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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3 07:57

최고의 사랑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폈을 때..."

화룡점정을 향해서...

 
원래 어떤 일이든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렵다. 시작이 어려운 것도 그것을 마무리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모한 사람의 시작은 쉽고 지혜로운 사람의 시작은 어렵다. 물론 무모한 시작은 끝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의 시작은 끝까지 하나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 아닌가. 그야말로 그린 듯하다. 수술이 끝나고 두 달, 어느새 건강해져서 돌아온 독고진(차승원 분)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상은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아련하기까지 하다. 마치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처럼. 에필로그처럼.

구애정(공효진 분)은 독고진에 대한 감정을 곱씹으며 정리하며 씩씩하게 자기 일 하며 열심히 살고 있고, 약재시장에 리포터로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윤필주(윤계상 분)는 그야말로 오랜만의 우연한 반가운 만남과도 같다. 여전히 앙금은 남았지만 그리움이나 미안함보다는 단지 오랜만에 만난 인연이 반갑고 즐거운 그런 질풍노도의 시간이 지나간 평화로움일까?

윤필주가 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굳이 매니저를 시켜 "이상한 나라의 폴"의 캐릭터에 자신과 윤필주의 얼굴을 합성해 놓고 좋아하는 강세리(유인나 분)은 마치 첫사랑에 설레어하는 소녀와 같이 귀여웠다. 처음에는 자기가 한 것처럼 자랑하려다가, 그러나 그러면 스토커나 변태처럼 보일까봐 자기 핸드폰 바탕화면으로만 혼자서 즐기려 한다. 혹시라도 대마왕 독고진과 닮아서 싫다고 할까봐 대답을 듣기를 두려워하는 그녀와, 그녀를 굳이 버섯돌이라 부르는 윤필주, 어쩌면 소년에게는 소녀가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윤필주도 소년일 테니까.

"우리의 첫장면은 분명 극적인 멜로였어. 그래서 우리의 첫장면은 같은 멜로이든, 가볍게 분위기 전환할 로맨틱 코미디이든, 불지르고 에로든, 당연히 이런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런 불륜 치정극에 비명소리 섞인 호러는 뭐야?"

많은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끝맺을 때 쓰는 기법 가운데 하나다. 이성에 대한 편력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면 마지막 장면에도 그것을 삽입해주는 쪽이 여운이 길게 남는 법이다. 오해에서 시작되었고 오해로 점철되었다면 마지막까지 오해를 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좋은 남자가 있어 갈등과 위기가 있었다면 그가 마지막에 등장해 두 사람 사이에 불을 질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 멜로든 호러든 막장치정극이든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모두 아우를 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구애정과 윤필주의 만남에 분노한 독고진이 구애정의 집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놀래키는 것처럼. 치를 떨고 분노하지만 그러나 우습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구애정의 말처럼 가족드라마 뿐이다.

"장르는 일단 가족극 쪽으로 바꾸죠. 밥은 먹었어요?"

오랜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하고, 그러면서도 당연한 일상처럼 서로를 반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극적인 로맨스도 밥은 먹고 가야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원래 가족드라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일상에 가깝다. 현실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관계와 현실적인 사건과 이야기들. 여상하게 이루어지는 일상의 잔잔함이 가족드라마의 매력이다. 현실로 돌아와 구애정이든 독고진이든 현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현실의 관계로써. 그래서 가족드라마에서의 갈등은 평범하지만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깊이와 완고함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이다. 드라마는 그렇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가운데서도 마지막 긴장과 반전을 놓치 않는다. 아직 두 사람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죽었다면 비련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었을 테지만, 살아있기에 앞으로 살아서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음이라는 당면한 절박함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독고진은 부담스러운 톱스타이고, 구애정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3류 비호감 연예인일 뿐이다. 독고진 자신을 위해서도 구애정 자신을 위해서도 현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윤필주까지 저리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물러서 있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아련한 에필로그의 분위기가. 마치 압축하듯 이제까지의 모든 관계와 갈등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까지 독고진과 구애정, 그리고 윤필주와 강세리 등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는 현실의 압박 속에 긴장은 고조되며 결론을 강요당한다. 어떻게 에필로그는 끝을 맺을 것인가.

역시나 여기서도 하필이다. 하필 감자탕집에서. 그리고 하필 감자탕집에 걸린 흐드러진 감자꽃을 보면서.

"널(감자) 꽃피우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하지만 감자는 애써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는 작물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의 최대 업적은 유럽으로 감자가 소개된 것이라 하던가. 굳이 크게 손이 가지 않으면서도 잘 자라고, 영양도 만점인 감자는 오랜동안 굶주림에 시달려 왔던 인류에게 크나큰 구원이었을 터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감자는 자라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줄기를 뻗는다.

아마도 감자탕 집 벽에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사진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의 메밀꽃과 닮았을 것이다. 동이가 자기 아들임을 확인한 허생원의 희열이 달빛 아래 흐드러진 메밀꽃을 통해 형상화되었듯, 그 순간 독고진은 토크쇼에서 구애정에 대한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생원에게도 메밀꽃이 피었고, 구애정에게도 감자꽃이 피었다. 그것은 고난한 삶을 살았던 복녀의 감자꽃이며 독고진이 그토록 피우려 했던 구애정 감자의 꽃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은 아니겠지만.

그러고 보면 얼마전 한 인기아이돌의 멤버와 새로이 주목받던 인기 여자연예인의 결별소식이 발표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따라붙는 반짝스타이며 거품이었다는 비난. 그래서 두 사람의 헤어짐은 당연하다는 비평을 가장한 비아냥들.

연예인의 만남이란 그렇게 힘들다. 만인의 연인이라는 것은 당연한 만남에 대해서조차 그 만인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열애사실을 잘못 발표했다가 연예인으로써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내몰린 연예인도 있다. 그나마 조용히 팬으로써의 지지를 접으면 좋은데 그것이 질투가 되고 폭력이 되면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힘들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커플이 그렇게 힘들게 사귀고 고통스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아니 그럼에도 좋은 사랑을 하고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커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과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에게 그것이 과연 쉬운가.

"앞이 뻔히 보이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무시하자는 말을 해요? 나는 추락해 봤어요. 저 꼭데기에서 저 밑바닥까지 한 순간에 떨어졌어. 나는 당신이 내가 겪은 걸 다 당할까봐 그게 더 무섭고, 그 뒤에 나에 대한 원망이 어떨지도 잘 알아요.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마냥 착해서 미나나 세리 원망 안하고 나 혼자 다 덮으며 살았는 줄 알아요? 아니에요. 솔직하게 속으로 천 번 만 번 미워하고 원망 했어요. 나는 당신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까봐 제일 무서워요."

구애정의 말이 바로 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열애사실로 인해 인기가 떨어지고 일마저 끊기자 결국 헤어지고 만 한 커플의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헤어지자고 말한 것은 더 인기가 추락하고 더 궁지에 몰렸던 남자 쪽이었었다. 차라리 헤어짐보다 무서운 것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서로를 지겨워하는 것이다. 차라리 헤어지고 그리워한다면 그것으로 아파하겠지만 서로를 지겨워하고 짐이라 여기게 된다면 함께 하는 순간마저 고통이다. 사랑했다는 그 기억마저도 고통일 수밖에 없다.

구애정은 그것을 경고한 것이었다. 사랑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더구나 연예인에게는. 단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독고진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를 알면서도 이대로 끝까지 가 볼 것이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서로를 위해 끝낼 것이냐. 결국 그것은 더 큰 것을 잃고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독고진의 몫인 것이다. 그래서 감자는 꽃을 피우기 힘든 것이고.

사실 필자도 감자를 키운 적이 있었다. 카레를 만들려 샀는데 게을러서 카레가루는 라면 끓이는 데 넣고 감자는 그만 두었더니 싹이 나 버렸다. 당근도 같이 길렀는데 당근은 썩어버리고 감자가 싹이 자라 제법 크게까지 자라고 있었다. 아쉽다면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고 말았달까? 아마 실내에서 기르기에 감자는 그다지 적합한 품종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문득 독고진의 감자를 보면서 이입하게 되는 이유다. 독고진의 감자는 예쁘게 잘 자랐다. 필자의 감자는 참 지저분하게 무성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러나 에필로그의 한적함은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이것이 모두 끝이구나 싶으면서, 그러나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구나. 이사를 하는 마음일까? 이사짐을 싸는데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설레임과.

아마 이래서 한국 드라마에서는 라이브녹화가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거의 라이브로 대본을 쓰고 촬용을 하면서도 이런 퀄리티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하긴 라이브가 아니면 불가능한 작품이기도 할 터다. 이 독특한 분위기는 라이브에서나 가능하다.

마침내 대미를 앞두고. 기대가 크다. 예고편에서의 충격적인 반전도 있어서. 과연 낚시일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작가는 시청자를 쥐고 흔들고 놓지 않으려는 것일까? 마지막까지 재미있다. 보고 나서가 더 재미있다. 명품의 완성을 기대한다. 화룡점정의 믿음이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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