 똑같이 경험할 수 있고 알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쓰여진 천문기록인데 정작 내용은 중국 장강유역에서 관찰된 것들이었다.

▲ 일베저장소 사이트 캡처

그러나 네트워크의 방대함과 강렬함은 인간을 네트워크에 종속시키고 만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온다. 굳이 직접 현실세계와 부딪히며 경험하지 않아도 단지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 때로 네트워크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전부가 되어 버린다. 네트워크를 벗어나서는 단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마저 나타나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것이 활자중독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책을 통해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개인의 경험과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결국 입체로 이루어진 세계는 사라지고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만이 남게 된다. 오로지 그것만이 진실한 세계이며 그를 통해서만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나마 이전의 네트워크는 그다지 빠르거나 정교하지 못했다. 그 사이 아직 현실에 머무는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거의 동시에 쌍방향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현실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다. 인터넷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만이 오로지 진실이 되고 정의가 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여러해전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까지 대한민국을 한바탕 들었다 놓았던 '타진요사태'였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급된 정보와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는 정의를 너무 쉽게 맹신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반복되는 중이다.

개인이 다른 개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절제하며 예의를 지키려 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현실의 인간이란 쉽게 단정짓거나 예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또 하나의 주체일 것이다. 자칫 자신이 상대를 거스르거나 할 경우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상대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있다고 판단할 경우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예의는 오만과 무례로 바뀌기 십상이다. 그나마 현실에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상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기껏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 사진이거나 동영상 정도에 불과하다.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는 그 이상을 전달할 수 없다. 복잡한 입체의 주체가 단순화된 파편의 대상이로 뒤바뀌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버린 자신들이다.

일베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터넷을 이해해야 한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밍아웃'이라고 하는 전문용어마저 만들어질 정도로 일베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먼저 개방된 공간으로 나서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활동과 소통은 오로지 '일간베스트'라 이름한 자신들만의 전용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혹은 온라인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자신들만의 폐쇄된 공간이나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여론의 원인이 되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서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는 타자에 대한 폭력에 가까운 무지와 무관심은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현실감없이 이미지로서만 자기들끼리의 소통 위에서만 대상을 인지하고 인식한다. 사고하고 판단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타인을 대상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최소한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꺼리거나 삼가는 모습 역시 보이지 않았다. 대상없이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려 할 뿐이었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이해할 생각도 없이 자기들끼리만의 일방적인 결론을 전제로 쉽게 말을 꺼내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죄책감도 없다. 어차피 모니터 안의 허구의 세상이니까. 현실이 아닌 단지 모니터 너머에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의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현실의 세계마저 인터넷이라는 허구의 네트워크의 연장으로 여겨진다.

현실감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유희로써 가볍게 여기고 쉽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낸다. 설사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조심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로 강제로 끄집어내어 법정에 세웠을 때 그들은 그들의 너무나 쉬운 말이나 행동 만큼이나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일간베스트'라고 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모인 집단. 서로를 경멸하고 조롱하면서도 '일베'라고 하는 정체성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들을 정당화하려 한다. 오히려 그것을 과시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터넷 '대중'의 속성이다. 차이라면 단지 그 말이나 행동이 최소한의 현실감조차 없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뿐일 것이다. 우리사회의 인터넷문화의 가장 안좋은 모습들만을 따로 걸러놓은 듯한 모습이다.

익명성이란 자신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인터넷의 속성일 것이다. 면일 뿐이다. 면 너머에는 단지 선만이 존재한다. 선을 통해 오가는 정보만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도만이 남게 된다. 상대가 아닌 대상이다. 무례한 것이 아니라 무감각한 것이다. 몰상식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다. 진실한 세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고 환상이다. 그래서 무한히 자유롭다.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믿는다. 역시 현실과 만나기 전까지는. 단순히 '일베'라서가 아니라 단지 현실감을 결여된 인터넷에 종속된 개인의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만 일베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대단하게 남들과 달라서 일베를 하게 되는 것도 역시 아닐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개인들일 것이다. 사실 '일베'가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행동은 인터넷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아주 작은 주의와 배려가 일베만을 더욱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실제 특별하기도 하다. 가장 극단적으로 현실의 보편적 가치와 상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것이 유독 인터넷에서조차 일베가 유독 비판받고 배척당하는 이유가 되고 있을 것이다.

관계에 목마르다. 현실에 없는 유희와 쾌락을 찾으려 하고 있다. 현실의 고단함이 더욱 도망갈 곳을 찾고 의지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허구의 세계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다. 인간은 갈수록 고독해지고 고립되어간다. 실제의 현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 극단에서 자신만의 진실된 세계와 지식들을 찾아간다. 어쩌면. 누구도 고독해지고 싶지 않다.

그다지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남들과 크게 다를 것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사소한 차이가 너무나 큰 차이를 만들고 말았다. 그렇더라도 본질은 같지 않은가. 일베란 그렇게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가까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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