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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1.01.27 06:14

'살아남은 사람들'은 After Corona

전쟁과 코로나 팬데믹은 닮은꼴, 모든걸 잊고 극복해야 했던 두 남녀의 이야기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다음달 10일 개봉 예정인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놉을 읽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음악이 하나 있다.

조안 바에즈의 커버곡 '500miles'이다. 1965년 BBC공연무대에서 촬영된 스페셜 공연 중 소개된 이 노래는 무일푼으로 서부 개척을 떠난 청년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왜 이 노래가 곧 개봉할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과 오버랩이 됐는지, 스스로 되물어 봐도 명확한 답을 구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산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애써 모든걸 잊고 살아야만 하는 주인공의 막연함이 와닿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사 알토미디어가 수입하고 배급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후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두 남녀, 그들의 잃어버린 삶과 치유 과정을 담았다. 

극중 등장하는 두 주인공. 나치 수용소에서 두 아들과 아내를 잃은 중년의 의사 쿄르너 알라데르, 부모를 잃은 16세 소녀 뷔르너 클라라는 의지할 가족도 없고, 속 마음을 터놓고 기댈 사람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위 같은 구도로 보면 진부함과 불륜이 연상되지만, 전개되는 스토리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처럼 정반대로 향한다.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바나바스 토트의 섬세함이 영화 제목과 시놉(나열된 텍스트)로부터 오는 지루함을 긴장감으로 바꿨고, 흔한 남녀간 사랑을 탈피한채 장면 곳곳에 외줄 타기식 전개를 촘촘히 집어넣어 타자의 윤리적인 시선을 잠재웠다.

러닝타임 88분의 '살아남은 사람들'(원제 Akik maradtak)을 관통하는 큰 핵심은 전쟁과 광기라는 환란 가운데 가족 모두를 잃어버린 두 사람의 또 다른 성장과 상처에 따른 치유다.

누군가의 지침과 명언을 통해 가르쳐서 극복되는 상황(계몽)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만남과 공감을 통해 피폐했던 삶의 한 페이지를 다른 장으로 넘겨 가는 과정이 담겼다.

▲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알토미디어)

내달 10일 개봉하는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왜 이 영화가 After Corona일까?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야기된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봉쇄는 전후 인류가 단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례다.   

코로나 감염 확진자와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 간의 괴리감은 이전까지 어떤 종류의 전염병 보다 더 크고 다양한 심리적 거리와 공포를 심어줬다.

여기에 코로나 감염 확산에 당황한 정부가 강제로 명령한 격리와 봉쇄는 마치 크기를 예단키 어려운 거대한 수용소가 연상된다.

또한 시민의 권리가 박탈되고 모든 권력이 정부로 쏠리자, 이를 주체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패닉을 유도하는 정치권과 정부 부처의 오판도 각국 매스컴으로부터 날카로운 비판과 질타를 받았다. 

한국은 위같은 사례에 비춰 다행인 점이 많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무너진 사회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덧붙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바이러스 팬데믹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경고성 발언들이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예견된 지금은 앞날을 명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과거 전쟁 가운데 생존한 유대인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유추해볼 수는 있다. 2월 에 개봉하는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첫 걸음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하던 가족과 직장을 잃고, 사회에서 따가운 시선과 끝을 모르는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에 격리와 거리 두기로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트라우마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속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만남과 묵시적으로 공유된 삶의 조각들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하물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2차대전 당시 나치군에게 주인공을 밀고한 자들이 등장한다. 변절자 혹은 부역자로 불리우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제대로 된 반성을 했을까" 이런 의문을 품게 만든다.

씻기 힘든 상처를 준 범죄자 혹은 가해자라고 주인공이 흥분하고 힐란이라도 해야 맞을텐데, 영화는 그들과 동화되야만 하던 시대의 등장을 암묵적으로 비춘다.

나치가 물러나니, 또 다른 전체주의로 무장한 소련 공산군이 헝가리와 동유럽을 무력으로 점령했던 시대. 이 시대를 그저 저항없이 묵묵히 지나가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두번째 스틸컷(알토미디어)

이 영화에 표현되지 않았던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첨가하며...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후 배경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단지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자들을 조용히 그리고 섬세한 장면 등으로 덧씌워 비춘다.

결국 이 부분은 기사로 부연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각성제가 풍부한 커피를 더 진하게 마시려면, 더 독한 원두를 갈아 넣듯이 말이다.   

먼저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에 전시된 비누, 카페트는 모두 사람들을 생채로 가스실에서 죽이고 생산해낸 나치의 제품이다.

하나는 사람의 기름, 다른 하나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은 포르말린액이 담긴 병에 집어넣어 실험 도구로 사용했으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생체실험도 강행했다.  

흔히 역사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사망하거나 굶어 죽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게 기술한다. 

유대인들이 다수라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유럽 전역에 퍼진 집시, 러시아인, 반정부 인사, 심지어 나치를 비난한 종교인들 그리고 아리안의 우성 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전병 보유자와 장애인까지 강제수용소로 보냈고, 결국 가스실에서 집단으로 학살됐다.

공개된 외신에 따르면 남폴란드 크라쿠프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수송된 헝가리 유대인들은 서커스단과 길거리에서 일하던 집시들까지 포함해 약 42만명이다.

이는 당시 강제수용소로 수감됐던 폴란드 유대인 30만명 보다 12만명이 더 많으며, 유럽 각국에서 강제로 격리되거나 수용된 유대인들 보다 2배에서 10배나 많은 숫자다.

한편 20세기 초,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 소속된 바 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하철을 만든 나라이며, 독일에서 출발해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잇는 도나우 강을 운하로 개발해 동유럽 통상교역을 주도했다.

헝가리는 2004년까지 모두 13명의 노벨상 수상자(생화학, 의학, 물리학, 문학)를 배출했고, 그중 비타민 C를 발견한 생화학자 센트조르지 알버트 박사가 있으며,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캐나다 화학자 존 찰스 폴라니는 철학자 칼 폴라니의 사촌이다. 

통상 산업이 일찌기 발달했고, 근대 철도와 교량건설을 이끌었고, 이탈리아의 국민자동차 피아트의 창업주중 한명이 바로 헝가리 유대인 출신(철학자 칼 폴라니 형 오토)이다.

문화로 보면 중세이전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접점을 이루며,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부다페스트의 명물 중 하나인 마챠시 성당이 이슬람 모술(회교사원)의 내부 양식을 유지한 채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부다페스트의 중심인 겔리어트 산 중턱에는 동로마 비잔틴 양식을 그대로 유지한 온천장들이 많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초 헝가리에서 출생한 인물 중에는 문화, 산업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천재들과 창업주들이 존재했다. 아울러 이들이 현대문명에 큰 기여를 한 점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나열하면 세계적인 수학자 폴 에르되시, 수학/통계학에 큰 족적을 남긴 존 폰 노이만, 투자귀재 조지 소로스, 전후 인류공동체의 탈자본주의와 그 방향을 제시한 철학자 칼 폴라니가 있다.

또한 헝가리 태생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서전에 칼 폴라니의 화려한 가족사를 서술한 친구가 다름아닌 미국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20세기 초까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한 나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활약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화려한 기록은 1929년 대공황 발발뒤 등장한 나치에 의해 무너졌고, 종전후 소련군의 점령으로 깔끔히 정리됐다.

그뒤 헝가리는 손흥민 선수가 최근 수상한 푸스카스상의 주인공 푸스카스 페렌츠 같은 전설적인 축구선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만한 인물이 많이 없다.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북미와 영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들이 유명세를 떨쳤을 뿐이다. 

위에 첨부된 긴 부연은 오는 2월 10일 개봉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관람을 위해 마련했다.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덧붙여 극중 뷔르너 클라라로 분한 아비겔 스쵸크는 북미문화잡지 버라이어티 물론, 헝가리 패션잡지에 표지 모델로 등장할 만큼 현지에서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이지적인 외모와 통통 튀는 연기력이 눈에 띈 것이다.

향후 아비겔 스쵸크의 필모그래피가 늘어나고 화려해질 수록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언급 또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티저포스터(알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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