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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4 16:39

미스 리플리 vs 동안미녀 "승승장구 안내상편을 보면서"

장미리와 이소영 두 여자의 선택에 대해서...

 
뒤늦게서야 <김승우의 승승장구> 안내상편을 보았다.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뜻깊은 기회였다. 과연 마른장작이로구나. 정말이지 화끈하게 자기를 불사르며 살았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너 너무 귀엽게 생겼구나."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말이다. 어쩌면 누구나 어려서 한 번 쯤은 들어보는 이야기일 것이다. 진심에서든 예의사이든. 그런데 그 한 마디가 한 아이의 인생ㅇ르 바꿔놓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싸움질에, 초등학교 3학년에는 담배, 그리고 도둑질까지. 하지만 단지 그 한 마디를 듣는 것으로 그는 그 모든 것을 끊고 비로소 다른 아이들과 같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양심도 알고 염치도 알고 바르게 산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려주던 참혹할 정도로 적나라하던 가난의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안내상은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었던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해도 인정은 있다. 하지만 잃어버려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가난한 동네의 아낙들은 머리끄댕이를 잡고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운다. 일상이 욕이고 폭력이 대화를 대신한다. 그만큼 절박하니까. 다른 것은 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하루하루가 안타깝고 절망적이기에 아이들까지 챙길 여력이 어른들에게도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홀로 떨어져 일찌감치 세상을 알아간다. 홀로 사는 법을 깨우쳐간다.

필자의 집에도 고양이가 세 마리가 있다. 한 녀석은 업둥이다. 아마 3개월이나 4개월 무렵에 창가를 얼쩡거리는 것을 들여 기르게 된 것이었는데, 확실히 다르다. 업둥이 녀석은 애교가 없다. 한 집에 살면서도 그렇게 독립적이다. 여전히 새끼일 때마냥 사람에게 의존하는 두 녀석과는 다르다.

사람도 같다. 아니 다르다. 그나마 고양이는 본능대로 살아도 좋다. 알아서 먹고 알아서 싸고 알아서 자고,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어떻게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배우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그런데 가족이 없다면?

집에 사람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텅 빈 컴컴한 방만이 아이들을 맞는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말 그대로 그냥 짐승들이다. 뭐가 옳고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본능이 시키는대로 이끌리며 살아간다. 싸움과 도둑질과 담배와 그리고 섹스. 안내상씨가 이야기한 내용이 내가 경험한 그대로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쉽게 훔치고, 우유와 신문을 훔쳐서는 팔아먹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난한 동네의 일상이었다.

가난이 가져다 주는 절박함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방치되어 버리는 아이들. 어느 사회에나 그래서 빈민가는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어느 프랑스의 사회학자는 그래서 이런 빈민가를 두고 제 3세계에 이은 제 4세계라 이름지어 붙이고 있었다. 가난이란 사회 속의 또 다른 사회다. 그곳은 일반의 세계와는 다른 가치와 상식과 규범이 작용하는 세계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미쳤다. 얼마전 종영한 <로열 패밀리>. 그리고 최근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의 <동안미녀>와 MBC의 새 월화드라마 <미스 리플리>. 아마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방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안미녀>와 <미스 리플리>가 서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둘 다 자신에 대해 속이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아마 납득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나이를 속이고 회사에 들어간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무려 고졸학력을 동경대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어떻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나이를 속이고 학력을 속이는가?

하지만 그래야 했으니까. 회사에서 잘렸고 알량한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엄마와 여전히 모델을 꿈꾸는 철없는 동생을 건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세까지 몇 달 밀려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했었다. 그렇게라도 취직을 하지 않으면 그 지옥같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나마 차이라면 <미스 리플리>의 주인공 장미리(이다해 분)가 보다 절박하고 간절하다는 것일 게다. <동안미녀>의 이소영(장나라 분)은 착하다. 오히려 그녀는 당하는 역할이다. 나이를 속이고 들어가서도 항상 죄스러운 마음에 주눅들어 있고, 다른 누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공격을 받아도 자기 탓이려니 인내하며 넘어가고 만다. 그에 비하면 장미리는 보다 반응이 독하고 과격하다. 학력을 속이는 것 또한 이소영과는 달리 주도적이다.

결국은 가족의 존재에서 차이가 드러나고 있지 않을까. 바로 <승승장구>에서 안내상이 말한 방치당한 아이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차이일 것이다. 무엇보다 부양할 가족이 있고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될 터이니. 그래도 밉상짓을 해도 가장 이소영을 아끼고 챙겨주는 것은 동생 이소진(오연서 분)이다.

그에 비하면 장미리의 주위에는 누가 있던가.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왔는데 미련을 두거나 기억을 남길 대상이 아무도 없었다.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들어왔고 다시 일본으로 들어갈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녀의 뒤를 쫓는 히라야마 정도가 그녀가 남긴 전부였을까. 어머니로부터 버려지고, 양부모로 인해 나락을 경험하고, 친구 문희주(강혜정 분)를 만나게 되었다고 새삼 우정을 떠올릴만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녀에게는 양심보다 절박함이 우선한다.

가족이 사회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한 가지, 다름아닌 사회화와 개인의 일탈에 대한 완충지로써다. 가족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배우게 된다. 아이에 대한 교육 자체를 포기한 부모로 인해 선생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 지 몰라서 "아지매"라 불렀다는 안내상의 말처럼 아이는 가족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소녀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사회에서의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더불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억울한 일이나 슬프고 화나고 하는 일들을 토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도 가정이다. 신창원과 비슷하게 학교로부터 거부당한 기억이 있는 김태원을 끝까지 붙잡아 세우고 지금이 있도록 해 준 것도 바로 가족이었다.

<로열 패밀리>에서도 주인공 김인숙(염정아 분)으로 하여금 극단을 치닫게 만든 계기가 무엇이었던가. 아들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그 이상을 하지 못하도록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그녀의 또 다른 아들 조병준과 아들과 같고 연인과 같던 존재 한지훈(지성 분)이었다.

그런데 가난은 그 가족마저 해체시켜버린다. IMF 당시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으로 향했었다. 장미리처럼 그렇게 믿고 있던 아이들이 많았다. 언제고 부모님이 찾으러 와주실 거야. 반드시 부모님이 자신을 찾아 데려가 줄 것이라. 하지만 그 약속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이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가난이란 그렇게 지독하다.

장미리를 벌리고 간 어머니도 역시 그런 가난이 싫었겠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까지 그렇게 죽고 고아원에 들어갔을 때 장미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고아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겪으며, 그러나 그녀를 버린 어머니는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새삼 어머니를 찾겠다고 하는 그녀의 마음은 애정일까? 아니면 절망 속에서 아무거라도 부여잡고자 했던 발버둥이었을까? 하지만 이소영은 그 어머니마저 비난하고 욕할 수 있었으니까.

<동안미녀>에서의 이소영과 <미스 리플리>에서의 장미리의 선택이 다른 것은 그래서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라는 절망에서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극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끝까지 절망하거나 그 절망에 분노하거나. 절망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그 절망과 맞서 싸우고자 또 다른 극단을 선택하거나. 이도저도 아닌 진정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안내상이라는 배우가 아름답게 보인 이유다. 이소영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주눅들어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살거나 아니면 장미리처럼 그 운명 자체를 증오하며 악에 바쳐 싸워나가거나. 착하거나 악하거나. 아니 약하거나 독하거나.

개인적으로 <미스 리플리>의 방영과 함께 <동안미녀>에 대한 모든 흥미가 사라진 것은 그래서다. <로열 패밀리>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차라리 그렇게 운명을 원망하고, 현실을 증오하며, 자신을 위해 싸워나가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 끝이 절망이라도, 다시 못 올 곳이라도, 그러나 자기를 위해 힘껏 세상과 부딪혀 나갈 수 있다는 것. 물론 <동안미녀>의 이소영처럼 그렇게 순둥이처럼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착하게 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렵다. 어려워도 염치를 알고 양심을 지키며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 그래도 그녀 역시 나이를 속이고 회사에 들어갔다는 원죄가 있으니까.

어쩌면 한국 드라마의 특성상 <미스 리플리>의 주인공 장미리의 장래가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흔한 권선징악의 교훈을 위해 벌을 받고 파멸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겠다.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 예전과 같은 삶을 사느니 범죄를 저지르고 말겠다. 그 절박함이. 그 간절함이. 그 치열한 삶에 대한 애정이. 그녀에게도 이소영과 같은 가족이 있었다면. 원망하고 서로 악다구니를 하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고독하기에 더욱 그 치열함이 가련하게만 보인다.

가난이라는 것. 흔히 말한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본으로 계량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편함이란 곧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째서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을 살펴야 하는가?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어딘가에는 장미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숙이 있을 수 있다. 김인숙에게 구원받기 전의 한지훈이 있을 수 있다. 히라야마는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승승장구>의 안내상씨 편을 보면서, 그리고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기에. <로열패밀리>는 한때 그렇게 내가 온 마음을 쏟으며 지켜보던 드라마였다. 네 사람의 삶과 가난이라는 현실. 다시 말하지만 안내상이란 정말 아름다운 배우인 것이다. 그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의 삶을 쟁취했다. 하긴 그는 남자였을까? 그나마 한국사회에서는 남자로 살아가기가 편하다.

우울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굳이 돌아보려 하지 않아도 우울하다. 안내상과 같은 어린 시절을 겪는 아이가 어딘가 또 없을까? 아니 지금은 괜히 잘 사는 집 아이들에 시비를 걸기보다 그 부모에 의해 학교로부터 동네에서 쫓겨나고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떠밀려 변두리로, 변두리로, 도시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빈민들이 도시로부터 떠밀려나고 있었다. 현실의 안락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분명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며 가난한 이들의 정겨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과연 그 가운데 또 안내상은 있을 것인가.

혹시나 장미리가 있지는 않을까. 김인숙이 있지는 않을까. 이소영이 있지는 않을까. 가족이라도 함께 한다면. 그 가족이 곁에서 지탱해 줄 수 있다면. 가난이 슬픈 것은 바로 그 가족마저 흩어버리는 때문이다. 더 독해지고 악해질 수밖에 없게. 아니면 더 약해질 수밖에 없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일주일이었다. 해석은 리스너의 몫이다. <승승장구>와 <미스 리플리><동안미녀> 그리고 끝났지만 <로열패밀리>, 현실의 삶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누군가 귀를 기울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더 큰 슬픔이나 아픔은 없도록. 물론 그럴 수는 없을 테지만.

아무튼 <동안미녀>를 대신해서 <미스 리플리>를 보게 된 이유를 장황하게도 써놓았다. 이소영이 아닌 장미리인 이유를. 내 취향이다. 장미리의 그 독한 향기는.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하게 되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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