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5 08:34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이 정복군주가 되어야 했던 이유"

더 이상의 역사에 대한 고증을 포기한다.

 
무언가 어색하다. 순간 헷갈렸다. 모용수가 아닌 모용황 아닌가? 후연이 아닌 북연 아닌가? 바로 전전대왕인 고국원왕 때 북연의 모용황이 그렇게 군대를 둘로 나누어 북로로 유인하고 남로로 침입하여 환도성을 불태운 적이 있었다. 설마 고국양왕 때라면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일 테니 고구려군이라고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솔직히 지금도 헤살린다. 몇 번을 확인해 보았다. 분명 당시 국왕은 고국양왕 이련이다. 고국원왕이 죽고 그 아들인 소수림왕이 즉위하고, 소수림왕이 죽자 동생인 이련이 즉위했다. 그런데 모용수와 아들 모용보가 고구려를 공격하는 전략은 이미 북연에 의해 고국원왕 때 쓰여졌던 전략 그대로다. 무슨 의도인 것일까?

하기는 시작부터 후연과의 이야기로 시작하려는 것에서부터 의도하는 바는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연과 고구려는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후연의 영토가 기껏 하북과 산동에 요서를 더한 정도였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고구려와 후연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 것은 모용수가 탁발규에게 패하고 난 뒤였다. 설욕전을 꾀하다 모용수가 병으로 죽고, 다시 그 뒤를 이은 모용보가 반란에 의해 쫓겨나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나서 그 아들 모용성이 즉위했을 때 비로소 광개토대왕은 후연과 맞붙고 있었다. 모용수가 살아있을 때도 중원의 패권을 다툴 정도는 아니었거니와 모용성 대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단지 요동과 요서의 패권을 다투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것을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말하고 있는 것. 그래서 후연과의 관계가 먼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째서 현대의 한국사람들은 광개토대왕을 그리 추앙하고 있는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인 때문이다. 침략하여 땅을 넓히고 패권을 다투었다. 단순히 땅을 넓힌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국이란 헤게모니인데 그 헤게모니를 다투려면 대상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중국의 왕조로써 황제까지 칭한 후연이라면 아주 적당하다. 그래서 광개토대왕은 모용보와의 싸움에서 화살을 날리고 직접 칼을 휘둘러 마치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조조군을 누비듯 필마단기로 몰아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광개토대왕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 이유일 테니까.

사실 당시 고구려에게 있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후연따위가 아니었다. 고국원왕이 바로 백제의 근초고왕과의 싸움에서 죽었다. 왕의 죽음도 죽음이려니와 하필 고국원왕이 죽은 곳이 평양성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평양성이 위치한 대동강 유역이야 말로 당시 고구려에 있어 유일하게 생산을 기대할 수 있는 평야지대였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생산이란 곧 농업생산이었다. 농업생산이 목축이나 어로, 수렵에 의한 생산을 넘어서면서 국가경제란 곧 농업생산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얼마나 충분한 생산을 확보하는가. 그것은 얼마나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는가 하는 국가의 당면과제였다. 그것이 부족했기에 고구려는 주위의 여러 나라와 종족을 침략하며 약탈경제로써 나라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을 전후로 고구려에서 피약탈계층인 하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째서 광개토대왕 이전에는 오히려 항상 약세를 보이던 고구려가 광개토대왕 이후 동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는가.

요동은 사실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큰 가치가 없었다. 단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생산이어서는 안 된다. 잉여인력까지 먹여살릴 수 있는 잉여생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만주나 요동의 척박한 환경이나 동부의 산간이 아닌 평안도의 평야지대는 고구려에 있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구려의 왕권에도 힘을 실어줄 것이었다.

고구려가 마침내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고구려를 괴롭혀 온 문제였다. 생산의 부족과 그에 따른 왕권의 약화. 고구려의 인구가 그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백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정도였다. 고구려의 귀족들은 아예 사병을 이끌고 왕이 머무는 궁궐 앞에서 싸움을 벌이는 지경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하는 그 순간에도 부여성을 비롯한 요동방어선의 여러 성들이 남건과 남산 형제에 의해 쫓겨난 연남생의 편을 들어 당에 항복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 같은 왕명이니 무조건 따르는 성주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왕 자신이 충분한 힘을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을 갖지 못한 탓이었다.

어째서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사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있었는가? 백제를 한수 이남으로 몰아내고 났으니 평양과 황해도 일대는 온전히 새로이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된 국왕에 속한 지역이 된다. 더구나 생산마저 유리하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평양성에서 피바람이 불었더라는 백제 개로왕의 국서내용은 이러한 정황을 의미한다. 평양성으로 이동함으로써 충분한 생산을 확보하고 왕권을 뒷받침할 힘을 기른다. 문자명왕에 이르러 고구려가 최대의 판도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에 비하면 후연이 차지하고 있던 요서 정도야...

실제 북위가 후연을 공격하려 했을 때 당시 고구려의 장수왕은 후연을 사실상 속국으로써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후연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를 지키려 하기보다 재물과 사람만을 빼내어 요서지역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고구려에게 요서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요동은 중국과의 최전선으로써 의미가 있었다. 그 밖에는 모용성을 이은  모용희에게 공격을 당하고 난 뒤에조차 오히려 광개토대왕은 모용희에게 조공하며 화해를 청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그의 군대는 백제와 백제를 지원한 가야, 왜와 싸우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이 끝내 후연을 공격하게 된 것은 자신감이 붙은데다 백제와 싸우는데 후연과 거란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절대 후연을 쓰러뜨려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자, 사실상 모용운이 후연의 왕위를 빼앗으면서 후연이 고구려의 속국이 되다시피 했는데 그러면 그때는 중원의 패권이 고구려에 있었던 것일까?

참고로 당시 고구려의 군제 변화에 대해서도 한 가지 주목하고 넘어갈 것은, 소수림왕 이후 고구려와 중원의 전진과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전진 역시 오호의 하나인 저족이 세운 나라로써 기마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무렵 중국의 정주문화에 물들면서 그들의 경기병 위주의 기마전술은 중장기병 중심으로 크게 변화하게 된다. 고국원왕 당시 후연에 당하고 백제에 몰리던 고구려가 소수림왕 이후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진과는 불교를 수입하며 상당히 관계가 돈독했던 터였다. 그리고 전진의 입장에서도 전연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치 삼국지의 여포를 보는 듯 필마단기로 후연군을 휩쓰는 광개토대왕의 모습에서 그런 복잡한 사정들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또다시 흔한 삼국지 스타일의 모략과 전쟁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채우게 될까? 아직 중앙집권을 이루지 못한 고구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전투는 포기했다. 도대체 광개토대왕 시절에 수당시대에나 쓰일 법한 중국의 명광개란 웬 말인가 말이다. 명광개는 페르시아로부터 당나라로 전해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고구려란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기는 그래서 내가 언제부터인가 사극을 보지 않게 되었다. 고증이란 담 쌓고 산다. 무언가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사극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빈 군담판타지랄까? 그조차도 전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찾아볼 수 없다.

혹시나 하고 지켜봤더니만 역시나... 광개토대왕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역사물을 좋아하는 필자로써 또 한 편의 역사드라마를 놓쳐야 한다는 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욕하면서 보는 것은 <불멸의 이순신>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별로 재미도 없다. 재미있자고 드라마도 보는 것이다.

고담덕은 군인으로써만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써도 훌륭했다. 과연 지방세력들이 그리 강한 고구려에서 정치력 없이 5만의 대군을 움직여 원정도 하고 정벌도 하고 할 수 있었을까? 광개토대왕은 여포도 항우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인이며 전략가이고 협상가였다. 그야말로 한국 역사드라마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실망하고 마는 부분일 것이다. 안타깝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