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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2 07:39

TOP밴드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과 여유가 좋았다."

잘해서 밴드가 아니라 행복하기에 밴드다.

 
내내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왁자하게 웃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짓궂게 혹은 통쾌하게 그렇게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즐거워서. 흐뭇해서. 행복해서. 음악이란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구나. 밴드란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구나.

처음에는 조금 긴장도 했었다.

"남의 곡을 카피만 하는 밴드라면 사실 밴드가 아니거든요."

이현석은 더구나 인상마저 차갑게 느껴진다. 이것 또 한 바탕 피바람이 부는 것인가. 하지만 그 이현석의 얼굴에마저 전혀 다르지 않은 흐뭇한 미소가 지어져 있을 줄이야.

"그룹사운드라는 말이 어울리고 보기가 정말 좋았어요."

허름하고 허술한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기사들이 모인 밴드 "서울개인택시그룹사운드"의 공연을 보고 나서였다. 노래마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로 그다지 훌륭하지도 못한 카피였지만 그러나 이현석의 입가에 맺힌 웃음은 나와 같은 흐뭇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결국 손스타와 김종진에 의해 탈락하고 만 시월밴드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그는 단지 무대 위에서의 열정과 흥겨움을 듣고 있었다.

바로 그런 것이 밴드가 아닌다. 해서 즐겁고, 함께 하기에 더 즐겁고, 그래서 지켜보는 이들도 어느새 그 흥겨움에 전염된다. 

"노래가 3분, 4분 그 사이인데 몸이 이렇게 앞으로 끌려 나가고 어느 순간엔가 여러분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출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밴드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끌림? 사람을 달뜨게 하는 흥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드공연을 보려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은 큰 결례다. 함께 일어나 밴드의 연주에 맞춰 방방 뛰며 몸을 흔드는 것이다. 함께 도취되어 음악 속에 자기를 내던지는 것이다. 그런 힘이 있다. 밴드음악에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열정이. 화합이.

무엇보다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자세가 좋았다. 다른 오디션에서와 같은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다. "비주얼 로클롤GOS"나 "모션픽쳐"의 경우 시력을 잃는 유전병이라든가, 프랑스로 입양되어 친부모를 찾는 이야기 등이 방송을 타고 있었지만, 그것은 다른 오디션에서 볼 수 있는 성공에 대한 절박함이 아니었다. 밴드를 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한다며 자신의 밴드활동을 그리 싫어하는 아내에게 조금만 더 허락해 달라고 읍소하는 남편에, 하나 있는 연습실에 쌓인 빚을 갚는데 상금을 쓰겠다는 여고생에, 아직 남은 날들은 많다는 할머니들에. 나머지 밴드 멤버를 구하지 못하 혼자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일인밴드 "로맨틱 워리어" 역시 관통하는 한 가지 절박함은 단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하나같이 말한다. 평생을 음악을 하고 싶다.

이미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음악이고 함께 밴드를 이루어 연습하는 동료가 있다. 물론 오디션을 통해 대상을 받고 메이저 데뷔까지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 직장이 있고, 혹은 이미 밴드를 이루어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다고 그 멤버들이 - 동료들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하는 밴드의 동료들이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탈락하더라도 그들의 표정에는 그래서 그늘이 없다.

그래서다.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와는 달리 이토록 마음이 편한 것은. 누가 합격하고 누가 탈락하고를 신경쓰지 않으니 온전히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음악이고 어떤 무대이고 그것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가만을 생각한다. 유현상이 애써 선배랍시고 다른 심사위원들을 협박하다시피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팅커벨"을 합격시켰을 때도 그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할머니들의 밴드인 "이판사판"이 아쉬움 속에 탈락했을 때도 그다지 비장할 것도 없었다. 심사위원은 심사를 하고 참가자들은 무대를 보여준다. 단지 그러한 전제 속에 심사위원의 판단은 개별적으로 이루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AXIZ"와 같은 우승을 노려볼만한 대단한 실력을 가진 밴드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마추어리즘.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단어일 것이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즐거워서. 하고 있으면 행복해서. 돈이나 인기가 아니라. 부나 명예가 아니라. 그리고 그런 아마추어리즘을 이해하는 진정으로 밴드음악을 사랑하는 심사위원들이 있다. 마지막에 불합격 판정을 내리지만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따뜻하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역시 특유의 가차없는 독설은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빛이 났을 것이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염두에 두었으면 싶은 부분이다. 프로를 뽑는 오디션이지만 결국 아마추어의 경연이다. 아마추어가 갖는 순수함을. 그들의 순수한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그것을 어떻게 시청자들과 공감케 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탄생>에서도 가장 화제를 불러모았던 참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제 갓 초등학교 다니는 김정인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순수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욱 프로그램에 이입케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김도균에 의해 마지막 반전으로 떨어지고 만 "EVER"라는 팀과 같이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밴드가 적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일 게다. 그런 경우가 많다. 현실의 문제에 치여 연습도 거의 못하고 무대조차 없이 어느새 소모되어가는 밴드들이. 심지어 공연이 있으면 공연 직전에 모여 겨우 손발을 맞춰보고 무대에 오른다던가? 아마 그런 것 때문에도 연주실력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앙상블이란 얼마나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래서 원래 밴드란 잘하는 몇 사람보다는 못하는 몇 사람 쪽이 훨씬 낫다고도 한다. 잘하면 그다지 서로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그만두고 다른 데 어디라도 가면 된다. 자기 밴드를 따로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멤버들에게는 밴드와 멤버들만이 전부다. "비주얼 로클롤GOS"는 앞이 잘 안 보이는 멤버를 함께 보듬고 가고, "블루니어마더"는 보컬이 빠지자 기타리스트가 보컬까지 맡아 훌륭히 무대를 소화해낸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폐를 끼치고 희생을 하는 것이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래서 저런 훌륭한 소리들이 나온다. 김종진의 말처럼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음악이란 얼마나 즐거운가. 밴드란 얼마나 행복한가. 물론 그러면서도 예능을 포기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드라마를 치장하고. 하지만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심사위원들이 그 중심에 있기에. "AXIS"의 연주는 내가 보더라도 최고였다. 과연 다음주는 어떤 팀이 나와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줄 것인가? 간만에 정말 흐뭇했던 무대였다.

아직 본격적인 경선에 들어가봐야 알겠지만 어찌되었거나 지금까지의 점수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결코 다른 오디션프로그램에 비해 못하지 않다. 비주류인 밴드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나은 부분마저 보인다. 출연자들과 심사위원의 공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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