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0.12.10 17:26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작은 거인의 드라마틱한 퍼포밍

전후 모두가 자본 수집에 몰입하던 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한 혁명가

▲ 1966년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두주자로 뉴욕과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대표작 '무한 거울의 방' 20년이 지난 1998년, 2000년에는 LED조명이 오브제로 사용되면서 훨씬 더 입체적인 공간과 선명한 자태가 드러났다. (AUD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CG(컴퓨터그래픽)을 입힌 뒤 다양한 빔프로젝트로 홀로그램을 구현하고, LED전광판(혹은 OLED)을 무대 앞뒤에 설치해 '미러 효과'를 극대화하고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건 이 시대에 이르러 자연스럽다. 기술 진보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증강현실을 접목한 공연무대도 이젠 현실.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파이널' 오프닝 공연, 지난 5일 열린 멜론뮤직어워드(MMA) 대미를 장식한 방탄소년단의 공연무대도 실사처럼 보이는 CG가 동원된 AR이 바탕이다. 

바로 위같은 공연무대를 보면서 눈에 띄는 두 가지. 무대 배경에 사방으로 퍼지는 물방울처럼 반복 패턴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별들과 불꽃, 미러 효과가 두드러진다. 즉, CG를 입힌 AR(증강현실)은 21세기 첨단 기술을 집약한 전위예술(Avant-garde)이다. 

여기에 앞서 서술한 모든 것들을 최초로 시도한 오리지널이 있다. 20세기에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몸소 실천하고도 존재 자체를 부정 당했고, 세기말에 이어 21세기에 되서야 희소가치가 상승해 미술계에 재소환된 쿠사마 야요이 작가가 바로 그 오리지널이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프리렌스 큐레이터 미카 요시타케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 설치 미술작품 '무한 거울의 방'을 설명할 때 항상 작품의 작업 연도를 언급한다. 1965년부터 1994년이다.

또한 그녀의 시그니쳐로 최고 경매가 작품으로 알려진 물방울 무늬 호박 시리즈는 1964년에 작업한 작품. 이 또한 2016년 미국 허쉬혼 미술관에서 설치 조형물 '무한 거울의 방' 시리즈로 전시됐다. 

물방울 무늬 점을 그려넣은 호박 모양의 오브제 안에 LED조명을 넣고 벽면 거울로 에워싸 무한대의 공간을 창출한다. 

돌아보면 '무한 거울의 방' 시리즈는 건축 인테리어는 물론 여러 다양한 산업 분야에 차용됐고, 세기를 넘어 여러 오마주로 재탄생됐다.

SF팬들에게는 유명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오마주된 것은 유명한 일화. 여기에 방탄소년단의 2020년 MMA 시상식 '소우주' 공연 무대의 수많은 물방울 무늬의 별들과 불꽃과 같은 배경도 다름아닌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의 방'이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작 쿠사마 야요이는 지난 세기와 이 시대를 살며 차별과 편견으로 사장됐고, 수 십년 동안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 아시아 출신의 키 작은 여성으로만 살았다.

하물며 고향 일본에서는 미국에서의 반전운동과 나체시위 활동이력 때문에 가족은 물론 사회 전체가 그녀를 향해 정신이상자로 몰아 곳곳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의 초장기 뉴욕 활동 시절-1966년 (AUD 제공)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작은거인이 온 몸 던져 엮어낸 한 편의 드라마

영화사 오드가 수입하고 배급하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에서 그녀가 1972년 미국 생활 청산뒤 도쿄로 돌아와 제대로 된 활동도 못하고 결국 스스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했던 사실이 공개된다.

이는 앞서 짧게 부연했던 그녀의 반전 운동 포함 북미 문화 활동이 주된 원인. 당시 일본 매체는 이를 수치라고 생각해 정신나간 일본인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을 접고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칩거 생활을 했던 계기.

그렇다. 러닝타임 77분의 전체관람가 다큐 영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는 1929년 3월 일본 중서부 나가노 현에서 태어나 백발 노인이 될 때까지 세상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거부 당했던 한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이야기이다. 

아울러 이 영화를 만든 감독겸 평론가 헤더 렌즈는 차별과 협박에 가까운 강요, 억압으로 고립된 한 사람을 집중 조명하며, 숱한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우뚝 섰는지를 부연한다.

영화는 어릴적 쿠사마 야요이의 불우했던 가정사를 열거하며, 바람난 미대 교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감시하라고 시킨 어머니, 이런 일들이 빈번했던 당시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춘다.  

또한 왜 유년기 쿠사마 야요이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1957년 홀홀단신으로 미국 뉴욕으로 떠나 온갖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꿋꿋히 작가로 활동한 이력을 주목한다.

위처럼 그녀의 미국 활동 배경에는 결혼 외에 다른 직업도 가질 수 없던 아시아 여성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점령했음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청년기의 쿠사마 야요이는 동시대에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추상주의 화가이자 거목 조지 오키프를 동경하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미국도 여성화가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시대. 예술을 두고 남과여, 취미와 직업으로 나눠 보던 차별적 시선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똑같았던 것.

그럼에도 1957년부터 일본으로 돌아갔던 1972년까지 약 15년간의 뉴욕 생활과 예술 활동은 쿠사마 야요이가 한 인간으로써 살았던 삶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적어도 개봉예정작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라는 다큐영화는 그렇게 보인다. 또한 영화는 이뿐 아니라, 한때 진위 논란으로만 알려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표절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앤디 워홀이 베낀 대상은 그의 시그니쳐나 다름없는 반복패턴의 팝아트. 쿠사마 야요이가 미국활동 중에 내놓은 작품들이 그 원조다. 

▲ 왼쪽은 쿠사마 야요이 작가가 초청없이 방문하고 길거리 전시를 강행했던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오른쪽은 정신병원 옆에 마련된 그녀의 작업실과 현재 모습이다. (AUD 제공)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원했던 전쟁세대의 저항의지

1950년대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매개로한 매카시 열풍이 정치, 문화, 사회를 점령했고, 1968년 반전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 사회는 성차별과 문화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1960년대 냉전시대와 더불어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흑백논리가 강했던 미국 영화계의 단면을 비판한 영화 '트럼보'(2016), '맹크'(2020)가 당시 북미 사회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그런 가운데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까지 친한 동료 화가들에게 도난(표절) 당했으나 침묵했고, 상처를 추스리고 작가활동을 재개했다.

한편 1960년대 초반부터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주도하고 연합했던 당시 모든 퍼포밍은 한참 뒤인 1968년 아틀란타에서 펼쳐진 누드시위 안티미스아메리카 운동이 일어나고 나서야 미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이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쿠사마 야요이의 초기 작품을 통째로 베낀 앤디 워홀, 활동 초기 오마주로 선언도 않고 쿠사마 작품들을 차용한 클래즈 올덴버그는 더 큰 거물로 성공가두를 달렸지만.

정작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 본국 매체들의 보도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활동무대였던 북미에서도 밀려났다.

도미 초기 쿠사마 야요이는 뉴욕 갤러리에 오리엔탈리즘을 앞세운 단순한 흥미로 부각됐으나, 60년대 그녀의 행보를 정치적 활동으로 정의내린 평단과 업계에 의해 아시아에서 온 무명의 여성 작가로 다시 돌아갔다.

그랬던 그녀를 재소환한건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 유행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 즉, 주변환경이 변화하면서 창조적 유행과 소재 빈곤에 시달리던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과거 작가들의 작품 등을 레트로 시리즈로 관찰후 쿠사마 야요이의 초청 전시(1989년)가 미국에서 열린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 작가가 48세의 나이에 도쿄 세이와 정신병원에 스스로 감금된 1977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두번째 해외 무대는 1966년 주최측 초청 없이 무작정 이탈리아로 날아가 길거리 퍼포밍을 했었던 베니스 비엔날레. 1993년이다.

이런 행보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치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개봉초 흥행저조로 종영된뒤 이듬해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재개봉뒤 흥행대박을 터뜨린 경우와 대동소이하다.

▲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마스터피스 포스터(AUD 제공)

지금이야말로 작은거인 쿠사마 야요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할 때...

12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다큐멘터리가 성공을 거둘까" 아니, "보기나 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하지만 갤러리 큐레이터 종사자들에게 문의해 보니, 바로 위에 나열된 우려는 기우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볼 사람은 봅니다"라고 대답하며, "학교에서 배운 쿠사마 야요이 여사의 명성과 그에 걸맞는 작품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대미술계의 역사"라고 부연했다.

영화사 오드가 수입하고 배급하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는 일본 출신 유명 예술가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한 작품이 아니다.

러닝타임 77분 동안 관객들이 마주할 내용은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쯔모토시에서 태어나 다른 곳도 아닌 가족으루버터 어머니로부터 숱한 억압과 강요, 허울 좋은 규율만 가득한 가부장적 사회, 그 안에서 일어난 숱한 모순을 경험했던 여성의 파란만장이다.

모순만 가득한 자신의 엄마를 물방울 무늬로 희화화하고, 자신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주길 간절히 원했던 쿠사마 야요이. 그래서 성인이 된뒤 결혼도 않고 플라토닉 러브로 사랑을 나눴고, 전쟁의 풍전등화를 겪었던 어린시절을 기억해내 당시 누구도 시도 않던 반전운동을 전개했던 투사.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속히 개봉되길 기대해본다. 대한민국도 쿠사마 야요이 작가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경에 처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예술을 돈과 유명세로 환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곳. 그래서 곳곳에서 자행된 표절이 당연시되고, 여전한 가부장적 문화와 관습, 유년기에 다반사로 일어나는 가족의 차별과 강요, 억압은 일본만 존재하지 않는다. 

덧붙여 극장 관람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의 영향으로 좌석도 한 칸씩 띄웠고, 입장 전 예방 절차도 철저히 실행한다. 문제는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심리.

일터와 여가생활 중 치루는 세끼 식사와 대중사우나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적어도 영화극장은 철저하지 않은가?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