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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15 14:55

[TV줌인] 주군의 태양,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주군 차주희와 만나다"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관습적인 설정과 묘사, 필요하지만 아쉽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예상대로였다. 주중원(소지섭 분)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 겁먹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있었다. 애써 부정한다. 아닌 척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태공실(공효진 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는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차희주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죽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보고 싶어야 한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아야 한다. 말하고 싶어야 한다. 말하고 싶지 않아야 한다. 정말 미워하기는 하는 것일까? 원망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미워서 원망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워할 수 없기에 원망하는 것일까? 주중원 자신 또한 어쩌면 죽은 차희주의 그림자에 갇힌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된다. 지나치도록 직관적이고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른바 말하는 빙의다. 귀신이 들렸다. 귀신이 씌었다. 태공실이 차희주가 된다. 차희주가 되어 주중원을 만나러 간다. 그들만의 약속이다. 그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기호다. 이것은 끝일까? 아니면 시작일까? 차희주의 그림자가 걷혀야 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빠른 호흡으로 주중원이 차희주로부터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 귀신만의 특징일 것이다. 워낙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때문이었을까? 일찌감치 강력한 중앙집권과 고도의 행정체계를 구축한 탓에 굳이 귀신이 되어서까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원한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이나 간절함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귀신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람이 돕지 않으면 귀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람이 도와주기까지 귀신은 그저 지켜보며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한도 더 깊다.

▲ 제공:SBS
태공실이 아니었다면 과연 죽은 최윤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이 자기를 속이고 배신한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계획을 세우는 남편의 모습에 충격받은 나머지 사고로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그 댓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그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된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남편의 진실을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것이다.

"귀신은 뭐하누, 저런 놈을 안 잡아가고..."

잡아갈 수 있으면 예전에 잡아갔다.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산 사람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있었다면 억울한 귀신따위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게 만들고 한을 품도록 만든 당사자가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천수를 마치도록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착한 사람을 죽인 악인은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천수를 꾹꾹 눌러 채운다. 태공실이 아니었다면 최윤희의 남편 또한 문제없이 의도한대로 만족한 삶을 살다가 생전의 것들을 안타까워하며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조차 없이.

하기는 그것이 귀신이 생겨난 이유였을 것이다. 살아서 다 풀지 못한 것들이 있다. 죽음이 끝이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죽은 이후에까지 남은 숙제를 넘겨 풀어낸다. 다 마치지 못한 일들을 마저 정리하고 끝낸다. 착한 사람인데 그처럼 불행한 채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나쁜 사람인데 그렇게 행복한 채로 끝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귀신들이 태공실을 찾아간다. 착한 사람들의 미련과 악한 사람들의 탐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다. 산 사람과 죽은 귀신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마치 실재하지 않는 꿈속을 거닐고 있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손가락질까지 하며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태공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귀신과 어울리는 그녀에게 현실의 인간이란 어쩌면 사소한 것에 불과한지 모른다. 사람의 시선이 그녀를 놀라게 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비웃임이나 손가락질이 그녀를 곤란케 하지는 못한다. 현실의 존재지만 오히려 실감은 비현실의 귀신들에게 있다. 사람보다도 오히려 귀신의 입장에서 귀신을 생각하게 된다. 미묘하다.

주중원 또한 그토록 성가시고 불편한 도무지 생기는 것이라고는 없는 태공실의 일에 관심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오지랖이다. 당장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니 아예 무관심할 수 없다. 귀신의 일에 개입하고 나선다. 그런 태공실을 다시 주중원은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지는 못한다. 태공실은 자신이 인지해야 하는 귀신의 일을 외면하지 못하고, 주중원은 계속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태공실을 모른 척하지 못한다. 절묘한 조합이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태공실은 귀신에 가깝다. 태공실 역시 오로지 주중원에게만 그 실체를 내보인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구로 전개되고 있었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신을 하나 주웠다. 그 신을 따라오는 귀신이 있었다. 같은 시간 한쪽에만 신을 신은 시신이 교통사고현장에서 발견된다. 남편의 두얼굴은 너무나 쉽게 태공실에게 드러나고 만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 또한 무작정 태공실이 남편과 어머니를 찾아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고작이다. 치밀한 계획이나 철저한 준비 따위 전혀 준비된 바 없었다. 주중원이 나서서 해결한다. 바람에 날려 주중원의 차에 달라붙은 티슈는 노골적인 복선이었을 것이다. 에두르는 법 없이 태공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려고만 한다. 태공실의 무모함이 불러온 위기아닌 위기는 아무런 긴장감 없이 지겹게 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재미없다.

하지만 필요했다. 주중원이 태공실을 인정해야 했다. 태공실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태공실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그같은 태공실의 귀신을 위한 행동들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이 나서서 돕기도 한다. 돈만 밝히는 수전노의 이면에 숨은 본연의 선량함이다. 태공실이 귀신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듯 주중원 또한 마찬가지다. 태공실이 차주희에 빙의되어 주중원 앞에 나타났을 때 주중원은 놀라기만 해서는 안된다. 멀지만 가가깝고 가깝지만 먼 운명의 파트너라는 것일 게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주중원은 태공실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믿는다. 인정한다. 그래서 더 꺼려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태공실의 의도에 따르려 한다. 벌써 하나의 사건을 해결했다. 복잡하게 꼬거나 할 필요 없이 가볍게 의미만 전달할 수 있다면 좋다. 태공실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주중원의 곁에 머물고, 주중원은 성가셔하면서도 그런 태공실을 지켜본다. 귀신을 만난다. 귀신의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사랑의 이야기다.

어디까지 풀어놓게 될까? 당시 차주희와 주중원의 감춰진 사연들에 대해서.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도. 모든 의혹과 오해를 풀어낼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아직은 너무 이를까? 강우(서인국 분)의 감춰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강우와 태이령(강유리 분)의 관계 또한 심상치 않다. 갈 길이 멀다. 걸음만 재촉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랑해야 한다. 태공실이 주중원을, 주중원이 태공실을, 그들은 아직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긴 싸움이다. 모든 것을 털어내더라도 그들이 사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들만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남은 미련이 죽은 이들을 산 사람과 어울리도록 만든다. 남은 집착이 산 사람으로 하여금 죽은 이들을 붙잡도록 만든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서로 어울린다. 살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산 사람의 이야기다.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귀신의 이야기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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