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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9 07:49

TOP밴드 '이런 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이트 플라워즈와 브로큰 발렌타인 '밴드음악의 현실'

 
원래 밴드음악은 유럽의 실내악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중상주의의 확산과 자본주의의 발생은 부르주아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계급을 출현시켰는데, 어느새 귀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이들 부르주아들이 귀족들의 문화를 탐내어 자기화시킨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실내악이었다.

이전까지는 귀족들이 부와 권력으로 음악가들을 자신의 정원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제 부르주아들은 음악가들을 자신의 정원으로 불러들이기보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려 찾아 나서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러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전업음악인이 나타난 것이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직접 악기를 배워 자신의 뜰에서 스스로 연주하며 즐기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신흥계급인 부르주아의 교양이었으며 귀족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나름의 사교의 장이었다.

당연히 부르주아가 귀족의 문화를 탐내듯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부르주아의 문화를 탐냈다. 하지만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것은 보통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일상이 각박한 노동자와 농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러한 비용과 노력을 대신한 것이 역시나 가난과 소외로 인해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흑인들의 본능이 만들어낸 재즈와 블루스 같은 흑인음악이었다. 전문적으로 알지 못해도 음악은 만들 수 있다.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여기에 1960년대 청년문화가 성장하며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게 되자 그렇게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만들어지는 밴드음악은 그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밴드음악이라 하면 저항과 파격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러한 탄생배경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바뀌지 않았으니,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연주도 하고 음악도 만들고 함께 어우러지기도 한다. 개라지록이었고, 1980년대 이후 인디문화가 성장하게 된 배경이었다. 함께 모여서 연주도 하고 음악 자체를 즐긴다.

어째서 한국사회에서는 밴드문화가 성숙하지 못했는가. 필자의 경우 바로 그러한 근본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밴드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장감, 일체감, 그러나 그것은 밴드를 먼저 관객 자신이 체화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된다. 6월 18일 방송된 방영분에서도 레디메이드라는 고등학생 팀을 두고 신대철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악만 들으면 여러분들은 오늘 합격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토록 형편없는 음악수준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앉은 심사위원 자신도 즐기고 있었다. 단순히 타인으로써 한 걸음 물러서서 듣고 감상하는 것이 아닌, 한 걸음 더 내딛고 다가가 함께 공감하며 즐기는 음악이 밴드음악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음악이란 여전히 듣고 감상하는 것이다. 듣는 음악으로써만 생각한다.

차이는 무엇인가? 작년 연말 KBS의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신사가 되어 보자며 고급레스토랑을 찾고, 미술관을 구경하고, 클래식과 발레공연을 보았을 때 보였던 일각의 반응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사치다. 낭비다. 서민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한 문화를 탐내어 자신이 누리려 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엄격하게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것. 노래는 가수가 부르는 것. 관객은 단지 듣는다. 그 상징적인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가 아닐까.

그래서다. 80년대까지 한국 대중은 조용필과 윤수일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니 송골매마저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80년대가 저물면서 밴드 역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밴드는 마니아들에 의해 어떤 엄격한 이미지로써 양식화되기 시작했다. 밴드란 이런 것이다. 밴드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원래 그런 것처럼.

당장 이번 KBS의 밴드서바이벌 <TOP밴드>에 대해서 밴드음악마니아 일각에서 그 수준일 이야기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게 어디 밴드인가? 그런 수준을 두고 어찌 밴드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만큼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밴드를 요구하는 일반대중의 취향은 밴드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둡고 완고한 이미지로 화석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의외였다. 한 바탕의 헤프닝인가? 처음 치어리더 출신의 팜팜밴드라는 밴드가 커버곡으로 출전했을 때, 더구나 그 복장마저 보는 눈을 의식한 듯 치어리딩을 하던 복장 그대로였다. 당장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김도균과 김영석마저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김도균이 합격을 판정하고 김영석이 음악수준을 문제삼아 불합격을 주었을 때 뜻밖에도 여성인 체리필터의 보컬 조유진이 이들 아직은 한참 미숙한 아마추어 밴드에 합격점을 주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해요."

그녀는 덧붙여 말하고 있었다.

"저는 너무 대한민국 살면서 가장 큰 불만이 왜 록음악이 저평가되고 메이저 음악씬에서 어둡고 소외되고 마이너리티의 길을 꼭 고집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현실이... 싫었거든요?" 

사실 이 부분은 필자 역시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부분 가운데 하나다. 한국사회에서 록이 - 밴드음악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록이란 이래야 한다. 밴드음악은 이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경직되어진 가운데 활력을 잃어버린다. 한국사람들이 원래 록이나 밴드음악을 싫어해서? 국민가요라고까지 불리우는 윤수일밴드의 "아파트" 역시 록이고 밴드음악에 기반하고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이 "미인"이라는 노래를 히트시켰을 때 록으로써였을까? 아니면 밴드음악으로써였을까? 그보다는 음악으로써였다. 노래로써였다. 그 장르가 록이고 형태가 밴드음악일 뿐. 그런데 변화무쌍하게 바뀌어가는 대중음악 환경에서 록이란 이런 것이다, 밴드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심지어 오랜만에 공중파에서 밴드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조차 엄격하게 따지고 묻는 것이다. 솔직히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도 그러고 나면 지친다.

음악이란 즐거운 것이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은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그 본질에 대해서. 록이 먼저가 아니다. 밴드가 먼저가 아니다. 음악이 먼저이고, 그 이전에 그로부터 얻고자 하는 원초적 즐거움이며 향유에 대한 욕구다. 굳이 엄격하게 따지며 들을 것 없이 보는 자체로 즐겁다. 밴드라는 것이, 밴드음악이라는 자체가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다. 근본에 대한 물음이다.

밴드음악은 어떻다. 하지만 현역 치어리더들이고, 복장이 그러하고, 연주실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가. 그보다는 그렇게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고 그래서 연주 정도는 용서해주게 되는 그런 기분이 좋아지는 밴드도 필요하다. 오히려 그런 밴드들이 늘어나야 밴드의 저변도 커지고 그만큼 밴드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도 커질 것이다.

아마 <TOP밴드>의 주제 아닌 주제일 것이다. 첫날부터 초등학생 밴드에서, 할머니 밴드, 경찰 밴드, 택시운전사 밴드, 서로 다른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한 데 모여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한다. 그다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그래서 설사 심사위원에 의해 떨어지고 말았다 하더라도 서운한 가운데 그들의 표정에서는 활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좋아서. 밴드가 좋기 때문에.

그래서였을까? "애오라지"라는 팀의 "Rock Star:라는 곡에 대한 손스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비방용이라는 것은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인데, 무려 그 자리는 여러 대의 TV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공중파 프로그램의 녹화장이었다. 만일 이것이 생방송이 아닌 녹화였다면? 그래서 예전 카우치라는 팀이 TV에 출연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던 끝에 겨우 메이저로 올라갈 통로를 마련했던 인디씬이 한바탕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이대로 비방용 단어가 수정 없이 그대로 들려진다면 <TOP밴드> 역시 카우치 사건에서와 가은 중대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사적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만나서는 어깨도 두드려주고 하다가도 자칫 그로 인한 과거의 큰 사건이 떠오른다. 그로 인해 한창 커나가던 인디씬이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밴드가 타격을 입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아무튼 결국 아마추어까지 참가한 대회에서 명백한 프로인 게이트 플라워즈 같은 팀이 출전하게 되었다는 자체가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아이들 노는데 어른이 끼어든 셈이랄까? 지난주 AXIZ도, 이번주 게이트플라워즈나, 심지어 국제대회에서 상까지 받은 브로큰 발렌타인까지 이같은 오디션프로그램에 출연하다니. 인티음악과 예능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을 텐데. 더구나 오디션.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기에. 현재 시청율이 낮다고 해도 토요일 오후 시간대란 인디음악인들에게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므로. 그렇게 절박하다. 한국 밴드음악의 현실이다.

즐거웠다. 순수하면 순수해서 즐거웠고, 능숙하면 능숙해서 즐거웠다. 한 편으로는 좋은 팀들이 음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음악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확실히 좋은 팀들이기도 하다. 시청율이 너무 낮아서 걱정이다. 가장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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