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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5 09:50

미스 리플리 "길 잃고 헤매는 아이의 눈물을 보다"

악녀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르고 어설픈 장미리

 
6월 14일 6회에서도 <미스 리플리>는 내내 불편하기만 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무엇이 자꾸 울컥울컥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짜증이 치밀게 하는 것일까?

답은 장미리(이다해 분)의 표정이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길잃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그리 속을 들끓게 한 것이었다. 이 여자는 바보다.

그렇다. 답답한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회사다. 오랜만에 만난 고아원 친구에게마저 몹쓸 짓을 해가며, 그리 허둥대가며 마음 졸여가며 힘들게 들어간 회사다. 그런데 정작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란 남자 유혹하기.

아니 남자를 유혹해 신분상승을 꾀하더라도 그거라도 영리하게 잘하면 누가 뭐라 할까? 그렇게 빈틈이 많다. 한 쪽을 완전히 정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도 아니다. 둘을 마음대로 휘두르기보다 둘 사이에 휘둘리며 쫓기느라 자기가 정신이 없다. 그저 눈앞의 송유현(박유천 분)이라고 하는 먹이에 눈이 팔려, 그렇다고 장명훈(김승우 분)이라고 하는 이미 잡은 먹이를 놓아주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뿐.

눈앞의 먹이가 크다는 것은 안다. 먹음직스럽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는 모른다.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를 온전히 가져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둘 다 가지려면 그만한 치밀함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저 막연히 되겠거니. 그저 막연히 탐이 나고 욕심이 생기니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렇게밖에는 배우지 못한 탓이다. 하기는 누가 그녀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었을까? 엄마로부터 버려지고, 아버지마저 죽고, 고아원에서도, 그녀가 입양간 집에서도 그녀에게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당연히 술집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남자를 보면 유혹하고 그 남자에 기대려 든다. 남자에 기대고 남자를 이용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그것도 술집 이외의 장소에서 그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치 아이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유를 만들어 제주도까지 쫓아가고서도 그것이 당연히 통할 줄 아는 그 순진함처럼.

아마 그런 장미리의 어수룩함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바로 문희주(강혜정 분)가 자신이 훔쳐간 동경대 졸업장을 발견했을 때 악다구니를 써가며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그런 정도의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다니. 조금 더 당당하게 오히려 오만하게 문희주를 다스리려 했다면 오히려 더 악역다웠을 텐데. 그러나 그런 압력에조차 스스로 무너져버리고 말 정도로 그녀는 무척이나 심약한 존재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장미리를 대하는 문희주의 태도는 얼마나 당당한가.

장미리의 거짓을 안다. 장미리가 꾸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언니같이 그것을 지켜봐준다. 그것은 장미리가 절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아가마냥 그녀는 이제 막 세상의 험난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문희주는 오래전에 경험한 그것들을. 단지 장미리 자신만 모르고 있을 뿐.

"네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줘?"

그래서 장미리는 그리 히라야마가 두려운 것이다. 악다구니를 써도 그녀는 히라야마가 두렵다. 그녀의 눈물이 그것을 말해준다. 히라야마는 그녀의 여린 속내를 꿰뚫어본다. 그녀의 감추고 싶은 진실을 꿰뚫어본다. 그것은 어쩌면 히라야마가 만들어 준 것일 터였다. 술집이라는 공간에 가두어, 호스티스라는 정체성에 가두어. 장미리란 히라야마가 - 아니 그가 속한 뒷세계가 만든 훌륭한 박제다. 그들의 욕망을 위해 봉사하는 인형. 그녀는 인간이 되려 한다.

어째서 장미리는 일을 안하는가. 애써 취직하고서도 일은 않고 바꾸 밖으로만 도는가? 그렇게 무단으로 조퇴하고 결근하고 하면 안 좋은 영향이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가? 그러고 보면 처음 장명훈에 의해 채용되었을 때도 그녀는 조직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보고서 쓰는 법도, 타인의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것도, 그리고 졸업증명서가 해결되기까지 아예 일이라는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초등학생 애들 채용해서 일 시켜 놓으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녀의 표정은 실제로도 길 잃은 아이의 그것이었던 셈이다.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처음에는 악녀치고는 너무 무르다. 답답하다. 도대체 하는 것 없이, 남자 유혹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한다. 두 남자 상대하는데 뭘 그리 쫓겨다니고 허둥대는지. 하는 일이란 없이, 하려고 하는 것도 없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무기력한 주인공 타입인데. 하지만 어느새 그에 대한 개연성이 잡힌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과연 장미리의 등떠밀린 거짓말을 어디까지 가려는가. 대개 아이들의 거짓말이란 거짓말이 중첩되다가 스스로 모순을 일으켜 파탄나고 마는데. 그녀가 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에 대해 진심으로 실체로써 부딪힐 수 있을 때.

어쩌면 드라마의 끝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 갓 세상에 나온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여전히 아이인 채로 파멸을 맞는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비극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 장명훈과의 관계는 남녀관계 그 이상에서 - 그녀의 계산 그 너머에서 볼 필요가 있겠다. 억측인지는 몰라도.

드라마를 보는데 불만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제시한 기준에 드라마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기준을 바꾸었을 때 드라마가 재미있어진다는 것과도 통한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악녀이기에는 모자르다는 것은 악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여튼 참으로 미묘한 드라마라 하겠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같다는 점이 더 그렇다. 언제쯤이나 그 속내를 드러낼까. 지켜보는 보람이 있겠다. 조금은 더 두고본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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