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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7 07:21

시티헌터 "너무 만만한 시티헌터"

액션과 코미디의 경계가 무너지다...

 
호조 츠카사의 원작에서 사에바 료는 자신의 의뢰인을 노리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경찰 저격수를 가볍게 제압하고 이렇게 일갈한다.

"녀석이 올림픽에서는 세계최고였을지 몰라도 그건 어차피 아마추어들 사이에서겠지. 안됐지만 나는 세계제일의 프로라구."

하기는 그러고  보면 이윤성(이민호 분) 역시 온실의 화초이기는 마찬가지다. 원작의 사에바 료는 아주 어린 시절 남미의 정글에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생존을 위해 용병들에게서 살인기술을 배운 경우였다. 사에바 료의 살인기술에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여자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와중에도 그는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거나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

원작에서 가벼운 에로틱 코미디와 묵직한 하드보일드 액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러한 사에바 료의 프로페셔널함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크게 작용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방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한심하고 어이가 없어도 결국에 사에바 료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사에바 료는 제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음놓고 여자를 쫓아다니며 엉뚱한 행동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출발부터가 양아버지 이진표(김상중 분)에 의해 보스의 아들로써 대우받으며 자랐으니까. 아무리 혹독해도 생명이 오가는 전장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기술은 정작 실전에서 바로 그 한계가 드러난다. 등장은 요란하고 화려했지만 결국 김나나(박민영 분)에게 총맞고, 김영주(이준혁 분)에게 꼬리를 잡혀 팔을 꺾이는 상황이 그것이다.

이진표의 광기를 잘못 판단했다. 복수의 광기라기에는 이진표는 이윤성을 너무 과보호했다. 이윤성이 그런 절박한 상황에조차 결국 무르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을 그는 경험한 적이 없다. 자칫 한 번의 판단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없다. 그것은 이진표가 다리를 다치게 되던 상황에서도 이미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판단은 물렀고, 행동은 느렸다. 그 결과 이진표는 죽을 뻔한 이윤성을 대신해 다리를 잃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윤성은 안이하고 물렁한 계획으로 도리어 모든 일을 망쳐버릴 뻔한다.

이렇게 답답할수가. 현재 꾸준히 시청율이 상승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는 SBS의 야심작 드라마스페셜 <시티헌터>의 가장 큰 불안요인일 것이다. 하드보일드 액션과 코미디를 조화시키려면 주인공인 시티헌터 이윤성이 그 중심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코미디의 여유와 액션의 치열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않으니. 이윤성이 여유를 부리면 조마조마하고 액션도 호쾌한 맛 없이 지나치게 끌게 된다.

역시 여름이면 극장마다 공포영화와 더불어 액션영화가 걸리는 액션 특유의 호쾌함으로 더위를 잊어보자는 것이다. 때리고 쏘고 부순다. 타격음과 파열음과 폭발음. 그리고 화면 가득 온몸을 후려치듯 몰아치는 화려한 특수효과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액션에서는 호쾌함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서용학(최상훈 분)을 잡으러 가는 와중에도 김영주와 김나나조차 처리하지 못해 어쩌나 고민하고 주저하고만 있어서야 오히려 걱정과 긴장으로 날만 더 더워질 뿐이다. 꿉꿉하고 답답하다. 그렇다고 서용학이 뭐라도 대단한 반격을 준비한 것도 아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대중은 무척 개연성이나 리얼리티 같은 것을 따지는 편이다. 아마 원작에서처럼 세계최고를 자부하는 프로페셔널로써의 실력을 가감없이 보였다면 바로 황당하다거나 비현실적이거나 하는 비판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위해서라도 적당히 긴장도 하고 위기에도 몰리는 수준으로 밸런스를 보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정작 액션이 느려지고 코미디로의 전환마저 느려지고 나면 그건 역효과다. 특히 <시티헌터>와 같은 드라마에서는 그렇다.

액션은 짧고 간결하게. 그러나 확실하고 화려하게. 남아서는 안 된다. 넘어서도 안된다. 전환은 순간적으로 그리고 전환하고 나면 명확한 경계를 그어야 한다. 액션이 나오는 동안에는 액션만. 로맨스를 하는 동안에는 로맨스만. 액션에 로맨스가 끼어들어도 액션이 지저분해지고, 로맨스에 액션이 끼어들면 경쾌하던 것마저 우울해진다. 마치 정작 복수를 하고 응징을 하러 가서 김나나의 일로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이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김나나가 혹시 자기 일에 개입하지 않을까 또 대책을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 시원스런 것이 없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시티헌터>는 한 가지 톤이다. 액션도 로맨스도 둘이 아닌 모두가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복수를 하는 동안에도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는 동안에도 복수를 한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면 굳이 <시티헌터>일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필자가 보면서 내내 고 박봉성 화백을 떠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스탠다드한 스타일의 작품은 넘쳐난다.

차라리 이진표라도 검찰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프로페셔널함은 보여준다면. 공권력을 마음껏 조롱하며 자신의 뜻을 이룬다. 이진표의 존재는 김영주를 비롯한 공권력을 긴장시킬 것이며 이윤성과 김나나의 주위도 긴장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진표를 통해서 다시 작품의 색의 변주를 시도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아니면 뻔한 한 가지 톤, 한 가지 색의 드라마로 끝나려는가.

아무튼 이윤성이 참 물러도 너무 무르다는게, 진세희(황성희 분)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거기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일까? 얼굴이 드러났으니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꼽짝없이 잡혀가야 한다. 진세희는 이경완과는 달리 이윤성의 직업까지 알고 있다. 과연 진세희가 신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어떻게 서게 된 것일까? 진세희가 신고하지 않은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죽일 각오조차 없이 진세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기는 설마했었다. 이윤성이 김나나의 총에 맞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수의사인 진세희. 하필 왜 진세희의 직업은 수의사였을까? 수의사도 의사이고, 동물병원에서도 외과수술을 하는 만큼 필요한 약품과 도구가 갖춰져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진세희에게 치료를 받음으로써 김나나와의 관계에서도 오해가 발생하고 그로써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뻔한 설정인데다 진세희에게 그럴만한 개여성이 아직은 없기에 아니라 여기고 있었는데. 설마 전남편 김영주에 대한 반발이 유력대선후보를 테러하려 한 용의자를 감춰주게 만든 것일까?

이를테면 클리셰일 것이다. 병원이 아닌 동물병원. 의사가 아닌 수의사. 그리고 여성. 숨어들었고 숨겨준다. 그리고 비밀을 공유하며 유대를 갖는다. 당연히 그렇게 갖게 된 유대는 메인이 아닌 곁가지다. 그리고 메인은 그것을 오해하고. 오해가 빨리 풀린다는 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해하고 그래서 이윤성을 노려보면서도 이내 풀려서 헤실거리는 것은 또 무언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김나나는 근무지 이탈로 징계를 받고, 그런 김나나를 위로해주려다 비를 맞는 바람에 김나나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고, 셔츠 한 장만 걸친 김나나의 모습에 이윤성은 새삼 반해 버린다. 새삼 이윤성이 자기에게 베푸는 친절을 이야기하기에는 김나나는 이미 전부터 이윤성에 대한 호감을 질투라는 형태로 드러내고 있었고. 로맨스가 해피하게 고조되었을 때 결국 서용학을 납치하려는 현장에서 경호원과 납치범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제작진의 악취미일까? 떨어지려는 김나나를 붙잡은 손에서는 픽가 흘러내리고 뒤에는 김영주가 대기하고 있으니 제대로 위기다. 딱 적당한 순간에 궁금증을 자극하도록 끝내 버렸다.

시티헌터의 실력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시티헌터 이윤성의 복수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5인회 멤버들도, 이윤성에 위험에 처한 상황에조차 앞으로 어떤 식으로 김나나와의 로맨스가 이어지려는가. 괜한 걱정이랄까? 그렇게 이미 드라마의 균형은 무너져 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액션과 로맨스의 균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충분하다.

아쉽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 원작은 원작이다. 하지만 제목이 같은 이상 의식하지 않을 수 ㅇ벗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로맨스는 훌륭하다. <최고의 사랑>과 더불어 로맨틱코미디로써 시청율경쟁에 들어갈 만하다. 부쩍 재미있어졌다.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나아질 수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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