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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0.08.03 17:10

[박수빈의 into The book] #2. 언택트 역사여행 제주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

- 방구석 역사여행 유정호 저자, 제주는 아픔과 고통이 없는 장소 없어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 도서'방구석 역사여행'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Untact·비대면) 휴가지'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막상 어디로 떠나려 한다면 국내에 가볼 만한 여행기자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국내 여행지는 큰 매력이 없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행보다는 방구석을 택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일상에 지쳐 힐링이 필요한 현대인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방구석 역사여행의 유정호 저자는 무심코 지나친 동네도 역사를 담은 여행지라며 그곳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를 알면 곳곳에 묻어 있는 선조들의 삶을 느낄 수도 있고, 지역 고유의 새로운 모습도 만날 수 있다고 전한다.

올여름 그동안 소홀했던 국내 숨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방구석에서 유정호 저자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면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할 것이다. 또 역사적 이야기를 알고 간다면 교육적인 도움은 물론이고 이전과는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제주 성산일출봉

▲ 출처 한국관광공사

제주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성산일출봉은 아름다운 해돋이로 유명해 제주도를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산 전체가 움푹 분화구 한 덩이인데, 육지와 연결된 서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해안절벽이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원초적인 태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여행객과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주도와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산일출봉은 5천 년 전 바닷속에서 폭발한 화산에 의해 형성된 지형인데 바다에서 분출되는 뜨거운 용암이 차가운 바닷물과 부딪치면서 화산재가 분화구 둘레에 원뿔형의 형태로 쌓이면서 지금의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 냈다.

바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제주도와 연결되지 않은 작음 섬의 형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면하며 성산일출봉과 제주도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이며 길이 만들어졌고 성산일출봉은 제주의 일부가 되었다. 배를 타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성산 일출봉엔 숲이 없어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원래 성산 일출봉엔 수많은 나무로 울창했다고 전해진다. 푸른 산이라는 뜻의 청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성산 일출봉은 숲의 형태를 띄었다. 그러나 제주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뗄감이 부족해지고 성산 일출봉의 나무를 벌채하면서 숲이 사라진 것이다.

성산 일출봉의 숲은 역사의 아픔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 전쟁을 수행하기 위헤 최적의 요새로 끊임없이 활용되었다. 특히 가미카제란(일본의 자살특공대)을 숨기기 위해 성산 일출봉을 활용하며 동굴을 파기 시작했는데 그 동굴은 성산리 주민들의 몫이었다. 열악한 장비와 안보호구 없이 해안절벽에서 단단한 돌을 부수는 일에는 엄청난 고생과 희생이 따랐다. 당시 성산리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마을로 도망쳤다고 전해진다.

#. 광치기 해변

▲ 출처 한국관광공사

빛이 흠뻑 비친다는 뜻의 광치기 해변은 다른 뜻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제주도가 타 지역에 비해 심한 차별과 가혹한 수탈을 계속 당하자 많은 제주도민들이 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조정은 제주도 사람들이 뭍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선박 건조를 막았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제주도 사람들은 배를 만들지 못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토막 낸 삼나무를 가지고 뗏목(제주도 말로 떼배)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뗏목은 조금만 풍랑이 일어도 금방 뒤집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풍랑을 만나 뗏목이 난파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죽은 어부들의 시신이 광치기해변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서 고기를 잡으러 간 남편과 아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제주도의 남은 식구들은 이곳 광치기해변에 몰려들어 눈물을 삼키며 하염없이 시신이 밀려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시신을 발견하면 미리 만들어놓은 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 그래서 관을 가지고 죽은 가족을 기다리는 장소라는 의미로 광치기해변이라 불렸다.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가도,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곳곳에 서려 있는 아픔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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