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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1.03.12 13:13

'스파이의 아내' 처음 보는 일본의 양심선언

2020년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3월 25일 개봉

▲ '스파이의 아내' 메인포스터(엠엔엠 인터내셔널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일본에서 전범과 반성을 다룬 영화가 몇 편이나 있을까. 돌이켜 보니 없다.

다큐영화로 종군위안부와 일본정부의 백태를 다룬 '주전장'(2019)이 있지만, 연출과 각본을 맡았던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이다. 일본인이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며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한 픽션 영화가 없다.

하물며 지금까지 일본 영화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억울함과 피해의식 뿐이다.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던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2013), '일본패망하루전'(2016, 감독 하라다 마사토) 단 두 편만이 최근 변화된 일본의 과거사 복기였다.

쇼헤이 이마무라 감독의 '흑우'(1989) '간장선생'(1998)도 그나마 눈에 띄는 반전영화였으나, 이 또한 반성 보다는 전후 일본 국민의 피해만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물론 과거 전공투, 68운동 여파로 일부 작품들 가운데 일본인의 속내를 드러낸 영화는 있었다. 1970년에 개봉한 테라야마 슈지 감독의 실험영화 '토마토 케첩황제'가 그렇다. 하지만 일본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 때문일까. 외신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식을 알려졌던 '스파이의 아내'가 앞서 나열한 작품들과 비교해 일본 최초의 양심선언이 될 것 같다. 

반전은 되도 반성은 안하는 일본 최초 전범영화 '스파이의 아내'

일본은 전후 75년 동안 반전평화는 간헐적으로 외쳤어도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가령, 1938년 기초를 다지고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명분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다. '서방세계의 침략을 향한 저항'이라는 핑계가 도그마처럼 일본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한 80년이 넘도록 한국과 일본, 심지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조차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핑계가 정설처럼 묘사됐다.

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신성한 것이며, 히로시마 원폭을 두고 피해자로 포장해 반전은 외쳤어도, 반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이다.

그런데 21세기, 그것도 2020년 6월이 되서야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스파이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대규모 생체실험 등으로 악명 높았던 731부대의 참상과 일본내 지식인들의 반발을 그린 작품이 소개됐다.

이 작품이 오는 25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다. 러닝타임은 116분, 12세 관람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TV스페셜 드라마로 내놓고, 바로 영화로 제작해(2020년 10월)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공포영화 '주온'시리즈를 기획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도플갱어'(2003)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한 출연 라인업 '스파이의 아내'

'스파이의 아내'는 출연진도 화려하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팬층을 갖고 있는 아오이 유우를 비롯해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주연과 조연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시대 배경은 1940년. 고베에서 유명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후쿠하라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 아내 후쿠하라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대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다. 취미는 무성 영화 제작.

만주는 물론 구미 각국을 돌며 풍문을 익힌 유사쿠는 스스로가 코스모폴리탄(글로벌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로는 흔치 않은 유형의 사업가다. 굳이 정치 성향을 덧대자면, 리버럴이다.

아내 사토코는 평범하고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정의 보다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던 인물이다. 가끔씩 남편이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무성영화에 출연해 자기만의 행복을 쫓는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 해를 거듭할 수록 일본 사회와 외부 상황이 좋지 않다. 일본의 전쟁 미화와 군국주의가 극단을 향해 치닫고, 일본의 반미 정서로 야기된 시민들의 침묵은 길어지고, 군부 내각 아래, 라디오, 신문, 모든 일상들이 감시 받고 통제되기 시작한다.

1941년 일본은 통제국가로 변모한다. 1936년부터 만주 관동군 헌병대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중일전쟁을 지휘한 도죠 히데키(1급 전범)가 본국으로 복귀해 육군대신으로 있다 내각 총리가 된 시기다. 

과거 일본에도 도쿄대 출신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을 병행하던 사회주의 그룹이 일부 존재했지만, '스파이의 아내'에 나오는 주인공 유사쿠의 경우는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마르크스 이론을 통해 세계를 배운 것이 아니라, 무역업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왜 만주를 다녀왔으며, 어디서 731부대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는지는 영화 '스파이의 아내'를 통해 확인하면 될듯 싶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서술하고 싶었던 건 오는 25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 예정인 '스파이의 아내'가 일본 과거사를 두고 최초의 양심선언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배우 세명. 아오이 유우,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등은 일본에서 스타급이다. 특히 극중 고베 헌병대 장교 츠모리 야스하루로 분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지난해 '신문기자'(2019)로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마츠자카 토리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배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미시마 유키오와 전공투 마지막 논쟁'이라는 다큐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가 됐던 배우다. 

하물며 '스파이의 아내'에서 맡은 배역은 조연급. 더구나 악역이다. 부담스러울텐데 출연했다.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맡은 츠모리 야스하루는 겉은 선한 인물 같아 보이지만, 조직을 위해 악질 군인으로 돌변하는 그런 사람이다.

▲ '스파이의 아내' 스틸컷(엠엔엠 인터내셔널 제공)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탄과 동시에 탐나는 연출력

'스파이의 아내'는 지난해 제7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 나온 첫 전범영화라서, 혹은 과거사를 반성하는 첫 양심선언이 영화의 주제라서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분명히 하자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드라마 만들면 안되나" 이런 생각이 들만큼 탐나는 연출력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 당시 소품과 복장, 미술세트를 치밀하게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소품만으로도 공포와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하물며 극중 개성 이 강한 캐릭터들을 마치 빙의된 것처럼 씌워 버리는 감독, 그런 연출을 군말 없이 따라준 배우들의 열연이 부럽기 짝이 없다.

저예산에 가까운 제작비의 대부분을 NHK방송국에서 지원했고, 2020년 6월 TV에서 스페셜 드라마로 방영됐다. 영화, 드라마에서 흔히 사용되는 CG(컴퓨터 그래픽)가 그래서 많지가 않다.

엠엔엠 인터내셔널이 수입하고 배급하는 '스파이의 아내'는 드라마에서 영화로 재편집되어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개봉했다. 바로 이 버전이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다. 

한편 '스파이의 아내'는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만주 731부대를 다루고 있다. 적어도 일본에서 주류라면 이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게 여러곳에서 방해 공작을 펼쳤을 것이다. 극우 성향의 일본인이라면 인정하기 싫은 장면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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