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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6 09:16

시티헌터 "보수적인 액션, 감칠맛나는 로맨스..."

고 박봉성 화백을 떠올리며...

 
드라마 <시티헌터>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아마 <시티헌터>를 두고 <시티헌터라 불리운 사나이>라 조롱하듯 부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만화가 박봉성. 그의 만화가 바로 이런 스타일이었다.

당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당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 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박봉성 만화의 주인공 최강타는 마음껏 상대를 농락한다. 대부분은 함정을 파고 사기를 쳐서 상대를 자멸하게 만드는 것인데. 딱 서용학(최상훈 분)의 아들들을 다시 군대에 보내는 과정이 그렇다. 이전 이경완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저리 순진할 수 있을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온실에서 곱게 자란 아들들이라면. 세상의 험난함을 모르고 아버지의 배경만 믿고 쉽게 인생을 살아온 경우라면. 특히 막내아들의 경우는 세상에 무서운 것 없이 모든 여자가 자기 여자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빈틈을 노렸을 테지만, 그러나 그런 부분은 잘 드러나 있지 않으니. 그렇더라도 정작 서용학 자신도 자기나 주위에 대해 너무 무방비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대통령 최응찬(천호진 분)과 서용학의 관계를 보더라도 5인회라고 반드시 사이가 돈독한 것은 아니다. 만일 서로에 대한 신뢰나 우정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천재만(최정우 분)은 시티헌터의 존재를 서용학에게 알리고 그를 대비케 했어야 했다. 서용학의 군시절 인맥을 동원한다면 이진표(김상중 분)와 필적할만한 군내 인력을 시티헌터를 대비하는데 동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결국 드라마를 이진표와 이윤성(이민호 분) 부자의 일방적인 응징에 김나나(박민영 분)와 김영주(이준혁 분) 등의 공권력과의 대립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시 박봉성 만화의 특징이다.

박봉성에 빙의된 것일까? 아니면 박봉성의 만화를 좋아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박봉성의 히트작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의식하여 만들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두 주인공 이윤성과 김나나가 청와대에 근무하며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와 전체적인 구도나 흐름이 유사하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보다는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허술하면서도 방심한 상대의 뒷통수를 치는 사기극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박봉성 작품 전반을 연상케 한다. 연관이 있을까?

아무튼 이번 <시티헌터> 6월 15일 7회방송분의 주제는 지난번 군장비도입과 관련한 부정에 이어 항상 끊이지 않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병역비리에 대한 것이다. 군장성출신으로 장관까지 지낸 유력 대선후보의 자식들이 하나같이 고혈압에, 사구체신염에, 십자인대파열로 면제판정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지인 하나도 친인척이 거의 장성이거나 고위장교들이었는데, 신체검사받고 면제판정이 나자 거의 없는 자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입대해서 편의를 봐주더라도 군대는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군출신 인사들도 많다. 사병으로 군생활하는 것이 싫으면 하사관을 가거나 장교로 가거나 하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의무 자체를 일부러 피하는 것은 없다. 다만 그런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니 이슈가 되지 않는다. 이슈가 되는 것은 항상 그러지 못한 사람들.

문제라면 드라마는 여기서도 결국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데, 이윤성에 의해 서용학의 세 아들이 신체적으로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더구나 입영지원서까지 제출하자 서용학조차 모르게 군병무청에서 그것을 승인하는 장면이다. 과연 퇴역장성에, 더구나 장관까지 지낸 인사의 아들에 대해 그렇게 군병무청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군납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러한 군내 끈끈한 인적 커넥션 때문이다. 진급과 전역 이후와도 관계가 되기 때문에 군내 인맥은 매우 끈끈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당연하게 넘어간다.

드라마가 고약한 부분이다. 사회 각 부분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데, 그것을 구조의 외적 개입을 통해서가 아닌 내적 정화를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오히려 드라마에서 시티헌터 이윤성보다 검사 김영주가 더 중요하게 역할을 하는 이유다. 검사인 김영주는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는 내적 구조의 하나다. 그에 비해 시티헌터 이윤성은 의도는 좋아도 어찌되었거나 그 수단 자체는 기존의 법체계를 부정하는 범죄자에 불과하다. 그 김영주가 어느새 이진표의 턱밑까지 쫓아와 있다. 사회의 부정도 용납 못하지만 그것을 응징하려는 테러도 용납 못한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드라마는 원작과 차별점을 둔다. 오히려 비슷하다면 만화 <데스노트>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다만 <데스노트>에서는 비록 결말 자체는 부정적으로 끝났어도 법망을 벗어난 악에 대한 응징이라는 로망을 담고 있는 반면 드라마 <시티헌터>는 그같은 로망에 대해서마저 이윤성의 입을 빌어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설사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행동하더라도 그 응징은 기존의 질서 안에서. 역시 공중파인 때문일 테고, 작가나 제작진이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역시 정의를 실현하더라도 굳이 법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미국의 히어로물과도 상당히 다른 부분일 것이다. 설사 정의를 실현하더라도 그것은 기존의 체계 안에서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결말을 그려보게 되는 이유다. 역시 이윤성과 이진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진표는 거꾸로 원수를 단죄하는 동시에 자신도 단죄당할 것이다. 이윤성은 어쩌면... 그는 해외로 떠나게 되겠지. 그는 한국 사회의 질서 안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한국사회에 포함되려 한다면 그 전에 그에 따른 의식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불법과 관련한 주위 사람들을 잃고,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을 지고 난 뒤. 다만 교도소에서 나오는 시티헌터 이윤성이란 얼마나 시청자들에 감흥을 줄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는 김나나는 아름다울 수 있겠다.

제작진의 성향이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것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전직 안기부 특수작전부장 출신의 최응찬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안기부라는 게 어떤 조직이었는가? 당시 안기부가 하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무엇이었겠는가? 그 안기부에서 부서장까지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겠는가? 더구나 그는 5인회라는 사조직에 몸담고 있고 여전히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최응찬의 모습은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서로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는 있다.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하필 80년대 안기부여야 했는가? 안기부 출신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라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과연 과거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어쨌든 이진표의 광기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가 태어난 지 갓 한 달 된 아이를 잃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최소한 꼬박꼬박 돈을 보낼 정성이 있었다면 어떻게 사는가는 한 번 쯤 돌아보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돈을 보내는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그러고서는 나타나서 몰랐다. 왜 이렇게 사느냐? 미친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만 보며 내달리는 광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쳤다기에는 그의 광기는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마치 이윤성을 다그치는 것으로 모든 복수를 대신하려는 듯. 죽은 이윤성의 아버지 박무열이야 말로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것일까? 아니 자신을 대신해 죽은 박무열에 대해 그에 대한 우정이 분노와 원망의 마음을 품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멋대로 죽어버렸다. 멋대로 자기만 살리고 죽어버렸다. 차라리 그가 원망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것은 박무열과 그의 아들 이윤성이 아니었을까. 이 부분에서 묘사가 부족한 것 같다. 아니면 김상중이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거나. 이 부분에서 마침내 파탄이 드러나게 될까?

어쨌거나 마침내 김나나는 이윤성을 질투하게 되었고, 최다혜(구하라 분)는 그를 과외선생으로 맞으려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다만 안타깝다면 그런 최다혜를 김나나는 전혀 질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질투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한다. 단지 귀엽게 재롱을 부리는 어린 동생에 불과할 뿐. 전신거울이 필요할까? 어쩌면 김영주에게 김나나란 속죄의 대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진세희(황성희 분)와 함께 있는 이윤성을 보는 눈빛이 미묘하다.

상당히 애매한데. 정작 김영주와 김나나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김나나가 진세희를 질투하듯 단지 김영주도 이윤성을 질투하는 것일까? 여기에 사실 거의 크게 필요도 없이 끼어드는 최다혜의 존재에. 원작에서 카오리가 질투심에 망치를 휘두르는 것과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카오리와 사에바 료 사이에 자리한 것은 신뢰였다. 과연 김나나와 이윤성 사이에는 어떤 신뢰가 있을까? 결국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구해주는 것은 이윤성이지만.

유쾌한 로맨틱코미디. 그리고 허술한 액션. 아예 자폭해버린다. 허술하게 만든 출임증을 그만 배식중(김상호 분)은 직원에게 들키고 만다. 이런 코미디가 다 없을 정도다. 이윤성을 쫓는 김영주를 이진표가 전원을 끊어 차단하고, 겨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김나나가 이윤성에게 총을 쏘고. 아마도 그것을 근거로 김영주는 이윤성을 쫓고 다른 누군가 이윤성을 보살피게 될 것이다. 진세희일까? 김나나일까? 그도 아니면 엉뚱하게 최다혜가 끼어들까? 액션보다는 로맨스를 더 기대하게 된다.

액션 부분은 많은 부분 포기하고 넘어간다. 그럴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상당히 보수적이며 따라서 보여줄 수 있는 액션에는 한계가 있다. 최다혜의 비중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대로가 좋다. 유쾌하게 즐겁게. <시티헌터>란 그런 작품이었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너무 진지하지 않게. 액션이 적은 것보다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과연 서용학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머지 5인회와는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 그보다는 이윤성과 김나나, 고기준(이광수 분)과 신은아(양진성 분)의 관계는? 그리고 김영주와 진세희는 또? 어머니와는 만날 것인가? 그렇게 기대하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드라마일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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