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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0.07.24 20:46

[박수빈의 into The book] #1. 언택트 역사여행 성북구 길상사

- 김영한과 백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무소유로 승화시키다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 도서 '방구석 역사여행'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Untact·비대면) 휴가지'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막상 어디로 떠나려 한다면 국내에 가볼 만한 여행기자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국내 여행지는 큰 매력이 없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행보다는 방구석을 택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일상에 지쳐 힐링이 필요한 현대인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방구석 역사여행의 유정호 저자는 무심코 지나친 동네도 역사를 담은 여행지라며 그곳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를 알면 곳곳에 묻어 있는 선조들의 삶을 느낄 수도 있고, 지역 고유의 새로운 모습도 만날 수 있다고 전한다.

올여름 그동안 소홀했던 국내 숨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방구석에서 유정호 저자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면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할 것이다. 또 역사적 이야기를 알고 간다면 교육적인 도움은 물론이고 이전과는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Unsplash


#. 서울 성북구 길상사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예전부터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은 아니였다고 한다. 과거 길상사는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기생을 옆에 두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즐기는 대원각이란 요정이었다. 정계 인사들이 주로 모이는 전국 3대 요정으로 꼽힐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 대원각의 소유주이자 요정의 주인이었던 인물은 김영한(1919~1999)이었다. 3대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지금의 길상사가 된 이유는 김영한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영한은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었는데 시와 가무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당대 지식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김영한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런 그녀의 삶에 큰 변화를 준 이가 나타났다. 바로 백석 시인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축복받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 백석은 시인이자 영어교사였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가족들의 반대는 어쩌면 당연했다. 주변사람들과 가족들이 둘의 사랑을 끝까지 반대하자 백석은 김영한에게 만주로 가 둘만의 행복한 삶을 시작하자고 권했지만, 김영한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김영한도 둘만의 행복한 삶을 너무도 바랬지만, 자신 때문에 백석의 꿈이 좌절되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둘은 변함없는 사랑을 이어갔지만, 광복 이후 38선으로 분단되고 연이어 터진 6.25 전쟁으로 백석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했고 김영한은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김영한은 그리움에 사무처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은 그와의 사랑과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움이 깊어지자 김영한은 백석이 하던 일을 따라하기로 마음먹고 중앙대하교 영문과에 입학해 영어를 공부했고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하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백석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 출처 한국관광공사

그러던 찰나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김영한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백석을 잊기 위해 자신이 했던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법정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백석과의 사랑을 완성하고 싶었던 김영한은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사주하고 싶다는 뜻을 비춘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7천여 평의 대지와 40동의 건축물로 이뤄진 대원각은 당시(1987년) 1천억 원이 넘는 가치였다. 1988년 강남의 은마아파트 가격이 5천만 원이었던 점을 비춰보면 엄청난 금액인지라 무소유를 이야기하는 법정스님에겐 큰 부담이 되었을 수 있다. 김영한의 주변사람들은 대원각 기부를 급구 말렸지만 김영한은 10년 동안 대원각을 시주로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97년 대원각은 길상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길상사가 창건되는 과정은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기회를 제공한다. 김영한이 가졌던 수많은 재산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백석에 대한 그리움이자 사랑이 아니었을까. 백석과 자신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소유를 실천한 김영한의 마음이 깃든 길상사에서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사랑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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