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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0.10.07 10:37

[박수빈의 into The book] #1. 모란을 노래한 김영랑,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도서 ‘울림’ 신동기 저자, 봄은 누구에게나 찬란한 슬픔의 봄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 도서'울림'

북 소월, 남 영랑이라 했다. 북쪽에 평안북도 영변의 약산 진달래를 노래한 서정의 극치 김소월이 있다면, 남쪽에는 전라남도 강진 바닷가의 모란을 노래한 서정의 극치 영랑이 있다는 말이다. 사실 김영랑의 시는 서정적 탐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랑은 뒤로 가면서 계몽도 노래하고 역사도 노래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시인 김영랑은 서정시인 김영랑일 뿐이다. 경쟁의 무한 순환에 갇힌 이들이 지금 여기 목말라하는 것은 다른 것 아닌 한 떨기 찬란하면서도 슬픈 모란,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과 같은 가슴의 양식들이기 때문이다. 영랑을 떠올리면 우리는 언제든 남녘 강진 오월의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을 느낀다. 그러고는 숨을 쉰다. 

영랑은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했다. 사실 봄은 영랑에게만 ‘찬란한 슬픔의 봄’이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피는가싶던 목련이 검은 눈물 되어 뚝뚝 떨어질 때 화사함은 차라리 아픔이고, 하늘인지 꽃인지 온통 어지러이 난만하던 벚꽃이 시샘봄바람에 비꽃 되어 쏟아져 내릴 때 눈부심은 되레 허망함이다.

▲ 출처 Unsplash

꽃 아닌 삶도 마찬가지다. 만남의 기쁨 바로 뒤에 헤어짐의 아픔이 소리 없이 미소 짓고 있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용에게는 이제 내려갈 걱정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슬프다고 꽃을 거부하고 아프다고 만남과 상승을 제쳐둘 순 없다. 그것은 사람이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니까. 시인은 결국 슬픔일 줄 알면서도 삼백예순날 5월의 모란, 그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다. 우리도마찬가지다. 그렇게 ‘화사한 아픔의 봄’을, ‘눈부신 허망함의 봄’을 기다린다.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5월을 노래했다. 그리 무슨 대단했던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5월이 가면 다시 또 다음의 5월을 벌써부터 기다린다. 시인에겐 하루가 다르게 무성히 생장하는 그 5월만이 삶의 의미이자 기쁨이기 때문이다. 목매던 기대가 지나고 난 뒤 그냥 인생 도상의 그러그러한 요철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또 기대를 품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영랑이 1950년 6월 생애 마지막으로 <신천지>에 발표한 시‘5월한(五月恨)’의 중간 연이다. 

무슨 대견한 옛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던 오월이러라

6・25가 일어나기 3일 전인 6월 22일 영랑의 고향 친구 차부진이 서울의 영랑 집을 찾는다. 영랑은 차부진과 사흘을 함께 보내면서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말한다. 6월 24일 차부진은 남녘행 기차에 오르고 영랑은 차부진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9월 27일 영랑은 남과 북의 공방전 속에서 유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다. 

▲ 출처 Unsplash

삶의 마지막 순간 영랑의 눈앞을 스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차부진의 마지막 뒷모습이었을까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이었을까? 아마도 강진 고향 집의 마당 그득한 모란, 돌담, 햇살 그리
고 남녘의 바다가 실어다주는 부드러운 바람 아니었을까. 우리가 영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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