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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3 08:55

시티헌터 "멜로와 액션, 한 가지 색의 칙칙함"

무언가 제작진이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처음 호조 츠카사의 만화 <시티헌터>의 판권을 사서 드라마를 만든다 했을 때 두 가지 중 하나만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도시의 주변에 존재하는 해결사로서의 시티헌터를 그대로 재현하던가, 아니면 하드보일드와 코믹을 오가는 그 느낌을 살려주던가.

<시티헌터>가 명작인 이유다. 음을한 하드보일드 액션과 상당히 경박하고 선정적인 유머의 코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전직 용병출신의 프로페셔널이 보여주는 암울한 뒷골목의 세계와 하드보일드라면 빼놓을 수 없는 미녀들과 얽히는 일상의 유쾌함이 극단을 오가며 흥분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도시에 숨어 있는 해결사란 그렇게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어쩌면 복수를 목표로 한국 사회에 잠입해 있으면서 주위로부터 의뢰를 받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이경완(이효정 분)을 몰락시키는 과정에서 김나나(박민영 분)로부터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 사건마다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들로 드라나는 더 풍부해지고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김나나와 이윤성(이민호 분)과의 관계도 보다 유쾌하게 다이나믹하게 전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작이 바로 그랬으니까. 해결사라는 직업은 그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원작에서와 달리 해결사라는 직업을 포기하면서 드라마는 오로지 이윤성의 복수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이윤성의 아버지 박무열(박상민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를 길러준 아버지 이진표(김상중 분)를 복수의 화신이 되어 떠돌게 만든 그 원흉인 5인회를 추적해 제거하는 것. 다만 비밀에 가려진 5인회를 하나하나 추적해 가는 것도 한 요소이기에 아직까지 5인회가 전면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5인회에 복수해야 하는데 아직 5인회는 보이지 안는다. 결국 드라마가 멜로로 빠지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드라마는 액션드라마다. 시티헌터 이윤성이 보여주는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드라마다. 그런데 그 대상은 5인회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5인회는 아직 장막에 가려져 드러나 있지 않다. 싸울 대상이 없다. 활극을 보여줄 상대가 없다. 오죽하면 서로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복수에 나선 이윤성과 이진표 사이의 갈등이 드라마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전부일까.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그래서 김나나는 울어야 하는 것이다. 이윤성은 그것을 보고 심난해 해야 한다. 김영주(이준혁 분)는 이경완을 내버려두고 명품숖에 들러서 이윤성과 부딪혀야 하고, 이윤성은 그런 김영주와 사랑싸움이나 해야 한다. 특별출연형식으로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안았던 구하라(최다혜 역)의 존재감이 한결 크게 드러나는 것도 그래서다. 그녀의 발랄함은 김나나와 이윤성이 만들어가는 멜로에 어울린다. 원래는 김나나와 이윤성 사이의 유쾌발랄한 로맨스와 더불어 이윤성과 이진표가 벌이는 잔인하고 집요한 복수극과 대비되었어야 할 부분이겠지만.

바로 그게 문제인 것이다. 김나나도 우울하다. 이윤성도 우울하다. 이윤성의 복수도 우울하다. 이진표의 복수는 더 우울하다. 서로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이윤성과 이진표의 사이는 더 우울하다. 차라리 멜로에만 집중했다면 눈물이라도 쥐어짤 수 있었을 텐데. 이윤성과 이진표의 복수에만 집중했다면 우울한 잿빛의 하드보일드 액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전혀 다른 잿빛으로 드라마가 통일되어 버렸다. 일상도 우울하고 복수도 우울하다. 한 마디로 단조롭다. 그렇다고 그 단조로움 안에서 무언가 집중하게 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기획단계에서는 전혀 다른 의도였을 것이다. 이윤성과 김나나의 로맨스와 이윤성과 이진표의 잔인하고 집요한 복수를 대비한다. 이윤성과 김나나가 보여주는 유쾌한 일상과 이윤성과 이진표가 복수하는 과정에서의 묵직한 액션을 대비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시티헌터>의 원작의 판권을 사서 제목까지 그렇게 붙여 드라마를 만들었던 것일 터다. 드라마 초반에는 분명 그런 모습드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4회째만에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으니.

아마 계산착오였을 것이다. 장막에 가린 5인회와 그것을 하나하나 찾아 복수하는 시티헌터.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이윤성과 김나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하지만 복수와 로맨스 사이의 간극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 못한 간극을 채우려니 진부한 눈물이 나오게 된느 것이고 그것이 원래는 전혀 다른 색채로 대비되었어야 했을 드라마의 내용을 한 가지 톤으로 칠해버리고 말았다. 지루해진다.

문제라면 이미 상당부분 사전제작이 완료되어 있는 터라 수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일 텐데. 여전히 5인회는 숨어 있고, 이진표와 갈등하는 가운데 이윤성의 일상은 김나나가 지배한다. 이윤성과 김나나의 일상의 비중이 늘어나면 원래 설정상의 문제 때문에라도 김나나의 우울함이 두 사람 사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윤성의 일상도 우울하다. 변화없는 잿빛 톤에, 단지 농도만 다를 뿐인 복수의 잿빛 톤. 설마 편집 과정에서 그런 정도는 눈치채지 않았을까.

결단이 필요하다. 우울하게 계속 갈 것인가. 하드하게 노선을 바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에 다양한 변화를 불어넣을 것인가. 결국은 해결사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해결사가 아니더라도 시트콤처럼 이윤성의 주위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구하라의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할까? 가장 사건을 일으키기에 적당한 위치에 있는 캐릭터가 대통령의 딸 최다혜일 터이니.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드라마다. 처음에는 많이 기대했었는데. 의도도 좋았다. 다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의 변수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이것이 원래 의도한 바대로라면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넫도 시청율이 높다면? 그것은 필자가 드라마를 잘못 보았던 것일 테고. 최소한 내가 기대한 그런 드라마는 아니었다.

액션이 필요하다. 여름을 날려버릴 수 있는 시원한 액션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너무 말만 했다. 액션이 너무 짧고 밋밋했다.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단지 제목만 갖다 썼을 뿐인 졸작은 되지 않도록. 실망이 크다. 제작진을 믿어본다. 이대로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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