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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5 07:37

내사랑 내곁에 "이소룡과의 만남과 고석빈과의 스침"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이런 걸 좋아한다. 그렇게 우울했었다. 비참하고 비장했었다. 어린 나이에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임신을 하고, 온갖 마음고생을 다 하며 끝내 그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학교와 살던 동네마저 등져야 했었다. 과연 이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웃고 있었다. 여전히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억척스러운 가운데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있는 힘껏 우유도둑을 때려잡고, 그것이 오해인 것을 알고 그 와중에 부서진 넷북값 90만원을 빚으로 떠안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울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단 돈 몇 만원이라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으며, 처음 해 보는 짧은 옷차림의 나레이터 모델도 열심히 훌륭히 치러낸다.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며 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온 딸 도미솔(이소연 분)과 그런 딸에게서 닭냄새가 나자 혹시라도 공부한다고 속이고 아르바이트 하고 온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묻는 엄마 봉선아(김미숙 분), 그리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엄마의 아들로 호적에 올라 있는 아들 영웅이를 챙기는 엄마 도미솔.

물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엄마 봉선아의 얼굴은 삶에 지쳐 있고, 또 다른 엄마 도미솔의 얼굴에도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살 만하지 않은가? 걱정해주는 엄마 봉선아가 있고, 걱정해주어야 할 아들 영웅이가 있다. 엄마 봉선아에게도 딸과 아들이 된 손주가 있다. 가끔은 돈을 들고 도망가 버린 몹쓸 동생 봉우동(문천식 분)에 대한 걱정에 일손이 잡히지 않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꿋꿋하게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도미솔을 보여주며 이소룡(이재윤 분)과 고석빈(온주완 분) 사이에서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를 오가는 균형을 보여준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을 뚝 떼어다 놓은 듯 팔이 짧아 이마를 짚인 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도미솔의 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가. 다이어리를 통해 맺어진 인연은 우유를 매개로 다시 빗자루와 부서진 넷북에 의해 이어진다.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가운데 짐짓 독하게 굴어보는 이소룡의 모습은 도미솔의 짧은 치마를 걱정하는 장면에서 흐뭇한 관계로 이어질 것을 예감케 한다. 아마 조금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몇 번의 헤프닝이 있으면서.

그에 비하면 도미솔의 우울한 과거와도 관계가 있는 고석빈의 존재는 칙칙한 멜로 그 자체다. 사랑이보다는 미련일 것이다. 미련이라기보다는 죄의식이다. 미처 털어버리지 못한 지난 시간의 잔재. 차라리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라도 했으면 이제쯤 깨끗이 잊기라도 했으련만 이별조차 못하고 돌아서고 만 사이이기에 강제로 부정되어진 시간들의 기억이 아프고 아련하다.

아마 김한길의 소설 "여자의 남자"에 나오는 대사였을 것이다. 마음의 바겐세일이었고 육체의 바겐세일이었다. 이별을 강제당해야 했던 남자의 상처와 그로 인한 절망과 자괴감을 가장 잘 표현한 대사였을 것이다. 고석빈은 과연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도미솔과 한 번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도미솔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한 그는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문 채이리라.

사랑해서가 아닐 것이다. 단지 미련이다. 자신이 남겨두고 온 빛이다. 아니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솔의 우울한 과거와 어쩌면 밝은 미래. 고석빈과 이소룡과의 만남이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더구나 도미솔과 고석빈의 아들 영웅이와 영웅이를 지우려 했고 영웅이를 가진 도미솔을 쫓아보냈던 배정자(이휘향 분)가 마트에서 서로 만났다. 얽히고 섥히는 감정과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확실히 배정자는 가련한 여자다. 아무리 독기를 부리려 해도 전혀 그녀가 밉지 않다. 너무 능숙하다. 살아가는데. 주위의 눈치를 보고 그것을 이용하는데.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으니까. 그것이 그녀의 생존방식이다. 본질은 아들 고석빈에게 하는 것처럼 어쩌면 한없이 선량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골프장에서 너무 못 친다고 타박받고 괜히 심술이 나서 투덜거리는 그 열등감이 그녀를 그리 몰아세우는지 모른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없이 우울하던 분위기에서 그래도 이제는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여유있게 웃어도 좋고 함께 힘을 내어도 좋다. 어쩌면 우울해질지 모르는 고석빈과의 멜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듯하다. 조윤정과 도미솔이 같은 방송국에서 일할 것 같은데.

바야흐로 탄력이 붙었다. 너무 긴 도입부가 담담하지만 차가운 주제의식과 재미를 바꾸었다면, 이제 비로소 드라마가 들려주려던 이야기들이 시작되려 한다. 조금은 올드하고 진부하지만 그런 만큼 확실한 드라마다. 보는 재미가 있다. 기대가 크다. 오늘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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