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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3 08:21

남자의 자격 "거지왕 김태원"

여행의 어려움과 여유로움에 대해서...

 

필자가 요즘 가장 즐겨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집근처 개천가를 거니는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다. 일차적인 목적은 역시 운동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어느새 개천을 노니는 물고기를 보는 것이었다. 고작해야 피라미에 붕어지만 그것이 어찌나 그리 신기한지. 물새마저 몇 마리 아예 터를 잡고 눌러 앉아 그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름이라 더욱 진동하는 풀내음과.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부러운 모습들이었다. 나는 고작 집 근처 개천에서 붕어 몇 마리, 피라미 몇 마리에 이리 매일이 감동인데 아득하도록 지평선까지 뻗은 대지 위로 저 무수한 야생의 짐승들이라니.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하는 짐승들이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듯 사람이 탄 차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의 땅을 거닐고 있었다. 차가 그들이 지나가도록 속도를 늦추고 가던 걸음마저 멈추는 모습이라니.

하필이면 그런 뉴스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골프장을 지으려 하는데 그곳에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동물들이 무수히 살고 있더라. 아마 어디선가도 보호종으로 지정된 동물들이 살고 있어 개발을 반대하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에 불도저로 싹 밀어버리고 골프장을 지어 버리고 말았다. 도로라 놓이고, 철길이 놓이고, 터널이 뚫리고, 아파트와 공장과 무수한 건물들이. 생명으로 가득하던 물도 어느새 쓰레기 더미들과 함께 썩어간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이러한데.

어쩌면 모순일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려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해외로 나간다. 해외에서 찍어 온 그같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또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어느 한 구석에서는 조용하게 - 아니 과격하게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들은 살던 터전을 잃고 쫓겨가고, 식물들은 군락지를 잃고 사라지고, 그리고 그렇게 자연을 파괴하여 얻은 이익을 해외의 자연을 즐기는데 어쩌면 쓰고 있는 것이다. 집앞 하천도 처음부터 조금만 더 주의해서 관리했다면 굳이 그런 막대한 돈을 들여 복원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불과 필자가 아직 아기이던 시절에조차 그 개천에는 가재가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만큼이나 개탄하고 싶은 아픈 현실이랄까? 집안 이제는 제법 그럴싸해진 개천가와 조금 가면 나오는 아주 야트막한 그저 나무가 있을 뿐인 야산과 그리고 뉴스에서 나오는 또한 죽어가고 쫓겨가며 파괴되어가는 환경들과.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존재하는 자연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도록 우리네 조상들과 함께 이 땅을 지켜왔던 우리의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보다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만큼 아름다운 때문이었다. 아름다웠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기에. 우리에게는 어째서 저런 것이 없을까? 질투였다. 시기심이었다. 그리고 원망이기도 했다. 어째서 우리의 부모세대는 우리에게 저같은 자연을 물려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의 세대도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연이란 그다지 없다. 아름답기에 서럽다는 게 그런 뜻은 아닐 텐데도.

아무튼 여행의 험난함과 여유로움을 그린 듯 보여준 회차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진흙탕에 갇히더니 이번에는 강 한 가운데에서 멈춰버렸다. 악어까지 산다는데. 액셀레이터를 끝까지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탓도 있거니와 그들의 차가 건너기에는 물이 너무 깊다. 더구나 저 앞에는 그보다 더 깊은 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결국 로드하우스로 다시 돌아와 갈 수 없게 된 기존의 코스 대신 다른 길을 논의하는 모습들이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비록 제작진에 의해 준비된 여행이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진다. 관광이 아닌 여행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지구의 반대편 남반구로 향한 김태원조의 일상은 어떠한가. 옷도 안 갈아 입는다. 샤워도 않는다. 그대로 누우면 침대고, 편하게 보는 앞에서 발톱을 깎고 발을 긁는다. 어느새 텐트에 모여서는 즉석에서 가사를 지어 붙이며 노래를 만들고. 우연히 보고 찾아온 현지의 소녀와 어느새 어울려 즉석에서 영어가사를 붙이고 노래도 불러본다. 되도 않는 노래를 불러제끼고 있어도 그 역시도 여행이니까. 집도 절도 없이 구애됨 없이 떠돌며 사는 거지의 모습이란 문명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김태원, 양준혁, 이윤석 세 남자와도 닮아 있다. 거지치고는 부르주아 거지다.

윤형빈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계속해서 사과를 하고, 김국진은 도리어 예민해져서 이경규에게 날카롭게 굴고, 하지만 그조차도 어느새 함께 여행하고 한 상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사이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져 버린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머리를 맞대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일행이니까. 동지다. 가혹한 환경과 함께 맞서 싸울 동지인 것이다.

김태원조의 걱정은 그동안 경비를 너무 많이 썼다는 것. 어느새 함께 그들의 뒤를 쫓는 제작진에게 사기를 치려 든다. 숙소의 주인이 돈을 잘못 계산했다며 자기들이 제작진으로 인해 더 많은 돈을 쓰게 되었으니 100달러만 달라. 태연스레 거짓말을 하고 뻔뻔스레 바로 포기하고 꼬리를 내린다. 가다가 차에서 내려 계란을 익혀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캠프장에 도착해서 식사를 마치고서는 다시 삶은 달걀을 나누어 먹으며, 그러나 시시껍절한 이야기에도 그들은 잘도 웃고 있다. 김태원이 주도해 만든 노래도 그들의 시시껍절한 이야기를 닮아 있다. 어떤 대단한 명곡을 만들려는게 아니라 그저 함께 부르고 즐길 수 있는 노래라면.

아마 무슨 날인 모양이다. 전날에도 <무한도전>에서 이적이 기타 하나 둘러메고 수목원에서 즉석에서 노래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 김태원마저 기타 하나 들고서 동생들과 함께 둘러 앉아 즉석에서 가사를 붙이고 곡을 붙인다. 어둑한 하늘과 고독하기까지 한 적막 속에 울려퍼지는 기타소리와 노래소리는 얼굴 모르는 소녀마저 불러세웠으리라. 아우들과 함께 하며 어느새 완성된 노래는 그래서 정겹기만 하다. 원초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끌린다.

계곡에서는 짐짓 물뱀을 발견한 듯 사투를 벌이고, 처음 본 이국의 소녀와도 함께 이끌려 노래를 부르고, 문득 길을 가며 발견한 야생소 한 마리는 새끼를 지키려 자동차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아득한 하늘과 가득한 구름과 까마득한 지평선. 누렇게 이는 흙먼지. 검어지는 사람의 얼굴들. 만나는 사람이 두렵기보다는 그저 반가운 저 대지에서. 벌레 들어간 라면과 토스트와 함께 씹히는 파리의 식감과. 당장 저 자리에 나 자신도 함께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예능이 아니라서 좋았다. 물론 예능이다. 하지만 예능으로써 억지로 웃기려는 게 없다. 웃기겠다는 강박이 없으니 웃어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의외로 꼼꼼한 양준혁의 설거지솜씨에 피식거리며, 카메라를 의식한 이경규의 사랑과 배려에도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마 누군가는 지금도 저렇게 여행을 하고 있으리라.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을 그야말로 리얼로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것이 더욱 충동질한다. 어서 여행을 떠나라. 멀리 오스트레이리아로 반드시 떠나라.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었다. 가장 <남자의 자격>다운 <남자의 자격>이었달까?

쉬운 여행이 아니었다. 세상에 쉬운 여행이 어디 있을까. 쉽다면 그것은 관광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긴 여정 끝나 방글방글과 카리지니 국립공원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도착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필자 역시 떠나야 하는데. 과장되고 자극적인 맛이 없어서 담백하게 무척 좋았었다. 재미있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그린 것 같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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