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20.02.13 18:18

[권상집 칼럼] 사대주의를 경계한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국제 수상에 대한 사대주의를 경고한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이 주는 교훈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 4개 상을 받은 그 다음날 주요 신문의 1면은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지배했다. 영화, 방송, 음악 등 콘텐츠 모든 분야를 포함해 조중동, 한겨레, 경향 등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인물은 봉준호 감독이 사상 최초이다. 과거 대한민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서태지의 컴백 및 은퇴 소식도, 빌보드 1위를 2년 연속 차지한 BTS도 주요 일간지의 1면을 모두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사는 다방면으로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건 우리가 그 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핵심인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 등을 모두 그가 차지한 데 있다. 국내 최고의 감독에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올라섰다는 기사가 등장했고 봉준호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글로벌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고 CJ ENM을 넘어 글로벌 최고의 영화사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합작을 제안했다는 기사까지 보도되었다.

아카데미상에서 기적을 일궈낸 봉준호 감독 역시 수상 소감을 통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환희를 표현했으나 역설적으로 사대주의를 경계한 봉준호 감독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세계 영화 전문가들의 시선을 돌려놓아 아카데미상 수상의 신화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는 평소에도 아카데미상은 글로벌 영화제가 아닌 로컬(Local)영화제일 뿐 여기에 너무 큰 기대나 의미를 부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지나친 미국 일변도의 사대주의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 ©A.M.P.A.S.®

그는 지난해 청룡영화제 시상식에 직접 참석해서 주변 영화계 인물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최고 권위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물이기에 시시한(?) 국내 영화제에 참석할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후, “한국영화로 청룡영화상 수상은 처음이다. 욕심 났던 상이다”라며 국내 영화제의 수상도 글로벌 영화상 못지 않게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의 이번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대해 모든 이가 환호를 보낸 건 아니다. 미국 방송인 존 밀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봉준호는 한국어로 소감을 말했다. 미국을 파괴한 것”이라며 영어로 소감을 전하지 못한 점을 비꼬기도 했으며 일본의 야후 제팬 포털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 납득이 가는가?”라는 설문을 인터넷으로 진행하여 국내 네티즌의 빈축을 샀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사대주의를 강조하는 이들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인터넷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 영화의 영향력에 비해 왜 아카데미 수상은 받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그 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상은 국제 영화제가 아닌 지역 영화제일뿐이다”라며 미국 위주의 시선과 평가를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어 미국 중심의 평가와 사대주의를 혐오하는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미국만 떠올리면 무조건 굴종하는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가 울림이 큰 이유는 국내가 유독 미국 중심의 사대주의에 완전히 엎드리는 부적절한 관행이 곳곳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유학 생활과 해외에서 제조한 제품을 최고로 인정하고 국내에서의 권위보다 유독 미국에서 권위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에 봉준호 감독의 반 사대주의 발언은 분명 이색적인 수준을 넘어 반기에 가까운 행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사대주의 경계 발언은 아카데미의 평가 기준을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국내는 여전히 사대주의의 틀 안에 그대로 멈춰 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자 그의 모교는 곧바로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고 국내 언론 역시 아카데미상 수상을 통해 글로벌 수준으로 우리 나라 영화의 위상이 올라갔다며 모든 기준을 여전히 미국의 시선과 평가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같이 세계적 수준이 되기 위해서 한국 고유의 경쟁력을 찾아야 하고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기사나 평론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 진입과 할리우드 영화계에 도전하기 위해 그간 국내 문화콘텐츠 업계는 늘 미국 중심의 시각을 바탕으로 시행착오만 거듭해왔다. 빌보드에 진출하기 위해 항상 아이돌 그룹 중 한 명을 외국인 멤버로 선정하고 영어 노래를 불렀음에도 빌보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가수는 한 명도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에 걸맞는 대규모 자본과 화려한 액션, 글로벌 합작 영화가 미국 영화계 주류의 평가나 흥행에 성공한 경우 역시 단 한번도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BTS의 빌보드 1위는 이런 면에서 공통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영화 <기생충>과 BTS의 노래는 전 세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토대로 탄탄한 스토리를 구성했기에 세계적 수준의 흥행과 비평을 동시에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봉준호 감독은 “1인치의 자막이 주는 장벽은 이미 많이 허물어졌다”고 얘기했다. 그의 수상은 사대주의적 시선으로 모든 기준을 세우지 말고 오직 한국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사대주의를 경고한 그의 메시지가 결국 미국 중심의 시각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