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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1 08:04

"댄스 위드 더 스타" 에서 "위대한 탄생" 을 보다 !

멘토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답은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2009년에도 <쉘 위 댄스>라는 스타 댄스스포츠 경연이 있었다. 인기스타들이 댄스스포츠에 도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거니와 무엇보다 댄스스포츠 자체가 본연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다 보니.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섹시하다. 명절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2011년 6월 10일, <쉘 위 댄스>는 MBC에 의해 세계적인 리얼리티 서버이벌 쇼프로그램인 <댄스 위드 더 스타>라는 제목으로 다시 우리 앞에 돌아왔다. 당시는 주로 가수를 위주로 구성되었던 것이 배우에서 마라톤선수, 바둑 기사, 아나운서, 성악가 등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설마 이봉주 선수와 이제 곧 환갑이 되는 원로배우 김영철씨의 왈츠를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현아는 귀여웠고, 제시카 고메즈는 섹시했으며, 문희준은 개구졌다. 성악가 김동규씨도 전혀 의외의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워낙 시간대가 바로 전주까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방영되던 시간대여서일까? 아니 그보다는 제작진에 의해 섭외된 각계의 명사들을 - 다시 말해 댄스스포츠의 초보들을 가르쳐서 그럴싸한 무대로 만들어낸 댄스스포츠 선수들을 보면서 멘토라는 것에 대해 떠올려 버린 때문이었다. 생각했다. <위대한 탄생>이 멘토 시스템을 유지하려 할 때 그 해답은 어디에 있는가? <댄스 위드 더 스타>가 하필 그 시간대에 방영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멘토 한 사람 앞에 멘티 네 사람이라니. 그렇다고 각 멘토가 하던 모든 일을 접고 멘티만을 전담해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각자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프로음악인으로써 공연도 잡혀 있었다. 자기 일을 하는 가운데 멘티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멘토와 멘티의 사이가 그렇게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다. 더구나 산만하게 흩어졌다. 쉐인의 멘토이며, 조형우의 멘토이며, 황지환의 멘토였던 신승훈처럼. 그에 비해 <댄스 위드 더 스타>에서의 김영철과 이채원은 오로지 서로에게 한 사람 뿐인 파트너다.

멘토와 멘티 사이도 그래야 한다. 가르치고 배운다. 그것은 사실 일 대 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학교에서도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행위도 결국 일 대 일로 모두 이루어진다. 너무 대상이 많아지면 그것이 흐트러지고 더구나 모호해진다. 과연 멘티들이 멘토를 만나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발전했는가에 시청자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굳이 그 동안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풀어 놓지 않고도 <댄스 위드 더 스타>에서는 무대 위에서 서로 마주보는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그 사이의 모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결국은 서로에게 한 사람이라는 것이 시청자에게도 서로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많았는가? 물론 각 멘토별 멘토스쿨 한 달에, 생방송무대에 오를 TOP12를 가리고 나서 한 달, 단순히 멘티의 성장이라는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는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 네 사람의 멘티와 멘토 사이의 이야기를 만들고 드러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김태원 멘토스쿨을 제외하고 다른 멘토 누구도 이렇다 할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오히려 후반 다른 멘티들이 다 탈락하고 셰인만이 남았을 때 신승훈과 셰인의 관계는 그렇게 돈독해 보였었다.

한 사람. 선발과정도 너무 길다. 거기서부터 지친다. 멘티를 선발하는 과정은 짧을수록 좋다. 물론 멘토와 멘티의 경합 또한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형식은 <댄스 위드 더 스타> 쪽이 깔끔하고 간결하다. 사전에 걸러진 최소한의 인원만을 데리고 각 멘토별로 오디션을 보고,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멘티와 더불어 경연의 무대로. 심사위원은 역시 그동안 지적되어 왔던 그대로 멘토가 아닌 제 3자가 맡게 된다. 오히려 일반인에게 심사를 맡긴다면 더 정확하겠지. 20명 쯤 되는 일반인 심사위원단을 통해 오히려 프로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멘티와 함께 심사를 받는다. 짧은 주기로 순환되며. 반드시 프로가 될 필요도 없고 단지 그 가운데 프로가 될 만한 가능성은 찾는다.

단지 노래만을 그 대상으로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연주자여도 좋고, 연기여도 좋다. <댄스 위드 더 스타>처럼 춤을 소재로 해도 좋다. 댄스스포츠나 재즈댄스나 아니면 비보잉이나 아이돌의 무대를 배워본다든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을 한 데 공존시키는 것이다. 프로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써 만족할 것인가. <댄스 위드 더 스타>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이미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스타"들인 때문이다. 아마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충분히 고려해 봐도 좋지 않을까? 어째서 <위대한 탄생>의 멘토시스템은 그 참신함이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가. 당장 멘토들에게 있어서도 네 명이나 되는 멘티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담이다. 그동안의 관계라는 것이 있는데 누구는 거두고 누구는 내칠까? 아마 이번에 <위대한 탄생>의 멘토들이 하나같이 시즌2의 출연을 고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멘토들에게도 부담이 너무 크다. 멘티의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멘토 당 멘티가 한 사람인 쪽이 얻는 것도 더 많을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이입하기가 좋다. 짧고 굵고 강렬하게.

벌써부터 <위대한 탄생>의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는 부분이 그래서 걱정이다. 그렇게 말들이 많았는데 제대로 고민 한 번 없이 바로 시즌1의 성공에만 기대어 시즌2를 시작하려 들다니. 수정할 것도 보완할 것도 그렇게 많다. 차라리 <댄스 위드 더 스타>가 그를 위한 한 대안으로써 기획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전혀 포맷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것은 같다.

아무튼 워낙에 댄스스포츠란 자체가 무대가 아름다운 스포츠라. 사람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 아름답다. 경쾌하고 역동적이고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자세한 내용은 필자 또한 댄스스포츠 전문가가 아니라 생략한다. 그저 보면 좋은 것만 안다. 심사위원들의 말을 듣고서야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가. 단, 그 짧은 영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얼마나 함께 노력해 왔으며 서로 얼마나 깊이 교감하고 있는가는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아름다운 춤과 그리고 두 파트너 사이에 오가는 인간적인 교감. 그것이 댄스스포츠의 매력 아닐까.

<위대한 탄생>이 바로 지난주 콘서트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그리고 이제 <댄스 위드 더 스타>가 끝나고 나면 바로 시즌2다. <댄스 위드 더 스타>에서처럼 멘토와 멘티가 교감하는 감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하나만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멘토가 멘토인 이유와 멘티가 멘티인 이유. 어쩌면 <위대한 탄생>이 있었기에 <댄스 위드 더 스타>는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댄스 위드 더 스타>에서 <위대한 탄생>을 보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어쩔 수 없이 <위대한 탄생>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기에.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새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통된 부분이 많으면.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으면. <댄스 위드 더 스타>는 재미있었다.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필자가 <위대한 탄생>에서 고토록 바라고 기대하던 것이었다. <댄스 위드 더 스타>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 그 전에 <댄스 위드 더 스타>를 조금 더 즐겨야겠지만 말이다. 절로 엉덩이가 들썩이며 춤을 추려 한다. 춤이란 이렇게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스포츠 이전에 즐거운 것이다. 스타들의 웃음이 그래서 정겹다. 좋은 프로그램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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