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2 07:51

미스 리플리 "총체적 난국, 캐릭터밖에 없다!"

 
MBC의 월화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장미리(이다해 분)라고 하는 복잡한 내면을 갖는 캐릭터일 것이다. 사실상 다른 모든 요소들 - 다른 등장인물들이나 사건들은 오로지 이 한 가지만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의도한 것인가는 있다.

너무 허술하다. 물론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 먼저 송유현(박유천 분)은 나름대로 세상경험도 해봤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아직 어린 도련님이라는 증거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눈에 반한 상대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직 10대의 소년소녀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그 꿈에 맞게 이상화하여 생각하려 한다.

문희주(강혜정 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대책없는 낙천은 그녀가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녀는 손쉽게 장미리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졸업장을 훔쳐다 자신의 학력을 위조하고, 그로 인해 학력위조와 관련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그녀를. 어쩌면 그녀는 송유현을 사랑하기보다, 아니 친구 장미리를 위해 양보하기보다, 사랑하는 남자를 친구를 위해 참아야 하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그녀의 행동에서는 장미리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깊은 거리가 느껴진다.

장명훈(김승우 분)의 경우는 실패한 결혼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과 장남이라는 중압감에 꿈조차 꿀 수 없었다고 했다. 전처 이귀연(황지현 분)과의 결혼을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 어느새 업계 최고라고 인정받는 위치에까지 이르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작 가장 신경쓰고 책임졌어야 할 이귀연을 소외시키고 마침내 그녀로 하여금 이혼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어쩔 수 없이 완벽해야 했던 그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 수 있다. 그가 전처와 이혼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 하필 장미리가 곁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래서 송유현은 장미리에게서 이상을 본다. 정확히 그는 장미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미리를 통해 유형화된 자신의 이상을 보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미리와는 상관없는 송유현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마치 문희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희주와의 사이를 좋은 친구 사이라 단정하는 그것처럼. 모둔 것이 분명하고 명확하다.

문희주는 말 그대로 자기가 좋으면 다 좋다는 송유현과 비슷한 타입이고, 장명훈도 결국 장미리를 통해서 지난날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아내와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 믿어주고 싶고, 어떻게든 배려해주고 싶고, 그러지 못해서 전처와도 헤어졌으니.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그가 간절히 원하던 그것을 장미리가 해주려 한다. 전처가 해주지 못했고 자신이 해주지 못한 그것을 장미리를 통해 본다. 역시 지극한 자기애다.

어쩌면 장미리를 둘러싸고 모든 것이 장미리만을 위해 허술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누구도 장미리의 실체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누구 하나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작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장미리 따로, 송유현 따로, 문희주 따로, 장명훈 따로. 그래서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장미리는 너무나 수월하게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발전시킨다.

그러면 장미리는 어떨까? 내가 장미리를 흥미로워하는 이유일 거이다. 이 여자에게는 목표가 없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구조차도 없다. 그래서 지난번 장미리에 대해 길잃은 어린아이와 같다 표현한 적이 있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린아이란 단지 있는 그것을 욕심내고 그것에 집착하려 든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가? 송유현과의 결혼? 송유현과 결혼해서 몬도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안주인이 되는 것? 아니면 장명훈의 따뜻함과 편안함일가? 이미 호텔리어로써의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고 인정받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지금 장명훈의 추천으로 추진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특강은 그녀가 바라던 것일까? 처음 동경대를 나왔다고 거짓말하던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현재 송유현과 장명훈 사이에서 계속 양다리를 걸치기까지 그녀가 진정으로 바래서 그렇게 된 경우란 거의 없다 할 정도다.

어쩌다 보니 하마트면 사고가 날 뻔한 상대가 호텔A의 총지배인이었다. 그래서 취직을 하려는데 말을 하는 사이 실수로 동경대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동경대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를 위해서 나중에는 문희주의 졸업장까지 훔치게 되었고. 장명훈의 일자리를 옮기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문희주의 포트폴리오를 훔쳤다가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마치 떠밀리듯 그녀는 거짓말에 거짓말을 반복하며 위태위태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려고 해서가 아니라 우연이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이 또 거짓말을 부르고,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히라야마(김상태 분)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켜 파멸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그녀는 멈추지 못한다.

그녀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녀의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장명훈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송유현으로부터 다시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그들의 진심을 들었을 때. 기뻐해야 하는 순간임에도 그녀는 불안해 한다. 목적이 이루어졌으니 통쾌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한다. 전혀 예정에 없었던 까닭이다.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크게 번져버린 사태에 스스로 당황해서 울어버리는 어린 여자아이처럼. 그런 때조차 아이들은 곧잘 고집을 세우곤 한다. 과연 의도한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의도한 것인가? 의도한 것이라면 어디까지가 그 의도한 범위인가? 일단 송유현의 맹목과 장명훈의 어리석음, 문희주의 관용과 집착이 모든 위기로부터 장미리를 구하기 위한 장치임은 알겠다. 장미리의 어수룩함으로 인해 빠져든 함정을 오히려 바로 이들에 의해 도움받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보고도 못보고 듣고도 못 듣는 이들 세 사람의 존재에 의해서다. 오히려 주위는 어느 정도 장미리에 대해 깨닫고 있다. 즉 드라마의 타이틀롤로써 정작 주인공 장미리의 주도적인 역할은 없는 셈이다.

마치 그런 것이다.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주위에서 괜히 움직여 사건을 만들고, 그리고 다시 주위에서 그 사건을 해결하고. 그러면 주인공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주인공을 보아야 할까? 당장 드라마에 집중하기 위해서도 주인공이 필요한데. 최소한 주인공이 어떤 악의라도 가지고 있을 때 그에 동의하거나 반발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한다. 그에 비하면 <미스 리플리>에서의 장미리란 판단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인 적이 있는가.

그래서인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 다양한 것은. 표정밖에 지을 것이 없으니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로부터 당하는 사람이다. 쫓겨가며. 그래서 그녀는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다양한 무수히 많은 표정을 짓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일관된 표정이란 지금의 장미리에게는 의미가 없다. 매번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자신이 한 말에 반응하고, 자기가 한 행동에 반응하고, 주위에 반응하고. 그래서 그녀의 표정연기는 무척 흥미로운데 그러나 거기에서 의미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없다.

그녀의 야심에 동의한다면 그녀가 송유현의 마음을 얻고 장명훈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에 짜릿한 쾌감마저 느낄 것이다. 그녀의 야심에 부정적이라면 그러나 매번 찾아오는 그녀의 위기가 자못 통쾌할 것이다. 그녀를 동정하거나. 혹은 그녀를 미워하거나.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이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판단할 수 있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단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철저히 타자의 입장에서의 그녀에 대한 불편함이다. 그런 건 좋지 않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부재한 상황이다. 분명 주인공의 캐릭터는 존재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캐릭터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것이 없다. 드라마는 어디로 갈 것이며 각자는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주인공의 표정이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드러나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표정밖에 지어 보일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다해의 연기는 물론 훌륭하지만 이래서는 앞으로도 기대할만한 것이 없다.

과연 주인공 장미리는 다음주 9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어떤 말과 행동으로 또 어떤 상황을 유도할 것인가? 상상이 가는가? 그녀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사건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가는 것이? 자기가 한 짓에 그저 놀라고 울기만 하는 여자아이가?

타이틀롤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녀로 인해 드라마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외모만이 아닌 그녀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드라마에서 장미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의 역할이란? 무엇으로 그녀를 보도록 하는가.

대학강의가 그 계기가 되어 줄 수 있겠다. 송유현과도 부모를 만나고 돌아왔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면. 보다 더 솔직하게. 이제 슬슬 드라마의 중심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아쉽다.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필요하다. 가장 안타까운 점일 것이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