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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0.11.25 15:48

[박수빈의 inti The Book] #2. 영화 속 클래식, 영화 ‘아가씨’와 라모의 ‘탕부랭’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박소현 저자, 클래식을 알고 보면 감독의 섬세함 보여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공동경비구역 JS’,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모두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죄의식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 특유의 미장센 등으로 ‘한국 영화를 세상에 알린 남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 권위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장면마다 적절한 클래식 음악을 삽입해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특히 영화 ‘아가씨’에서 주인공들의 감정과 클래식 연주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곤 했다. 박찬욱 감동은 등장인물인 히데코와 숙희가 2대의 바이올린, 백작이 비올라, 코우즈키가 첼로의 역할을 하며 서로 부딪히거나 어울리기를 반복하고 악기가 서로 바뀌기도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의 박소현 저자는 이 영화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2장면에 2곡의 클래식 작품이 등장한다고 전한다. 바로 클라리넷 오중주 ‘슈타들러’와 라모의 ‘탕부랭’이다. 이 곡이 실린 장면과 곡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자.

▲ 영화'아가씨'

#. 모차르트의 우정의 징표, 클라리넷 오중주 ‘슈타들러’

모차르트는 3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극심한 빈곤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가 살아생전 유일하게 큼 힘이 되어준 친구가 클라리넷 연주자 ‘슈타들러’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클라리넷 오중주 슈타들러를 그에게 헌정했는데 이 곡은 숙희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히데코가 배가 고프다며 백작을 데리고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클라리넷과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이렇게 각 악기의 아름다움이 도드라지는 서정적인 이 음악은 이미 히데코에게 마음이 뺏겨버린 백작이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고백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특히 백작이 자신이 사랑을 하다 비참한 꼴을 당하더라도 불쌍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자 히데코가 “사랑, 사기꾼이 사랑을 하나요?”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 속에서 모차르트의 <슈타들러>와 뒤얽힌 주인공들의 심리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보다 더욱 충격적인 장면에 등장하는 클래식 작품도 있다. 히데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2부에서 이모부 코우즈키의 변태적인 모임이 이용되던 히데코의 이모와 히데코가 학대당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라모의 ‘탕부랭’이다

#. 클라브생 연주자 라모의 ‘탕부랭’

▲ 장필리프 라모, 출처 '지식백과'

프랑스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모는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음악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음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음악가다. 특히 라모는 65곡의 클라브생clavesin 작품을 1706년, 1724년, 1731년에 거쳐 3개의 모음집으로발표했다. 클라브생은 하프시코드harpsichord, 쳄발로cembalo라고도 불리는 악기로, 피아노의 전신이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크게 사랑받았던 클라브생을 위한 작품들은 현재는 피아노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영화 ‘아가씨’에서도 라모의 ‘탕부랭’은 클라브생이 아닌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이 쓰였다. 탕부랭은 남프랑스 지역에서 통이 긴 북을 뜻하는데 이 북을 연해해 추던 2/4박자의 빠른 프랑스 춤곡과 이 춤곡에서 발전한 기악곡들을 모두 탕부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라모의 탕부랭은  2부에서 코우즈키가 음란한 책들을 수집해 히데코에게 낭독을 시키는 모임에 백작이 가입하는 장면에등장한다. 히데코는 음란한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책속에 등장하는 일부를 마네킹을 이용해 재연하거나 연기를 하며 코우즈키와 신사들의 악취미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탕부랭>은 변태 신사들이 차례대로 엉덩이를 매로 맞는 장면에도 등장하는데, 오랜 시간 기괴한 일에 이용당하다 자살한 이모와 그 이모를 대신해 20년 가까이 모든 학대를 홀로 견뎌야 했던 히데코의 모습, 변태적인 모임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등장하는 신사들의 모습을 소름끼치고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학대를 애처롭게 견뎌내고 있던 히데코와 가학적인 모습을 즐기는 코우즈키와 신사들의 모습이 마치 클라브생 위에서 우박이 떨어지는 것 같은 왼손과 가녀린 멜로디를 치는 오른손이 겹쳐지는 것 같은 영화가 바로 <아가씨>다. <아가씨>를 위해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 중 <탕부랭>을 선택한 거장 박찬욱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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