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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4.08.04 07:53

송진종의 권학문(勸學文), 부패의 이유와 기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한국사회의 현재를 진단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富家不用買良田(부가불용매양전)
집안을 부유케 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마라
書中自有千種祿(서중자유천종록)
책속에 저절로 천종의 봉록이 들어있거늘,
安居不用架高堂(안거불용가고당)
편안히 살려고 높은 집을 짓지 마라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
책속에 저절로 황금으로 지어진 집이 들어있으니,
出門莫恨無人隨(출문막한무인수)
문을 나서는데 따르는 자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지 마라
書中車馬多如簇(서중거마다여족)
책속에는 수레와 말들이 떨기처럼 넘쳐난다.
取妻莫恨無良媒(취처막한무량매)
결혼하려는데 좋은 중매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쉬워 하지 말라
書中有女顔如玉(서중유녀안여옥)
책속에 옥처럼 어여쁜 여자가 있느니라.
男兒欲逐平生志(남아욕축평생지)
사나이 평생에 뜻을 이루려 한다면
六經勤向窓前讀(육경근향창전독)
육경을 부지런히 창앞에서 읽을지어다.

송나라의 진종황제가 쓴 권학문(勸學文)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학부터 가라.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다 생긴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사회적 지위도, 더구나 멋진 여자친구까지도.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혹은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던 공부해야 하는 이유였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 정도전은 자신이 주장한 재상총재제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이를 과거를 통해 걸러내어 재상으로 선출할 수 있음을 들고 있었다. 유학을 배운 선비 가운데 과거를 통해 관리를 뽑고, 다시 그들 관리 가운데 검증된 이를 재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 임명된 조선의 관리들은 완고할 정도로 엄격한 성리학의 도덕률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경우가 많았다. 어째서일까?

말 그대로다. 과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여 관리로 삼는다. 다시 말해 과거에만 합격하면 관직을 받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누릴 수 있다. 권력은 곧 부귀와 영화로 이어진다. 권력의 크기 만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기에 그것을 권력이라 부르는 것이다. 청렴은 단지 선택에 불과하다. 굳이 농사짓고 장사하지 않아도 부가 쌓이고, 먼저 다가온 사람들로 인해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으며, 크고 화려한 저택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복들과 아름다운 미녀가 있는 호사스런 일상이 그를 기다린다.

유학은 수단이다. 과거는 단지 과정에 불과하다.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관직에 나가기 위해 유학을 배우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 성현의 말씀을 외워 답안지에 적는다. 아니 아예 그조차 생략한 채 과거에 나올 것 같은 문장들만을 모아 '초집'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만 외워서 과거를 보는 선비들조차 적지 않았었다. 유학을 배워서 선비인데 정작 유학의 경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과연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다고 그들이 유학의 가르침을 쫓아 청렴하고 바른 정치를 펼칠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한 사람의 급제자를 내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특히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은 응시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부모의 능력만으로도 부족하다. 아예 문중 전체가 나서서 싹수 보이는 문중의 인재를 찾아내어 지원한다. 여기까지 오면 급제만으로는 부족하게 된다. 최소한 아무거라도 관직을 받고 관리가 되어야 어느 정도 본전을 회수할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조선후기가 되면 아예 대과는 포기하고 신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과거만을 보는 경향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흔히 아는 생원이나 진사, 초시와 같은 호칭들이 그렇게 일반화되었다. 급제자 자신이 청렴하려 해도 그가 관직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주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응시자 자신에게도 유학과 과거는 단지 수단이고 과정에 불과하지만, 응시자 자신 또한 결국 그가 과거에 급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위에 의해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엄격한 성리학 사회에서 오히려 성리학과 전혀 거리가 먼 부정과 부패가 일상화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처음 조정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훈구파에 대해 도덕적인 우월함으로 맞섰던 사림이 조정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급격히 타락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유학 그 자체가 목적이던 유학자에서 더 높은 관직과 더 큰 권력을 바라는 관리가 되면서 유학은 어느새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선비는 관리가 될 수 있지만 관리는 선비가 될 수 없다. 관리가 된 선비는 더 이상 선비일 수 없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말이 가지는 모순일 것이다.

어째서 한국사회는 이토록 부패해 있는가. 이제는 아예 무감각하다. 오히려 부정을 능력이라 여기는 사람들마저 있다. 부패하지 않은 것은 아직 부패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정을 저지를만한 능력도 지위도 가지지 못했기에 단지 아직 부패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만한 위치가 된다면 누구나 그만큼 부패하게 된다. 과연 그들이 배우고 익히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고자 노력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괜히 공직에 나가겠다고 사람들 앞에 나서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 아니라면 대부분 별 문제없이 지나간다. 오히려 부러워하고 칭찬한다. 한국 사회의 목적과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흔히들 말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한국사회에서 전문성이나 도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단지 수단이다. 자신의 직업도. 자신이 하는 일도.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역시. 명예가 없다. 체면과 명예는 다르다. 체면은 타인을 전제하지만 명예는 자신에게서 완결된다. 그렇게 가르친다. 지금 배우고 있는 지식들이, 가치들이, 진실들이, 결국은 장차 더 잘먹고 잘 살기 위한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타인에게는 도덕적인 무결함을 요구하면서 자신과 주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가치기준을 적용한다. 가업이라는 말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역시 미래를 위한 과정이며 발판이다. 자식은 자신과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 단, 그것이 신분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인 경우는 예외다.

공부를 하면서 이익을 생각하고, 일을 하면서도 그를 통해 얻게 될 것들만을 염두에 두고, 목적은 항상 저 멀리에 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대단해 보이는 무언가만을 향하고 있다. 진정 지켜야 할 것들이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를 위한 사소한 일탈이나 반칙은 정당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무능한 것이다. 능력과 도덕성을 두고 비교하는 문화가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도덕적인 것은 무능하다.

취직을 위해 대학에서도 전공공부보다는 외국어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장래 자신의 직장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거의 모든 시간들을 투자한다. 낭비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그것이 최선이다. 용케도 여기까지 굴러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공부만을 해왔던 인재들이 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맡게 된다. 공부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공부를 해왔던 이유이고 목적이다. 이 사회의 현주소다.

어떻게 가장 도덕적이던 성리학의 이상국가 조선은 현실과 타협하며 타락해 갔는가. 정도전이 꿈꾸었던 이상은 어떻게 스스로에 의해 부정되었는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본다. 무엇때문에 배우고 무엇을 위해 익히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장 기본이 되는 물음이겠지만. 장차 자신들의 아이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가. 우리들 자신의 미래다. 여전히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행위란 동기다. 목적이 행동을 결정한다. 우리 사회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는가. 갈수록 강화되는 어떤 경향을 읽는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의 선택이기도 하다. 묻는 것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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