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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2.03.04 19:49

'레벤느망' 68운동의 전조는 이렇게 시작됐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고백록 '레벤느망' 트라우마와 청춘일기 사이에...

▲ 3월 10일 개봉하는 '레벤느망' 메인포스터(왓챠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오는 10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레벤느망‘(’Happening’)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소감이 먼저 떠오른다.

왜냐하면 60년 전까지만 해도 행위 자체가 불법이며 불문율이나 다름없던 낙태를 다루는 ’레벤느망‘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에세이(고백록) 때문이며, 자신의 체험담과 더불어 보수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봉건적인 1960년대 프랑스 사회를 곱씹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작가의 체험기와 사회학적 방법론이 결합됐다’라고는 하나, 이건 지나친 과장이 아닐지.

아울러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통해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고, 당시를 현시점에 비춰보는 '아니 에르노'의 대표 에세이 '사건'(레벤느망), 소설 ‘세월‘과 ’부끄러움’ 등은 21세기 현대사회에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경험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그녀의 글쓰기는 여러 관계 속에 진행 중인 단순하면서도 디테일한 묘사라는 장점이 더 눈에 띈다. 쉽게 말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비틀즈가 데뷔후 서서히 인기를 끌던 1963년 당시가 시대 배경. 2022년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현재에 비춰 많은 부분이 오버랩된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의 체험과 객관적 시선 담아

때는 1963년, 프랑스 북서부 루앙대학 현대문학부에 재학 중이던 ‘안‘(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은 노르망디 변두리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부모가 항상 자부심으로 대하는 공부 잘하는 대학생. 그녀의 꿈은 학교 선생님과 작가다.

그러던 어느날, '안'은 여학생 기숙사에서 몸에 이상한 걸 느끼고, 다음날 찾아간 병원 의사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게 된다.

단지 남서부 보르도에서 놀러 온 대학생과 잠자리를 가졌을 뿐인데, 임신이라니? 이때부터 '안'은 다양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려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운 상황. 당시는 1963년 프랑스. 낙태는 법적으로 금지된 수술이며, 주변으로부터 가족과 친구, 학교에서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물론, 사회적 비판을 피하기 힘든 시절.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족쇄다.

극중 주인공 '안'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이 그녀를 환영하거나 상대했던 남자가 좋아할 리도 만무하다.

▲ '레벤느망' 스틸컷1(왓챠 제공)

왓챠가 수입하고 영화특별시SMC가 왓챠와 공동배급하는 ’레벤느망‘. 주인공 ’안’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까.

이제 23살 남짓한 청춘의 나이에 생사가 달린 문제를 영화는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러닝타임 100분을 달려간다.

‘레벤느망’ 돋보이는 영상, 매 장면마다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

국내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프랑스 문학작가 아니 에르노의 에세이(고백록)을 원작으로 만든 ‘레벤느망’의 가장 큰 특징은 객관적인 시선이다.

영상이 매우 디테일하고, 직설적이다. 뜻하지 않은 임신, 우려와 혐오가 드러나는 주변의 시선, 그럼에도 계속 직진해야만 하는 ‘안’이라는 여성의 긴장된 표정과 때때로 생사가 달린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아닌 것처럼 버텨야만 하는 몸짓은 시종일관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가쁘다.

▲ '레벤느망' 스틸컷2(왓챠 제공)

‘레벤느망 촬영을 누가 했을까’ 사실 궁금했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로랑 탕기 감독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알랭 샤바, 배두나 주연의 ‘아이엠 히어’(감독 에릭 라튀쥬)의 촬영 작업을 함께 했다. 넷플릭스에도 공개된 영화로, 이 작품도 영상미가 독보적이다.

여기에 자신의 두번째 장편 ‘레벤느망’(15세 이상 관람가)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드리 디완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촬영감독을 맡은 로랑 탕기와는 ‘프렌치 커넥션’(2014),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2017),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더 스트롱홀드’ 등 세 작품을 통해 작가와 촬영감독으로 함께 작업을 진행해왔다.

‘레벤느망’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 봉준호 감독의 극찬은 물론,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그랑프리)과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세자르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 2022년 뤼미에르어워즈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레벤느망' 스틸컷3(왓챠 제공)

한편 ‘레벤느망’의 시대 배경인 1963년과 64년. 비틀즈의 탄생과 더불어 서구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가 만개하고 있던 시기다.

4년 뒤 '프라하의 봄'을 필두로 68운동이 유럽과 미국으로 퍼지면서 민주주의를 앞세운 자유와 해방혁명을 태동시켰던 1960년대. 그 전조는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 ‘레벤느망’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시대의 상실과 편견이 낳은 이념의 고착화가 아닌 진정한 해방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변화를 꿈꾸던 시기 1960년대 아닌가.

1968년과 2022년, 시대가 겹친 데칼코마니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와 동맹국 벨라루스, 체첸공화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지난 1968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바르샤바 동맹국(소련 사회주의 동맹)과 탱크를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를 침공했던 그 역사적 비운의 시기가 겹쳐 보인다.

불과 넉 달전, 2013년 데뷔이래 10년간 인기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방탄소년단 진과 뷔의 생일을 기념하며, 도심 전광판 축하 인사를 전하고,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올린 우크라이나 소녀팬들의 입장이 과연 1963년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스와 유럽, 미국 등 전세계를 휩쓸던 비틀즈 열풍과 무슨 차이가 날까?

그래서 3월 10일 개봉 예정인 영화 ‘레벤느망’은 어느덧 83세가 된 할머니 아나 에르노의 오래된 과거이자,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시작점이 영화 ‘레벤느망’의 주인공 ‘안’의 임신과 인생을 건 불법수술이었다는 걸. 과연 21세기 현대문명은 이해해줄 수 있을지?

왜냐하면 지금도 성차별과 임신중절이라는 테제는 논란의 연속 위에 놓여있기 때문. 단순히 복고를 복기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 '레벤느망' 스틸컷4(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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