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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9.11.16 21:06

[권상집 칼럼] 꿈과 소망을 짓밟은 프로듀스의 허망한 조작

지원자들의 꿈을 수단으로 삼은 오디션 기술자들의 몰락

▲ '프로듀스 X 101' 포스터 (Mnet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엠넷은 2009년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독보적 위상을 구축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슈퍼스타K’ 열풍에 동조하기 위해 대국민 차원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성급히 제작, 모방하면서 엠넷의 안준영 PD와 김용범 CP는 국내 최고의 오디션 전문가로 더욱 높은 인정을 받았다. 엠넷이 지상파를 제압하고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강력한 No.1 채널 파워를 구축한 건 10년간 다양한 규모와 장르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확대해왔고 더 크게 판을 키워온 성과 때문이다. 엠넷에게도 오디션은 판타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엠넷이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의혹을 보낸 시청자나 지원자들의 불만은 최근 4~5년간 끊이지 않았다. 편집 과정에서 자신의 활약상이 모조리 잘려나간 지원자들의 불만이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일부 지원자는 팬들이 보내준 인기 체감도와 방송에서의 인기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에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린다는 폭로를 터뜨리기도 했다. 또한, 인터뷰 내용을 악의적으로 조작해서 자신에게 악성 댓글이 달리게 만들도록 인터뷰 과정 전체를 왜곡, 편집했다는 지원자들의 불만 역시 계속 이어져왔다.

의혹이 커질 때마다 엠넷은 일관되게 악마에 의한 편집 또는 발생한 사태에 관해 유감이라는 모호한 말로 4~5년간 이어져 온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한 외부의 의혹과 시선을 철저히 차단해왔다. 자극적인 방송과 화면, 우여곡절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 등으로 매회 논란이 이어져왔지만 이 자체도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라며 제작진은 항변했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 후 탈락한 이들이 추후 다른 방송에 나와 “오디션 프로그램은 내정자가 있는 것 같아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음에도 제작진은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프로듀스 시즌 전체가 조작 파문에 휩싸이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구자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온 안준영 PD와 김용범 CP가 구속되었고 수사는 고위 임원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다. 경찰은 구속된 PD들이 연출한 슈퍼스타K나 댄싱9 등 유사 경연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조작 정황이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한다. 가히 오디션 레전드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개된 문자 투표 결과가 조작이 된 게 틀림없다는 항의와 불만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퍼져 나갔지만 이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엠넷 역시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이번 엠넷의 프로듀스 조작 논란을 보며 상당수 수학자들이나 여론 분석 전문가들이 의아해한 점은 조작 정황 자체도 지극히 기초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초보적인 수준으로 조작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1위부터 20위까지 얻은 득표 수가 특정 숫자로 떨어지며 등차수열 공식에 의해 맞아 떨어진다는 점을 대다수 학생과 시청자들이 확인했음에도 제작진은 외부 반응에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쯤 되면 시청자들의 불만과 항의를 제작진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거나 수학의 기초도 모르고 조작을 적극적으로 밀어 부쳤다는 말이 된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기획한 안준영 PD와 김용범 CP는 틈날 때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한 수많은 지원자들의 열정과 꿈, 소망을 통해 더 많은 점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을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다. 그 동안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지원자들의 꿈과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달렸다는 발언과 달리 그들은 프로그램 뒤에서 다양한 조작을 통해 지원자의 순위를 뒤바꾸고 여러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이들을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률의 수단으로 삼았다. 꿈을 위해 매달렸다는 그들은 정작 지원자들의 꿈을 매 순간 조작했다.

엠넷이 지상파보다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2010년 ‘슈퍼스타K2’에서 허각이라는 환풍기 설치기사를 최고의 가수로 발굴했기 때문이다. 2010년 허각이 대국민 오디션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공정사회의 대표적 모델이라며 허각을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 초대했고 허각은 “꿈이 있는 사람에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사회”라고 언급해 모든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 결과 엠넷의 오디션은 지상파가 이루지 못한 공정사회의 대표적 모델로 꼽히며 급성장을 거두었다.

지난 10년간 엠넷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엠넷이 2010년 이후 지상파를 견제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수많은 지원자의 꿈과 소망을 실현하는데 엠넷이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10년 소박한 시민의 꿈과 소망을 실현시키며 공정사회의 모델이라고 인정 받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그로부터 9년 후 지원자의 꿈과 소망을 짓밟고 공정한 과정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로 뉴스에 오른 건 이례적일 정도로 황망한 사례이다. 초심을 잃고 구속된 PD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접대와 횡포의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꿈꿔온 소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된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변질되었다는 비난을 받은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기획사에 소속된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기획사와 제작진의 돈독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말이 가수 지망생들 사이에서 퍼져나갔고 오디션의 신뢰도는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구속된 PD들은 ‘사람 냄새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 냄새는 온데간데 없고 돈과 조작이 넘쳐나는 오디션을 기획한 프로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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