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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8.06.28 20:49

[권상집 칼럼] 투혼과 집념으로 기적을 만든 월드컵 대표팀

투혼과 집념, 헌신으로 불가능을 극복한 또 하나의 드라마

▲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축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라질을 떠올린다. 그러나 브라질에게마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국가는 바로 세계 최강 독일이다. 독일은 유독 큰 경기에 강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이후 월드컵에서 독일은 4강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꺾고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등 독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상위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도 독일은 10전 전승을 기록하며 예선을 통과, 압도적 포스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영국의 축구 레전드 게리 리네커는 1990년대 이후 독일의 꾸준한 상승세를 비꼬기라도 하듯 “축구는 단순한 경기이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닌 후 결국 독일이 이긴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팀 연습시간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독일의 시스템화된 그라운드 장악 능력, 골대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며 상대에 비수를 꽂는 독일 공격수들의 명성은 웬만한 축구 팬이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 독일을 대한민국이 이겼다. 독일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에게 패한 것도 역사상 최초이다.

대한민국에게 패하여 독일은 무려 80년만에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FIFA랭킹 1위 국가가 아시아 국가에게 패한 것 역시 세계 최초라고 하니 우리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은 거두지 못했더라도 두고 두고 세계 축구 역사, 월드컵 이변 사례에 기록될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투혼과 열정, 헌신을 쏟아내면 세계 최정예 실력을 갖춘 이들도 누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축구 대표팀은 보여주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시아 대표로 선전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도 모든 초점이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쏠리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은 사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대표팀 사령탑이 신태용 감독으로 바뀌는가 하면 세계 최정예 국가와 하필 한 조가 되어 독일과 스웨덴, 멕시코는 우리를 상대로 1승은 그냥 올리게 되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퍼지기도 했다. 실제, 앞선 두 경기에서 대표팀이 축구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졸전을 펼치자 실수를 연발한 일부 축구선수와 신태용 감독에 대한 독설과 비난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다행히 마지막에 기적 같은 승부를 보여주었기에 여론은 비난에서 격려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일부 축구 전문가는 대한민국 여론이 ‘묻지 마 비난’에서 ‘묻지 마 격려’로 너무 순식간에 바뀐다며 이런 여론으로는 안정적으로 월드컵 대표팀을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축구 팬들은 16강 진출 등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혼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승부를 기대하고 지지한다. 그러므로 이를 ‘묻지 마 비난’이라고 폄하하는 건 곤란하다. 이번 독일 전 승리에 대다수 축구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 역시 투혼과 집념을 쏟아내면 세계 최강도 제압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직접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시 차분하게 패배를 분석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계획에 들어간다고 한다. 독일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에도 우리에게 3-2로 간신히 승리했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올리버 칸의 눈부신 선방으로 우리를 준결승에서 1-0으로 힘겹게 누르고 결승에 올라갔다. 월드컵 때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당대 최강이라고 불리던 국가마저 무자비하게 압도했던 독일이 유독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매번 접전 또는 졸전을 펼치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다. 독일은 항상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만난 후 팀을 재정비했고 그 이후 세계 최강팀으로 거듭났다. 독일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독일 전 승리에 영원히 도취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항상 조별 예선 3차전에서 최선을 다해 멋진 승부를 펼쳤고 그 때마다 “세계의 벽은 높았지만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로 월드컵에서의 교훈을 금새 잊어버렸다. 세계 1위 독일을 제압한 기적은 분명 축하 받을 일이지만 향후 세계 정상급 국가와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체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번 대표팀의 혁신과 재정비를 위한 기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학습효과는 러시아 월드컵으로 충분하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에 만든 기적은 전략과 전술의 성공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선수들 하나 하나가 국민들에게 멋진 마무리를 보여 드리기 위해 투혼과 집념을 발휘했고 악착같이 더 뛰고 달려들어 기적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국민들은 기적에 환호했고 또 선수들의 투혼과 집념 그리고 헌신에 감동의 박수와 눈물을 보냈다. 그러나 매번 선수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건 곤란하다. 4년마다 선수들의 열정과 헌신에 기댄 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대한축구협회와 축구 행정체계에 대한 분노는 이미 최고치인 상황이다.

내년 1월이면 아시아 국가의 최정상을 가리는 아시안컵이 UAE에서 개최된다. 월드컵 못지 않게 아시아 최정상을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월드컵의 기적에 머물러 있지 말고 지금부터 무엇이 개선되고 혁신되어야 하는지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긴 안목을 갖고 팀을 재정비하고 대한축구협회와 국내 축구 시스템의 프로세스, 대표팀의 실력을 변화시켜야 한다. 4년이면 충분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는 기간이다. 메스를 꺼내어 이를 개선하지 않는 한, 4년 후 우리는 선수들의 투혼과 집념만 믿고 또 다른 기적만 초조하게 기다릴지 모른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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