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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8 07:08

댄싱 위드 더 스타 "춤은 추억과 함께"

오래된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다.

 
솔직히 나는 댄스스포츠에 문외한이다. 그냥 탱고라니까 탱고인가 보다. 자이브라니까 자이브인가 보다. 하지만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보면서 댄스스포츠란 이렇게나 나의 일상과 가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50년대, 60년대 헐리우드의 뮤지컬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군사와 경제, 외교, 문화 전분야에 있어 세계를 리드하는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서의 전성기 미국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난다고나 할까? 여유가 넘쳐 흘렀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에너지가 맥동치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배우 김영철과 이채원씨의  무대를 보면서,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기상캐스터 박은지씨와 권순용씨의 무대를 보면서 문득 그 시절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음악에 쫓긴다 하지만 아마 몸이 안 따라주어서인지는 몰라도 묘하게 여유가 느껴지는 몸짓이 바로 그것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박은지씨는 마릴린 먼로의 스타일에, 더구나 당시의 명작 뮤지컬 영화 "Singing in the Rain"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춤으로써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저 춤사위, 저 몸짓은 내가 영화에서 보았던 것이다. 어느 영화에선가 흥겨움에 어깨를 들썩이며 쫓고 있든 그 동작들이다.

탱고 역시 80년대, 90년대 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춤이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홍콩느와르에서 곧잘 등장하고 있었다. 음울하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가 어쩌면 탱고의 유혹적인 몸짓과 닮아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퇴역장교 알파치노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낯선 여인과 함께 추던 영화 "여인의 향기"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끝물을 타던 대학가 민주화시위에서마저 민중가요에 맞춰 탱고를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겠는가.

그래서 김규리씨와 김강산씨의 탱고가 그리 멋져 보였던 모양이었다. 가장 절도있었고 가장 유혹적이었다. 한때 탱고가 그리 선정적이어서 금지되었던 때가 있었다는데, 날이 선 도도함과 그 내면에 흐르는 격정이 너무나 잘 묘사되어 보여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탱고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그래도 역시 탱고보다는 지르박 쪽이 복고적인 나의 취향이는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점수는 상관없었다. 말했듯 나는 문외한이다. 어떤 춤이 잘 추는 춤이고 어떤 춤이 못 추는 춤인가 전혀 모른다. 다만 내게 남아 있는 어떤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몸이 따라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일 김영철씨의 우아함이나 박은지씨의 옛스런 발랄함. 점수는 낮았지만 그래서 그립고 좋았지 않았을까.

문희준과 안혜상씨의 무대도 좋았다. 심시위원의 말 그대로 문희준만의 색깔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현아는 아이돌로써도 무대 위에서 너무 튄다는 점이 예전부터도 지적되어지고 있었다. 어떤 춤을 추더라도 현아는 현아다. 파트너가 누구이든 어떤 춤을 추든. 하기는 노래와 마찬가지로 춤에서도 각자의 개성은 드러나는 것일 게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단점이면서 또한 장점이고 개성일 것이다.

이봉주의 춤은 성실하다. 김장훈의 춤은 고집스러워 보인다. 이를 앙다물고 춤을 추는 오상진 아나운서와 긴장하면서도 정작 무대에서는 순수하게 즐기고 만족스러워하는 박은지 기상캐스터의 모습과.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바리톤 김동규가 저렇게 귀여울 수 있다. 아마 <댄싱 위드 더 스타>라는 프로그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에서인가는 방영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한 유명인들의 땀과 순수를 통해서 조금 더 그들에게 다가간 것 같다. 조금 더 그들을 알게 된 것 같다. 만족감일까?

아무튼 이렇게나 익숙해 있었구나. 이렇게나 친근했구나. 댄스스포츠에 전혀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더라도 무대를 보면서 그리워할 수 있구나. 바로 이런 것이 문화임을. 무엇보다 그 무대를 위해 출장지까지 따라가고, 공연장에서까지 찾아가 연습을 하고, 그로 인해 다치기도 하고,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들은 활짝 웃는다. 자신의 무대에 취해 감격하기도 한다. 보는 사람도 어느새 휩쓸려 함께 웃고 함께 감동한다.

원래 춤이란 언어였으니까. 아직 어휘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을 때 춤사위는 말로써 다 하지 못할 말들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노래가 말을 대신하고, 노래로조차 다 하지 못하는 말은 춤이 대신하고.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에도 몸짓으로는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 몰라도 단지 보는 것만으로 함께 느끼게 된다. 아닐까? 그것이 원래 춤이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추어와 프로는 확실히 차이가 있구나. 프로의 무대를 보고 싶어졌다. 절도있고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그 선과 몸짓들이. 춤이란 이렇게나 아름답다. 아마추어의 순수도 분명 아름답지만, 그러나 프로이기에 보일 수 있는 그 치열함과 엄격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보고 싶어진다. 과연 프로들이 선보이는 댄스스포츠의 무대란. 얻은 또 하나의 성과다.

금요일밤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위대한 탄생>에서와 같은 단지 지망생에 불과한 일반인의 풋풋함이나 생생함은 없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열정과 신선한 흥분과 감동이 있다.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진정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위대한 탄생>보다도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있어서만큼은. 나로서는.

간만에 다시 뮤지컬 영화를 찾아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유치하고 촌스럽기까지 할 그 시절의 좋아하던 뮤지컬 영화들을. 추억에 잠겨서. 그 분위기를 사랑하던 당시의 나를 떠올리며. 요즘은 그런 여유가 없다. 반가움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프로그램이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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