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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4.08.30 09:40

군대내 인권유린과 세월호, 인간의 가치를 묻다

개인의 슬픔과 인간의 목숨마저 수단으로 계량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프로스포츠에서도 비싼 몸값을 치르고 계약했다면 아무래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부상당하지 않을까 철저히 관리하고, 만에 하나 부상을 당하거나 하면 신속하게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치료에도 만전을 기한다. 잠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몇 번이고 기회를 주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하며 기다려준다. 차라리 그를 위해 소모되는 수고와 비용이 선수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치러야 할 댓가보다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유명스포츠카가 도로를 달리거나 하면 운전자들 역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 실수로 상대의 차에 상처를 입히거나 하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조금 늦게 조금 더 긴장해가며 운전하는 것은 상당히 싸게 먹히는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유명스포츠카의 가격은 그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상대적으로 더 싼 값의 흔한 차라면 그만큼 더 조심하지 않게 된다.

배사고가 났을 경우 희생자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금이 100억 단위를 넘어간다. 공사장에서 안전사고가 나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 피해보상액이 기본이 수십억 단위다. 만일의 경우 수십, 혹은 수백의 희생자가 났을 때 단위는 억에서 조로 껑충 뛰어 오르게 된다. 혹시나 하는 방심으로 지나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정부가 세금으로 보상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정부의 입장에서도 조심하고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면 요행을 노리고 모험을 해 볼 수도 있다. 사전에 예방을 위해 필요한 수고와 비용보다 사후에 봉합하고 해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더 싸다면 말할 것도 없다.

▲ 세월호 사고 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애도 물결 ⓒ스타데일리뉴스

지금도 징집된 사병들에게 지급하는 월급의 액수가 최저임금 아래 받게 되는 며칠 일당도 채 되지 않는다. 사병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보급물자 역시 충분하지 못하고 열악하기만 한 상태다. 사병들의 일신상에 사고가 생겨도 누구도 책임도 지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조차 없다. 철저히 묻힌다. 군이라는 조직을 위해 개인의 모든 가치와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된다. 과연 사병들 자신이 느끼는 자신들의 가치란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 군바리라 부른다. 군바리란 군인이 사망하면 그 시신을 담는 주머니를 뜻한다. 고작 군바리에 불과한 사병들인데 서로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것에 얼마나 저항감을 가지게 될까?

노동자들이 파업하거나 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이야기가 '뭐하는데 그리 많이 받는가'라는 불만이다. 하다못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하는 일과 자신들이 받는 임금을 비교당한다. 그리고 비판받는다.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전문직은 일반노동자들과, 사무직은 생산직과, 정규직은 다시 비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취업을 못한 실직자들과, 그리고 다시 요구한다. 더 낮은 수준에서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 논란에서도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과연 그만한 가치있는 일을 하는가. 그로 인해 국가, 혹인 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어떠한가.

임금이란 다름아닌 노동자 개인의 가치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기회에 대한 비용이다. 지금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급여를 위해 회사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임금이란 노동자의 시간에 지불하는 댓가인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시간의 가치는 얼마인가. 그것은 곧 노동자 개인에게 지불할 수 있는 가치란 얼마인가. 인간의 가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특별법 논란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보상의 규모와 범위였을 것이다.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 하는 것들은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였다. 오히려 더 많은 대중들에게는 그래서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통해 받게 되는 보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세월호 특별법과 그것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 대한 비판적 여론 가운데는 그같은 보상의 범위와 크기가 적정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받는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참혹한 심정이란, 나아가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란 그만한 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수사권이나 기소권은 얼마나 중요한 권한인가. 정부와 여당에 무언가를 요구할 자격이 유가족들에게는 있는가. 비난을 넘어 조롱하게 되는 이유다.

딸을 잃고 40일 넘게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해 왔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비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물론 40일 넘게 단식하며 위태로운 상황까지 가까스로 넘겨야 했던 김영오씨의 목숨에 대해서도 대중은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일이 아니다. 그럴만한 주제가 아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도, 그래서 목숨까지 내건 필사적인 노력조차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치 아끼던 돌맹이를 들고 와서 값비싼 외제차와 바꾸려는 철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김영오씨 개인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그를 입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김영오씨의 요구와 김영오씨의 각오가 얼마나 가치없고 의미없는 것인가.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군대내 인권유린도, 그리고 안전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 탓에 일어난 숱한 사고들 역시.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갑을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대형마트의 캐셔들이 1억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그렇게 손님들이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한 번 부르는데 100만원 이상 주어야 한다면 사람을 불러 쓰더라도 그만큼 조심하게 될 것이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고 더 당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적은 임금과 낮은 처우를 감수해야 하는 쪽이 더 상대하기도 쉽고 편하다. 슬프게도 개인이 받는 돈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가 된다. 개인에게 지불하는 비용의 크기가 개인의 가치를 계량하는 기준이 된다.

개인의 가치가 낮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권력이란 개인을 구속하고 지배하는 힘이다. 개인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권력이라는 수단만 있으면 더 낮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개인을 동원하여 부릴 수 있다. 개인의 가치는 0에 수렴한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해야 한다. 거부란 없다. 협상도 없다. 복종만이 있다. 고용관계가 곧 권력관계가 된다. 사회관계도 역시 권력관계로 치환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란 딱 그 정도다.

타인의 가치만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자식잃은 부모의 애닲은 마음을 조롱한다. 목숨을 건 애처로운 투쟁을 경멸하며 폄하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에 있어 그것은 정도를 넘어선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도 거리낌없다. 오히려 당당하다. 도덕이란 인간의 존엄의 실천이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스스로 존엄하다는 것을 뜻한다. 도덕을 배제한다는 것은 스스로 가치를 낮추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 저렴한 인격이 저렴한 도덕성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가치다.

너무 많은 댓가를 바란다. 너무 쉽고 편한 일만을 찾는다. 적은 돈을 받고도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시간을, 더 늦은 시간까지, 심지어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개인의 일상까지 포기해가며.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진 것에 불과하다. 어떤 것도 개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소중하지 않다. 너무 쉽게 개인을 수단으로 소모하려 한다. 단지 그 결과일 뿐이다. 전부는 아니라 믿고 싶지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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