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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4.01.28 18:15

[권상집 칼럼] 대학 총장 추천제 해프닝을 통해 바라본 이 시대 슬픈 자화상

결코 웃고 넘어갈 수 없는 해프닝,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한 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소동은 사실 취업을 희망하는 모든 대학생들이 관심 있게 바라본 사안이었기에, 그리고 국내 최고이자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삼성에서 실험한 인재 채용 프로세스였기에 각계에서 더욱 높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20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SSAT라는 삼성그룹의 채용 시험에 응시하였고 이는 사회적인 문제(?)로 까지 발전되기도 했던 상황에서 대학총장 추천제가 미치는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대학총장 추천제를 사실상 전면 백지화시켰다. 그룹의 우수인재 채용 의도를 결코 모르는 건 아니다. 필자 역시 기업 재직 시절, 대졸신입 채용을 담당했었기에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그리고 수 없이 고민을 하며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제도를 기획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SSAT에 20만 명이 응시하고 이를 위해 삼성 임직원 9,500명이 시험 감독으로 나섰다는 기사만 봐도 인사 채용 담당자들의 고생과 애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학총장 추천제는 문제의 심각성 여부를 떠나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 마저 든다. 사실, 국내 기업 중 우리나라 모든 4년제 대학을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하는 기업이 과연 있을까? 지금도 국내 명문 대학원 및 유수의 기업들은 대학을 수평 선상에 놓고 인재의 역량을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취업 준비생들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금도 토익, 토플, 자격증, 공모전 등 자신의 역량에 관한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게 대한민국 취업 준비생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추천제는 여러 모로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들었다. 첫 번째로, 이번 총장 추천제의 문제점은 사전에 대학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삼성그룹이 일방적으로 학교에 인원을 통보했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현대 사회의 지성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측의 요구와 고민을 전혀 반영하거나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영학 교과서와 논문에서 고객의 욕구와 희망사항을 반영하라는 얘기가 수없이 반복됨에도 기업 측에서 일방적으로 잠재적 고객인 대학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건, 채용 실험 이전에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번 추천제의 두 번째 문제점은 각 대학별로 추천 인원이 사전에 너무 많이 알려졌다는 점이다. 가장 인원을 많이 할당 받은 대학은 115명이지만 가장 적게 할당 받은 대학은 4~5명에 불과했다. 이는 누가 봐도 대학을 서열화, 차별화해서 심사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취업 준비생들과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도 대학이 잠재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별 추천 인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물론, 삼성이 공개적으로 인원을 언론에 공개한 건 아니었지만) 학력이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 있는 취업 준비생들에겐 적지 않은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더 나아가 마지막으로 이번 추천제의 세 번째 문제점은 총장 추천이 결코 삼성이 원하는 학생을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데 있다. 각 대학별로 인원이 할당되면 대학교의 추천 학생 선정 방식 역시 기존과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각 단과대학별 00명, 그리고 해당 단과대학 내에서 다시 해당 학과 인원 0명으로 계속 톱다운 식으로 추천 프로세스가 전개될 것은 대학생들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는 결코 삼성그룹이 원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선발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지 서문원 기자가 언급한대로 변화보다 정체를 더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채용 방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취업 준비생에게 삼성그룹 입사는 분명 큰 메리트로 다가온다. 지난해 대한민국이 벌어들인 수출액보다 삼성그룹이 벌어들인 매출액이 더 컸다는 기사가 주요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이미 삼성전자의 위상은 애플, 구글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에 견줘 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사회는 그리고 대중은 삼성에게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되는 품격과 사회적인 책임을 원한다. 이번 프로세스가 삼성의 대한민국 지배, 삼성의 국내 대학 상대 평가, 삼성의 일방적인 인원 통보 등으로 비춰지는 건 바로 이와 같은 국민의 기대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 삼성과 대학 간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더 나아가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에 삼성은 본의 아니게 무수히 많은 취업 준비생에게 상처를 줬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 할당 받은 인원을 보고 학생들이 받은 충격이나 당황스러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우리나라 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는데 심각한 영향을 준다. 다행히, 삼성은 대학총장 추천제를 전면 백지화하고 다시 기존 프로세스를 당분간 지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매일 외치는 창의적인 인재, 혁신적이고 과감한 도전정신이 있는 인재, 열정이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한 새로운 채용 프로세스를 삼성이 다시 고안하길 희망한다.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고민하는 기업만이 사회를 위한 공유가치 창출을 할 수 있음을 삼성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 필자의 과도한 욕심이 아니길 빌며 이만 줄인다.

- 권상집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미래 한국 아이디어 공모전' 논문 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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