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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9.12.18 09:47

기대되는 걸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내년 1월 16일 개봉

모두 정해진 삶, 이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헤매던 그녀들의 짧았던 해방구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1791년에 제정된 프랑스 최초 헌법은 자유의지와 인민주권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자유를 두고 다양한 사례로 명시하고 있다. 과연 그 후로 인간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있었을까.

1770년대 프랑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돌이켜보면, 이상주의적인 철학 담론과 국가관이 인간 보다 먼저였던 것.

인간에 대한 성찰은 펄 벅 여사의 '대지',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이상의 '날개'와 같은 현대 소설로 시작해 20세기 들어 영화가 확산시켰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과 성찰을 다룬 영화로 뭐가 있을까.

1954년 페더리코 펠리니 감독의 '라 스트라다'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다소 이념 갈등을 바탕으로 깔았지만,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이 내놓은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1984)도 떠오른다. 1990년대 걸작들도 아른거린다. '피아노', '필라델피아'(1993), '파리넬리'(1994),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인생은 아름다워'(1997) 등등. 

그럼 내년 1월 16일 개봉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어떨까.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막판까지 경합했던 이 영화는 내년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로 올라있다. 또한 앞서 올해 LA비평가협회, 보스턴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한 귀족 집안의 명운을 위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엘로이스(아델 에넬),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발레리아 골리노)로부터 엘로이스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랑)의 이야기다. 

엘로이스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그녀가 산다는 외딴섬으로 떠난 마리안느. 원하지 않는 결혼, 심지어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약혼자에게 엘로이스의 초상화를 그려 보내야만 하는 상황. 

바닷 바람이 심하게 부는 외딴 섬에서 만난 엘로이스는 어땠을까. 어떤 인상을 품고 있었을까. 더구나 설득도 힘들다는 엘로이스 몰래 초상화를 그려야만 하는 마리안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리안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엘로이스 눈빛은 경계, 두려움 그리고 형언 못할 분노가 드리워져 있다. 늘 바다만 바라보는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마리안느. 소통은 부재했고, 대화도 형식적인 첫 만남과 그후 며칠간.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만남을 이어준건 다름아닌 엘로이스의 시종하녀 소피(루아나 바야미)다. 남몰래 사랑한 남자의 아이를 품은 소피. 얼마안가 엘로이스, 마리안느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이 세명의 여인들은 서로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공유하기 시작한다.

고초만 가득한 소피 처지와 소통을 통해 계급을 넘어, 의뢰인과 의뢰대상이라는 관점을 벗어나면서 비로써 세 여인의 솔직함이 드러난다.

이후 이들은 섬에 사는 아낙네들이 밤마다 담소를 즐긴다는 비밀 장소를 찾아간다. 들불로 밤을 밝히며 모두가 부르는 아카펠라. 버릴 것 하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삶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관람하며 내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과연 인간과 사랑은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

성경책 그것도 신약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 사랑. 과연 18세기 부터 21세기까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됐을까. 아니면 그 반대로 사랑은 깨진채 비참하고 억압된 삶을 그대로 이어 받았을까.

한편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동성애라는 주제가 붙어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랑이건 어떤 관계이건 이 영화만큼은 동성과 이성 관계를 다루기 보다 더 큰 주제인 사랑을 다뤘다.

혹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두고 '피식' 거리고 비웃을 수도 있으나, 사랑은 그 어떤 철학 혹은 담론, 국가관 보다 먼저다.

사랑이 없었다면 아담과 이브 이후의 시대는 존재할 수 없었고, 예수는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사랑이 없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성경책은 현대사회에서도 일부만 엿보는 영지주의 일파의 뻔한 주장으로만 들렸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억압기제가 여전히 활개를 치는 21세기. 성소수자, 여성, 어린 아이들이 전통과 국가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누렸어야할 자유와 의지, 그리고 사랑은 언제쯤 제대로 된 날개를 펼칠수 있을까.

러닝타임 121분(15세 관람가),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배급하고, 내년 1월 16일 개봉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마블 액션과 사이언스픽션을 원한다면 이 영화를 굳이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간(자신)에 대한 성찰과 사랑에 대해 좀 더 깊은 내면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싶다면, 여지없이 강추할만한 걸작이다.

덧붙여 해외에서는 이미 '마스터피스'라고 불리우는 이 작품이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내년 1월 개봉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메인포스터(그란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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