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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0.02.22 21:10

[S리뷰] '작가 미상' 시대를 역행하는 기회주의 그리고 자유

전체주의와 인간의 자유를 두고 밀도 깊게 파헤쳐

▲ '작가 미상'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나치가 통치하고 있을 때, SS친위대보다 더 악랄한 나치로 활동했고, 공산주의가 통치세력으로 올라섰을 때, 공산주의의 선봉장으로 활약한 부역자가 자유주의 서독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면. 아시아를 예외로 두면, 이만큼 성공한 기회주의자가 별로 없을 것 같다. 

20일 개봉한 영화 '작가 미상'를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악랄하고 교활한 기회주의자 한명이 눈에 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대형 병원 원장으로 일하며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칼 제반트(세바스티앙 코흐) 교수가 그런 인물이다.

한 지역의 유지나 다름없는 칼 제반트 교수의 발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소모품이다. 제반트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어디서든 '국가'라는 미명하에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개봉하는 '작가 미상'은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광풍, 일방적인 체제 강요를 딛고 올라선 독일 예술가의 자유를 담고 있으며, 끝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시킨다.

1961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뒤 현대회화의 거장으로 우뚝 선 작가 게하르트 리히터의 실화가 바탕인 '작가 미상'은 극우 나치와 극좌 공산주의라는 두 전체주의를 살았던 쿠르트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통치하던 제2차 세계대전전 독일. 당시 어린아이였던 쿠르트. 그의 가족은 학교 선생인 아버지가 나치즘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당하고, 살던 집 마저 뺏긴채 변두리로 쫓겨난다.

심지어 쫓겨난 곳에서도 쿠르트 가족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아이 곁엔 누구보다 가까운 이모 엘리자베스 메이. 어린 쿠르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자유를 구속 당한 이모의 비운, 어린 쿠르트가 승화시켜

한창 상영 중인 영화 '작가 미상'은 쿠르트의 이모 엘리자베스의 개인적인 사유를 담은 발언으로부터 출발한다. 'So Schauten Kranke Geister die Natur'(영혼이 병든 세상을 보라)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전시관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명화를 놓고 "민족공동체에 어긋나는 개인주의의 산물"로 정의내리는 나치 완장을 찬 안내원의 설명.

반대로 비판받는 화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표현인지 설명하는 엘리자베스(자스키아 로젠탈). 어린 쿠르트에게 있어 이것은 향후 그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영혼마저 놔버린 이모의 불행이 결국 쿠르트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다.

▲ '작가 미상'스틸컷(영화사 진진 제공)

한편 '작가 미상'에서 소개되는 전체주의는 두 가지다. 첫번째가 나치즘, 두번째가 공산주의다. 

먼저 나치즘은 1933년 1월 바이마르 공화국의 2대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새롭게 임명한 총리 아돌프 히틀러와 추종자들에 의해 국가 이념으로 구축됐다.

살펴보면, 1923년 뮌헨에서 민중 폭동을 주도하고, 수감 생활까지 했던 히틀러가 10년 만인 1932년 총선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그뒤 1년 만에 보수우파의 거목인 힌덴부르크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세계 대공황과 7백만명에 달하는 독일 실업자들을 대신해 통치자로 나선 것이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0년대. 이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분노(der Zorn)였다. 히틀러는 대중의 절망과 분노에 부합되는 연설을 했고, 그 결과 실체도 불분명한 '독일 아리안 민족'이라는 핏줄로 엮인 '민족공동체'(Die Volksgemeinschaft)가 정치 기반의 모든 것이 되었다. 더 설명할 필요없이 극우민족주의다.

그럼 당시 지식인들은 어땠을까. 이를테면 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쿠르트의 아버지 같은 사람은 어떤 살을 살았을까.

일례로 1933년 프라이브루크 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된 유럽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 교수. 한 때 집권자 히틀러를 옹호했으나, 총장이 된뒤 나치즘 찬동에 미적댔던 그는 전후 유대인 연인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변명에도 '친나치'와 '당대의 철학자'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나치 정권에 저항적인 의지가 보이거나 반발이라도 하면, 바로 수용소로 수감됐던 시절.

나치에 반발하다 끝내 먹고 살려고 나치 뱃지를 달았던 쿠르트의 아버지는 종전후 나라가 동서독으로 분단되고 살던 지역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동으로 몰려 교사 복직도 못한채 숨만 쉬고 살았다.

나치가 통치세력으로 있던 때도 개인 보다 공동체를 외쳤던 다수가 공산주의가 들어서자 다시 공동체를 말하는 시대. 

반면 누구보다 나치즘을 옹호하고, 종전후 숨쉴 틈 없이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칼 제반트 교수는 여생을 기득권으로 살았고,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지방 호족으로 살아남았다.

'타인의 삶'을 만들었던 감독,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긴 '작가 미상'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14년전 영화 '타인의 삶'(2006)을 통해 어떻게 국가가 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감시/관리하고, 말살 억압해왔는지를 폭로했다면, 신작 '작가 미상'은 전체주의라는 억압 기제를 향해 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자유를 말하고, 어두웠던 과거사를 폭로하는지를 부연한다.

극중 화가인 쿠르트는 열 마디의 발언 보다 어렸을 때 자신에게 크나큰 영향을 줬던 엘리자베스 이모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 표현했다.

'작가 미상'의 실제 모델이자 현대미술의 거두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가의 대표적인 기법인 포토 페인팅. 그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전, 서독으로 망명하고 그의 작품 세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어렵게 볼 것 없이 이것은 1960년대 중반, 유럽 문화를 부활시킨 아방가르드 운동과 연관되어 있다.

1960년대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와 전후 반성 하나 없이 물질문명으로 치닫던 서구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아방가르드 예찬론은 전위 예술과 물질 만능주의의 충돌로 해석하고 있다.

영화 '작가 미상'은 개인의 삶을 말살하는 전체주의라는 비극,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극적인 반전이 담긴 영화다.

하지만 러닝타임 189분이라는 시간 동안 미술화가 쿠르트(톰 쉴링)의 일생을 통해 관객들이 봐야할 대목은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 그의 불운했던 가정사, 여기에 비극으로 치닫던 무수한 사랑이 기나긴 과정으로 담겨있다는 점이다.

개봉뒤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작가 미상'에서 특히 잊지 말아야할 점은 극중 주인공 쿠르트가 늘 머릿 속에 담고 있던 이모 엘리자베스에 대한 회상이다. 이것은 이 기나긴 서사의 한 축이자, 망각으로 가득한 우리네 삶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있는 자유이자, 사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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