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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9.12.21 22:27

'애마 부인'으로 80년대 평정한 정인엽 감독의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윤희 스타등극 알린 이 영화, 하명중·박원숙·김추련·도금봉 라인업

▲ 정인엽 감독의 1979년작 '꽃순이를 아시나요'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1970년대 후반은 한국영화의 전환기다. 작품들 한편 한편을 찾아 줄거리, 영상 등을 읽고 관찰하다 보면, 초반 군부독재의 통치 강화와 보수적인 사회 구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기말과도 같은 영화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고,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TV방송, 언론매체는 할 말이 있어도 못하던 시절. 그래도 영화 장르만큼은 할말 다하고 산 것 같다. 검열이 심했을텐데 정권의 뒷모습과 동성애를 다룬 '화분'(감독 하길종, 1972) 같은 영화는 지금도 놀랍고 파격적인 스토리다. 

호스티스 영화로 등장한 최인호 소설 원작 '별들의 고향'(감독 이장호, 1974), '바보들의 행진'(감독 하길종, 1975),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도 찌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창수(송재호)와 영자(염복순)의 열연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1975년을 지난뒤 극장가에 변화가 나타난다. 1975년 1월 이장호 감독의 '어제 내린 비'가 데카당스의 전형을 살짝 보여주더니, 점차 성인용 영화 이른바 호스티스 무비가 유행했다.

'나는 77번 아가씨', 'O양의 아파트'(1978), '꽃순이를 아시나요', '가을비 우산속에'(1979)까지 한편의 열외도 없이 흥행 성공을 거둔다. 이 나열된 영화들은 호스티스 무비라고 보기엔 세기말적인 묘사가 다수 포함됐다.

호스티스 무비의 가장 흔한 장소 혹은 소재는 고급 요정, 다방으로 당시 퇴폐적인 경향과 문화를 담고 있다. 잘보면, 부르주아의 변덕과 유희를 예술사조에 포함시켰던 18세기 로코코와 성격이 유사하다. 

로코코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프랑스 루이 왕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러시아 짜아르 왕조, 영국은 독일계 하노버 왕조를 중심으로 귀족문화가 가난으로 고통받던 서민계층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부르주아계급 사이에서 확산됐다.

그러고 보니, 1970년대 후반 한국도 18세기 유럽의 로코코 문화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10.26사태 발생 전의 당시 한국은 전환기라고 봐도 무방할만큼 통치 억압과 자유 방만이 대립 관계처럼 서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호스티스 무비가 대세를 이룬 것이다. 변태와 쇠락이 눈에 띄는 한국판 데카당스 문화가 표출된 것이다.

여기에 호스티스 무비 맞은편은 1976년 '고교얄개'를 시작으로 익살과 고교생들의 일상을 가볍게 그린 '얄개' 시리즈로 청소년을 소재로한 작품들이 충무로 건전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쪽은 분열과 일탈이 확산된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다른 한쪽은 건전성을 강조하던 70년대 후반. 흥미로운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만이 호스티스 무비를 유행처럼 포장하고, 내부는 자기 주체성을 드러냈다. 다름아닌 정인엽 감독의 흥행작 '꽃순이를 아시나요'(1979)이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보수적이고 획일화된 사회 향해 '여성 주체' 내세워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40년전 개봉해 다양한 화제와 흥행성공을 달렸던 정인엽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아울러 당대 최고의 배우로 알려진 정윤희의 출세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1979년 5월 25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해 누적관객수 216,628명을 기록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또한 이 작품은 무협영화와 영자의 전성시대로 이름난 태창흥업이 제작하고, 유동훈 감독과 박남주 각본가가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스토리를 봐도 이 영화 전후로 개봉했던 유사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살펴보면, 은하(정윤희)가 서울로 온 이유는 가난 때문에 월남전에 참전한 같은 고향 오빠 윤봉수(박일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서울행을 선택한 것은 자기 의사가 분명했던 것. 자기 주체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호스티스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스티스물은 박호태 감독의 정윤희 주연작 '나는 77번 아가씨'(1978)가 더 어울린다. 

가령, 산골처녀 윤고나(정윤희)가 서울로 상경, 다방에 취직해 인기 호스티스로 살았다는 설정은 당시 사회상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아버지 빚 때문에 송계남(김희라)에게 억지로 혼인한뒤 딸까지 두고도 남편 계남의 무분별한 언행에 결국 서울로 떠나 호스티스로 살았다거나, 그뒤 부유하고 지적인 문병길(하명중)을 만나 해피하게 막을 내리는 이 영화는 호스티스물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에 잘 맞는다. 통속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나열이다.

하지만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달랐다. 남성 중심 사회가 굳건한 서울. 고향 오빠 봉수를 만나고자 서울행을 선택한 은하(정윤희)는 그 사이 만난 남성들의 폭행과 순수한 구애, 그리고 자살과 낙태를 은하 스스로가 선택하고, 마무리 지어버린다. 이런 은하의 스스럼 없는 모습은 영화가 종반부로 마무리 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남성 중심사회에서 자기 주체를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비록 은하의 비루함이 드러날 지언정, 선택에 따른 자기 주체는 은하(정윤희)가 가져갔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이후의 정인엽 감독이 내놓은 '애마부인' 1980년대 평정해

지난 3월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최된 한국영화100주년 연구회 세미나 제98회차에서는 '애마부인' 시리즈로 1980년대 극장가를 평정했던 정인엽 감독의 대표작 상영과 대화가 진행됐다.

첫번째 상영작은 정윤희를 스타로 등극시킨 '꽃순이를 아시나요', 두번째는 정인엽 감독의 멜로영화 대표작 안소영 주연 '애마부인'(1982)도 상영됐다. 그뒤 실험영화 '기억의 소리'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이공희 감독이 '멜로장르 컨벤션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세미나가 끝난뒤 그날 하루 두 작품에 대해 곰곰히 곱씹어 봤다. 먼저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성난 영웅들'(1965)로 데뷔한 정인엽 감독의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자기 주체가 바탕이 되어, 위기에 대항하며 좌절과 동시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는 프론티어가 담겼다. 마크 트웨인의 프론티어 정신을 닮았다.

▲ 정인엽 감독 영화 6편 포스터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이는 정인엽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봐도 대동소이한 양상을 띄고 있다. 가령, '명동 왈가닥'(1967), '별명 붙은 여자'(1969), '결혼교실'(1970),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1970), '아리랑 아!'(1977), '고교야구 자! 지금부터야'(1977) 등 숱한 코미디, 멜로,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이 정인엽 감독의 한결 같은 '자기 주체'라는 범주를 계승했다.  

여기에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애마 부인' 또한 현모양처를 롤모델로 삼은 사회내 보수성과 남편의 무관심에 대한 증오로 시작된 방황과 유혹, 그리고 이어진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탐미는 에로티시즘으로 혹은 동성애로 나타났다.

하지만 치환되는 과정 끝에 주인공 오수비(안소영)의 선택으로 무너진 삶을 복구하려 한다. 결국 '애마 부인' 또한 자기 주체가 분명히 담긴 것이다.

하물며 과감한 노출 장면도 거의 없는데, 노출씬이 전부인양 일부 호사가들 입방아로 포장된 '애마 부인'. 단순히 배드씬과 불륜으로만 보는 시각은 매우 편협하다. 

보는 사람의 시각이 만든 사람의 시대 정신과 감각을 이해못한 시대 때문이 아닐지? 

▲ 1982년 임동진, 하재영, 안소영 주연작 '애마부인' 포스터

한편 정인엽 감독은 현재 새롭게 기획된 영화 한편을 제작하고자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희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정인엽 감독이지만, 이분은 영화를 시작한 60년전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다.

정인엽 감독의 작품들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연세가 어찌되는지"로 여쭤봐야만 한다. 그럼에도 당시의 영화는 지금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현실이며, 정치와 시대가 변해도 발자취는 현장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당시 영화 속에 비춰진 사회상이 작금의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정인엽 감독의 탐구와 열정은 첨단기술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으며, 20세기에 아날로그로 촬영된 필름이 디지탈로 바뀐들, 당시와 현재는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애마부인'으로 80년대를 풍미하고 평정했던 정인엽 감독. 감독의 1979년 개봉작 '꽃순이를 아시나요'가 일관되게 여성 주체를 어필했듯이 현대 영화사에 있어서, 어쩌면 한국 영화 100년사에 있어서 정인엽 감독의 걸음, 걸음은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과 대화로 남겨질 듯 싶다.

정인엽 감독의 영화들은 비단 한국영화사 뿐만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대한민국 사회의 밝고 쾌활한 모습과 그 뒤에 감춰진 어두운 단면으로 그 예로 회자되고, 기억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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