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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4 10:41

내게 거짓말을 해봐 "내게 진실을 말해봐!"

마침내 보통의 연인으로써 출발선에 선 현기준과 공아정...

 
제목이 참 역설적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다시 말해,

"내게 진실을 말해봐!"

현기준(강지환 분)과 공아정(윤은혜 분)이 굳이 제주도로 함께 내려가야 했던 이유다.

"만나서 결혼부터 해? 만나서 차마시고, 밥먹고, 영화보고, 키스하고..."

하지만 그들은 결혼부터 했다. 공아정의 거짓말이 계기가 되어 결혼부터 하고 서로를 알게 된 경우였다. 무엇이 진심인지도 알지 못하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모른 채.

그래서 공아정은 현기준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원래 싫은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있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윤주(조윤희 분)와 함께 있는 현기준을 보는 순간 그녀는 깨닫고 만 것이었다. 현기준과의 사이에 진실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결혼했다는 사실도, 그동안 그와 함께 한 시간들도, 서로에 대한 감정까지도 역시. 현명진 회장(오미희 분)이 오윤주를 정리하고자 그녀를 이용하려 했을 때 그것은 더욱 치명적으로 그녀를 헤집는다.

물론 공아정도 현기준을 좋아한다. 그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기준의 감정은 어떠한가? 결혼이라는 거짓된 관계가 아닌, 그로 인한 허구의 서사가 아닌, 현기준의 진심을 알 수 없다. 현기준의 진실을 알 수 없다. 짝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서로에 대해 아직 모를 때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때라면 짝사랑도 가능하겠지만 이미 서로에 대해 깊이 들어가고 난 다음이면 짝사랑을 하기도 너무 괴롭다.

그래서 공아정은 제주도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런 공아정을 현기준을 따라 간다.

"나도 뭐 하나 물어보면 돼?"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무언가를 물어 본 적이 없다. 아픈 부분에 대해서까지. 어쩌면 감추고 싶어 할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서로에 대해 묻기를 꺼려하는 만큼이 결국 서로에 대한 거리다. 어디까지 묻고 어디까지 대답할 수 있을까?

비로소 현기준의 물음에서 공아정은 친구 유소란(홍수현 분)에게 거짓말을 하고 현기준과의 결혼을 위장해야 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현기준과의 결혼에 억울해하고 분통해하던 유소란의 모습에 느끼던 쾌감은 현기준이 말한 속물적인 허영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하기는 그래서 공아정 역시 현기준과의 거짓된 관계를 깨닫는 순간 가장 먼저 유소란에게 달려가 진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헛되고 의미없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진심을 듣고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두 사람은 마침내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서로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고, 서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영화도 보고 키스도 하고...

"두려워요. 우리 천천히 해요."
"그래, 노력할게. 당신이 확신이 들 수 있도록."

그리 쉽게 하던 키스였는데 막상 하려니 너무 두렵다. 떨린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냥 하는 키스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진심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키스라면. 그래서 처음 키스는 너무나도 쉬웠지만 이번의 키스는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를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하는 순간이고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이제서야 들어섰다.

어쩌면 누구나 하는 그것을 두 사람은 이렇게 먼 길을 힘들게 돌아서 와야 했던 이유. 사랑이란 진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진심이란 진실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거짓된 말과 감정을 동원해가며 부모님까지 끌어들여 현기준과의 관계를 이어가려 하는 오윤주의 애처로운 노력이 두 사람의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 거짓에서 시작해 진실로 돌아서 이제 막 시작하려는 두 사람과 진실에서 시작해서 거짓으로 돌아서 그것을 끝내려 하는 오윤주. 하지만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또한 사랑이라는 간절함일 테니.

다만 아쉽다면 현상희가 중간에 악마로 돌변해 현기준과 공아정을 곤란케 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일까? 오윤주에 대한 것도 있고, 공아정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있어서 한 번 쯤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순둥이다. 이제 와서 악마로 돌변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반전은 필요하지만 이제 와서 반전을 일으켜봐야 지겨울 뿐이다. 사건은 있겠지만 현상희의 악의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요정이 악마로 변하는 것을 무척 보고 싶었는데. 현상희는 오윤주와 잘 될 수 있을까?

역시나 이번에도 흥미로운 유소란과 천재범. 노래가사에도 있다. 떠나고서야 안다. 빈 자리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에 대한 진심을 알 수 있다. 공아정이 오윤주와 함께 있는 현기준을 보고서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듯이, 어느새 떠나버린 유소란의 빈자리에 천재범도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만다. 그 전에는 이미 자신에 대한 감정이 멀리 가 버린 듯한 천재범에게서 유소란 또한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제 비로소 두 사람이 진짜로 사귀게 되었다는 말에 유소란이 현기준과 오윤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말고 그만두고 만 이유다. 차라리 몰랐으면. 몰라도 되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끝까지 모른 채였으면. 그랬으면 천재범과 그녀의 사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처음 오윤주와의 관계에 대해 공아정에게 알린 것이 공아정에 대한 그녀의 심술이었다면, 이번 말을 아끼고 만 것은 공아정에 대한 그녀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이제 시작하려는데 괜한 편지풍파는 일으키고 싶지 않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니까.

천재범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그의 외도 또한 유소란에 대한 반발이었다. 항상 공아정을 이야기하고 주위의 눈치를 보는 그녀에 대한. 현기준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공아정을 의식하는 그녀에게서 자신은 단지 그녀를 위한 수단이 아닌가. 질투이기도 했고 소외감이기도 했으며 그래도 유소란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그리고 유소란이 떠났을 때 그는 유소란에 대한 진심을 깨닫게 된다. 어찌되었거나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자신은 남편이었고.

서로에 대한 엇갈리는 감정. 엇갈리는 마음. 엇갈리는 진실과 진심. 하지만 시간은 어느새 그 진실과 진심을 드러내고 만다. 비로소 두 사람이 출발선에 서는 순간이다. 그 출발선이 되는 곳이 현기준과 공아정에게는 제주도였던 것이고. 유소란에게도 그럴까?

내게 거짓말을 해봐. 생각해 보면 그것은 도발일 터다. 어디 거짓말을 한 번 해 보라. 그러나 나는 너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진심을 들으려 한다. 진실을 알려 한다. 가장 정직한 러브스토리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헤프닝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정석적인 로맨스의 정석을 밟으려 한다. 다른 수많은 연인들처럼. 모든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러하듯.

시작은 그러했으나 갈수록 그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강지환이나 윤은혜나 하기는 그저 유쾌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하기에는 이제 연륜이 꽤 된다. 그들의 나이대에 어울리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사랑의 이야기. 더욱 재미있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제대로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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