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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4.25 16:31

내 연애의 모든 것 "30대의 10대와 같은 순수와 열정의 사랑"

로맨스는 그 자체로 고전이며 클리셰가 된다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습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이고, 더구나 친구 이상의 끈끈한 인연을 쌓아왔더라도, 그것이 사랑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바로 그 한순간의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와 그 이전의 감정이란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제의 그 사람이 오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다. 그를 보는 자신 또한 어제와는 전혀 다른 자신이다. 낯설다. 어색하다. 놀라고 당황한다. 겁먹고 지레 도망쳐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설렌다. 자꾸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자신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 자신이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더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개 사내아이들에게 첫사랑이란 자신도 모르는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되기 마련일 것이다. 어째서 그때는 그 아이가 그리도 거슬리고 신경쓰였던 것인지 이제서야 어렴풋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는가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로맨스의 정석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맨스는 20대 이전의 그야말로 질풍노도와도 시기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낯설고 어색한, 그래서 더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순수의 시절일 것이다. 낯설고 어색하고 그래서 두렵고 당황스럽지만, 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때로 충돌하거나 도망치기도 하지만, 아마 그래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대부분의 로맨스는 끝나고 있을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질 수도, 아니면 다른 수많은 어른들처럼 그저 지나간 한순간의 추억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빛나던 시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이하다. 설정상 드라마의 두 주인공 김수영(신하균 분)과 노민영(이민정 분)은 각각 30대 전후의 장년기에 가까운 나이들일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어느새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아가며 인격적으로도 성숙해가는 무렵일 것이다. 안정과 여유라는 단어가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사랑하는 방식도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어서의 사랑이 순수한 열정이라면 이 무렵에의 사랑이란 현실의 일상의 일부다. 그렇게 뜨거울 일도, 그렇다고 격렬할 것도 없는 한결 원숙해진 사랑일 것이다. 하물며 정치인이다. 정치라고 하는 현실에서도 가장 첨예한 현장에서 그들은 부대끼고 있다. 순수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려 보지이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은 오만하다. 노민영은 답답할 정도로 자신을 억누르며 사명에 충실하고 있다. 오만이란 자기애의 다른 표현이다. 자기를 아끼고 위하는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다. 죽은 언니를 대신해서 그 사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민영의 의지는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본능과 욕구를 철저히 억압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처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현실에서 추구되지 못하는 본능들이, 그렇게 강한 소망과 사명에 의해 마치 화석처럼 그녀의 안에 가두어진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 그녀의 갇혀져 있던 본능과 욕구가 충동이 되어 그녀의 무의식 속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는 한다. 두려움없이 자기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남자와 그리고 화석과도 같은 순수의 흔적을 간직한 여자, 그들의 만남은 분명 다른 또래의 남녀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황한다. 놀라고 혼란스러워한다. 부정도 해본다. 도망도 쳐본다.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바로 그곳에 있다. 자신은 노민영을 사랑한다. 어떻게 해도 자신이 노민영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감출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자신이 노민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순간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럴만한 이유도 목적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랑하니 사랑한다. 사랑하게 되었으니 사랑한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노민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마치 아이처럼.

노민영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언지. 그녀 또한 과거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에 대한 기억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눌러왔다. 오랬동안 그런 감정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억눌러 왔었다. 그래서 낯설다. 저 아래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어야 했을 감정들이 어느새 비집고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애써 부정하고 고개돌려 외면하려고만 했던 낯설게만 느껴지는 감정들이 그녀의 앞에서 자꾸 그녀를 일깨우려 하고 있었다. 어색하고 부대끼려고만 한다. 마치 김수영을 향한 노민영의 모습이 10대의 사춘기 소녀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게다.

자신을 좋아해서 거절당하고 상심한 마음에 상사병에 걸렸다는 말은 노민영은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리고는 애써 자신이 김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김수영에게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김수영의 수석보좌관인 맹주호(장광 분)의 눈에 익은 도움이 크게 역할을 했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안희선(한채아 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끝내 그녀를 거절하고 돌아오던 김수영이 이미 안희선과 함께 식사를 마쳐 배가 부름에도 노민영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바다. 신경질적일 정도로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김수영이 노민영 앞에서 그 냉정한 판단력을 잃고 만다.

본격적인 드라마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배경을 이루는 정치현실에 대한 묘사가 상당한 비중으로 보여지고 잇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수영과 노민영 두 사람의 관계가 드라마의 주를 이루게 된다.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그 사랑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오해하고, 그래서 다투고 갈등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그래서 행복해지고. 라이벌도 있다. 안희선이나 송준하(박희순 분)나 하나같이 김수영과 노민영의 사이를 방해하는 방해꾼이며 라이벌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도 아질 알지못하는 사연들이 감춰져 있다. 대한민국당 문봉식(공형진 분)과 녹색정의당의 고동숙(김정난 분)과의 사이도 상당히 미묘하다. 서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묘하게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로맨틱코미디다. 사랑하는 드라마다. 정치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정치는 단지 배경에 불과할 뿐이다. 정치인이란 단지 주인공들의 직업일 뿐이다. 물론 배경에 대해서도 작가와 제작진은 상당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었다. 현실의 정치가 로맨틱코미디의 옷을 입고 드라마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현실의 모든 모순과 문제들이 드라마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다루어진다. 정치란 일상이다. 사람이 사랑하는 것처럼 정치도 이루어진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거대서사보다도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김수영과 노민영이 만들어갈 로맨스에 관심이 간다.

어찌보면 진부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설정과 익숙한 구성이다. 데자뷰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전개가 읽힌다. 그런데 재미있다. 로맨스란  그 자체로 이미 고전인 까닭이다. 수없이 많은 로맨스가 있지만 결국 그 가운데 패턴은 몇 가지로 한정될 것이다. 사람이 사랑하는 방법은 많지만 사랑에 이르는 길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소재의 독특함도 드라마를 살린다. 그보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러면서도 위화감이 느끼지 않는 재치넘치는 대사들일 것이다. 10대의 사랑인 듯 풋내나는 순수와 30대의 원숙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재미있다. 어쩌면 그리운 모습들일수도 있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이야기란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멜로가 아닌 로맨스의 주인공이란 김수영과 노민영과 같다. 신하균은 어른이며 아직 소년이다. 노민영 또한 어른이지만 아직은 어린 사춘기 소녀다. 그 쉽지 않은 경계를 신하균과 이민정 두 주연배우가 어색하지 않게 구현해 보여주고 있다. 사랑스럽다. 싱그럽다. 그러면서도 원숙한 여유가 느껴진다. 그런 모습들이 또한 너무나 잘 어울린다. 흥미로운 이유다. 즐겁다.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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