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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16 08:22

[TV줌인] 주군의 태양, "공효진을 위한 드라마, 음울하지만 사랑스럽다"

귀신의 이유, 귀신에 홀리는가? 귀신을 부르는가?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귀신이란 결국 집착일 것이다. 탐욕이고 미련이다. 부여잡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 무엇이다. 죽어 순수한 혼은 제 갈 길을 찾아 돌아가고, 길을 찾지 못한 나머지들이 마치 찌꺼기처럼 남아 세상을 떠돌고 마는 것이다. 죽은 사람만이 아니다. 산 사람 역시 집착으로 인해 길을 잃고 자신마저 잃고 말았을 때 어느새 스스로 귀신이 되어 있기도 한다.

과연 태이령(김유리 분)으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도록 만든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태공실(공효진 분)이 본 것처럼 어떤 악의를 가진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태이령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태공실에 대한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었을까?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 지금도 그녀는 태공실에게 가려져 있던 과거의 자신에 구애되고 있다. 태공실보다 더 빛나고 싶다. 작은 태양이 아닌 큰 태양이 되고 싶다. 단지 그것이 어떤 계기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뿐이다.

귀신을 무서워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거부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 태공실이다. 그런 태공실이 정작 태이령의 주위를 맴도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대화는 커녕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하고 있다. 본능이 가르쳐주고 있을 것이다. 저 존재는 위험하다. 고작해야 죽어서까지 남아 있는 살았을 적의 집착이나 미련을 풀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다가서는 다른 귀신들과는 다르다. 자칫 자신마저 휩쓸릴 수 있다.

처음 태이령을 유혹한 그것은 어쩌면 흔하디흔한 뻔한 귀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이령으로 하여금 그같은 귀신의 유혹에 넘어가게 만든 것은 태이령 자신의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더 예쁘고 싶다. 더 예뻐지고 싶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다. 다른 무엇보다 태공실에게 지금의 자신을 보여주고 칭찬을 듣고 싶다. 부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자신을 보도록 만들고 싶다. 채워지지 못한 열등감과 욕망이 쉽게 유혹에 휘둘리도록 만든다. 태이령 이전에도 태이령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이고 충동이고 본능이다. 태공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태공실이라고 과연 얼마나 크게 다를까.

▲ 제공:SBS
그러고 보면 뒤틀려 있기는 주중원(소지섭 분) 역시 다르지 않다. 돈만 밝힌다. 오로지 돈이 전부다. 태공실에 빙의한 차희주와 만나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돈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몸값으로 당시 범인들에게 건네진 100억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차희주를 만날 수 있어서도, 차희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도 아닌, 단지 차희주의 귀신을 통해 자신의 몸값으로 건네진 자신의 돈을 찾으려는 것이라며 이유를 댄다. 과연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일까?

과연 주중원은 차희주를 미워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미워해야 했다. 미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납치범과 공범이 의심되는 차희주다. 자신의 진심을 배반한 여자다. 그녀로 인해 납치까지 당했고, 100억이라는 막대한 돈이 몸값으로 납치범에게 건네졌다. 세상이 온통 그로 인해 시끄러웠고, 자신은 물론 회사에까지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용서해야 할까? 아직도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정상이기는 할까? 차라리 마음껏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었으면. 그러나 주중원은 차희주가 사고로 죽자 그녀가 어쩌면 납치의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만다. 사랑하는 약혼녀를 잃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의도된 것은 아니었을까?

차희주에 대한 이야기를 태공실에게 털어놓고 주중원은 바로 이웃해서 지어지고 있는 장차 자신들과 경쟁할 자이언트몰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공일자가 앞당겨졌다며. 우울할 때가 아니다. 입 찢어지게 웃어줄 때다. 오랫동안 주중원을 보좌해 왔다. 비서 김귀도(최정우 분)의 눈에 보이는 주중원은 그때 분명 우울해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자이언트몰의 이유와 그로 대표되는 주중원이 사업과 돈에 집착하는 이유, 그리고 그가 속물적으로 행동하고 마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그것은 벽이었다.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향해 쌓아올린 거대한 벽이었다. 누구도 그 안을 볼 수 없다. 보아서도 안된다. 자신의 감정을 그 안에 가두어 둔다. 볼 수 없고 보아서도 안되는 진심 대신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감정만을 남기고 그것으로 자신을 꾸민다. 그것이 어느새 그의 진심이 되어 버린다.

상냥한 사람이다. 무시해도 되었을 일이다. 굳이 태공실의 입장이나 사정 따위 일일이 써주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다. 섣부른 친절이 오히려 무례가 되어 그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사고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하필 그 순간 그 근처를 지나가야만 하는 태공실의 처지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태공실을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고서도 그는 끝내 태공실을 모른 척 내버려두지 못한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몸에 밴 친절이고 속에서 우러난 선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쁜 사람을 자처한다. 일부러 악의를 끄집어내어 자신을 지키는 갑옷으로 삼는다. 애써 원망하고 애써 미워한다. 그런 자신을 납득하고 만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녀를 미워할 수 있다. 원망할 수 있다. 욕도 할 수 있다. 태공실의 선의가 주제넘다. 그것은 오로지 차희주와 자신만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고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위사람들이 제멋대로 말을 만들고 그것을 근거로 자기들만의 판단을 내려 버린다. 진정으로 차희주를 미워하고 원망하고만 있었다면 굳이 태공실을 향해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주중원이 곧 귀신이다. 사랑이라는 집착이 만들어낸 귀신이다. 미움과 원망이라는 찌꺼기가 만들어낸 귀신일 것이다. 죽은 귀신은 보이지만 산 귀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차희주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그 전에 애처로울 정도로 올곧게 달려드는 태공실의 존재가 그로 하여금 신경쓰게 만든다. 차희주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이전에 누군가를 계속 신경쓰고 그를 보살펴 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귀신이 사람이 되어 간다. 귀신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면 주중원의 원래 자리는 원래의 다정하고 다감한 주중원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강우(서인국 분)는 결국 주중원의 아버지가 보낸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주중원의 아버지는 차희주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희주가 납치에 개입되어 있다면 공범 역시 주중원의 가까이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 주중원을 신경쓰이게 만드는 자이언트몰 역시 그 후보에 넣어도 될 것이다. 처음에는 의도였지만 조금씩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 주중원과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처음 다가오는 이성의 존재에 태공실도 조금씩 들떠간다. 미묘한 삼각관계가 시작될 듯하다. 주중원과는 아직 사랑은 많이 이르다.

아직은 사랑미만이다. 주중원도 태공실도 서로에 대한 호감에 이끌려 서로를 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본연의 선의다. 그리고 현실적 필요다. 그렇게 믿는다. 차희주와의 관계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계기만 만들어졌다. 차희주가 태공실에게 빙의한다. 태공실이 차희주로서 주중원의 주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주중원의 차희주를 향한 감정이 태공실에 대한 감정과 겹친다. 여유가 생긴다. 태공실에게도 비로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부끄러움도 알고 민망함도 알고 이성에 대한 본능의 감정도 깨닫는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아니 그보다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결국은 사람이다. 태공실이 귀신을 볼 수 있기에 귀신이 태공실에게 모여든다. 태이령의 열등감과 욕망을 읽었기에 귀신은 그녀를 유혹한다. 차희주가 주중원의 주위를 맴도는 것은 주중원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일 터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 그것이 자못 유쾌하기도 하다.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태이령이 태공실의 사진에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현재의 태공실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태이령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가장 추한 모습과 마주하는 것처럼 두렵고 불쾌한 일은 없다. 혐오스럽다.

아무튼 확실히 공효진을 위한 드라마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노드라마다. 보이지 않는 귀신의 존재를 보이는 것으로 가정하고 연기해야 한다. 빙의가 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음울하면서도 어둡지 않다. 허술한 외모와 행동에도 사랑스러워야 한다. 천재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인데도 한없이 밝고 즐겁고 사랑스럽다. 공효진인 이유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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