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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21.01.24 10:20

[권상집 칼럼] TV조선이 제기한 트로트 원조 논쟁

트로트 오디션의 레드오션이 불러 일으킨 TV조선과 MBN의 충돌

▲ TV조선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2019년 TV조선이 <미스트롯> 열풍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트롯 오디션을 준비하려는 방송사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일회성 흥행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던 트롯 열풍은 급기야 지난해 <미스터트롯>이 시청률 35%를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전방위로 확산되었다. 지상파 3사 및 케이블, 종편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송사에서 트롯 오디션을 10여개 이상 우후죽순 쏟아낸 건 트롯이라는 장르만 잡아도 시청률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TV조선이 방영하고 있는 <미스트롯2>는 26~29%의 시청률을 올리며 타 방송사의 트롯 경연 및 오디션을 압도하고 있다. 트롯 오디션의 오리지널을 유독 강조한 TV조선의 자부심은 탄탄한 시청률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조선 제작진은 MBN 제작진을 대상으로 자사의 트로트 프로그램 포맷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방송사 간의 대립이 금기시된 선례를 비춰볼 때 양사의 충돌은 꽤 이례적이다.

TV조선은 자사의 트롯 오디션 및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랑의 콜센타> 등의 포맷을 토대로 MBN이 <보이스퀸>, <보이스트롯>, <트롯파이터> 등을 순차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MBN은 당연히 강력히 반발하며 TV조선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방송가에서 프로그램의 유사성, 콘텐츠의 중복이 그간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TV조선의 트로트 원조 논쟁이 어떤 결론을 낼지 방송계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송계에서 콘텐츠, 포맷 유사성에 대한 논란은 그간 숱하게 반복되었다. 과거 MBC가 <무한도전>으로 신드롬을 일으키자 KBS가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는 방송사 간의 대립보다 두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팬덤 사이에서 강력한 원조 논쟁이 일기도 했다. 당시 KBS는 <무한도전>을 모방했다는 항의에 대해 원래 ‘리얼 버라이어티’의 원조는 KBS가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임을 강조하며 방송계에서 원조 논쟁을 가열시켰다.

오디션에서도 원조 논쟁이 없었던 건 아니다. Mnet이 <슈퍼스타K2>에서 환풍기 수리공인 허각을 벼락스타로 만들며 1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자 지상파 3사는 곧바로 유사 오디션을 만들었다. 11년 전인 2010년에도 MBC는 <강변가요제> 등을 근거로, KBS는 <대학가요축제>, <전국노래자랑> 등을 토대로 오디션의 원조임을 내세웠다. 당시 <슈퍼스타K>를 모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벗기 위해 원조임을 주장, 선제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TV조선이 제기한 트롯 원조 논쟁은 무의미하게 끝날 가능성도 높다. 프로그램의 유사성에 대한 표절 여부가 법적으로 확인된 경우가 매우 드물 뿐만 아니라 TV조선이 트롯 오디션의 원조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2014년 3월 Mnet이 <트로트 엑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며 그 당시에도 <트로트 엑스>는 국내 최초 트로트 오디션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며 경연 방식도 지금의 트롯 오디션과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오디션 방식이 독창적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예선, 그리고 본선에서의 팀 미션, 1대1 데스매치, 생방송 결승 무대, 실시간 문자 투표는 이미 10년 전 <슈퍼스타K>에서 인기를 구가한 포맷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포맷도 외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방식을 대부분 차용한 것이기에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과 전개 특성을 감안할 때, 과연 참신하고 독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TV조선의 불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트로트 장르를 국민가요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지상파 3사 및 종편, 케이블에서 유사 프로그램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TV조선의 <미스트롯2>가 독점적 파워를 보여주는 건 시청자들도 TV조선의 오리지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블루오션을 개척한 입장에서 해당 영역이 레드오션이 되어 피로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개척자 입장에선 불만일 수밖에 없다.

<미스트롯2>는 현재 시청률에서 다른 오디션의 2~3배에 육박하는 압도적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이전에 비해 폭발력이나 화제성은 많이 떨어져 있다. 이 상황에서 트로트 장르와 오디션에 대한 피로도 증가는 TV조선에겐 독이 될 수 있다. 후발주자가 트로트 장르를 모방하여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리며 선도자의 프로그램에 대한 피로도를 누적시키는 것이 방송계 전략의 하나임을 감안할 때 이번 TV조선의 행동은 대응 차원의 성격이 짙다.

TV조선과 MBN의 충돌로 프로그램 모방 관행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 언론에서 나왔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방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초대박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각 방송사에서 곧바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이 소모적 논쟁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포맷 보호와 같은 발전적 제언을 모색하는 논쟁이 되길 희망한다. 아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 권상집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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