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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2 17:44

타블로 사태 1년 "옥주현과 구애정, 비호감과 정보화의 폐해"

어째서 인터넷은 사람을 난폭한 바보로 만드는가.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게 된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본 대상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니까!"

그리고 TV는 사람들에게 정지된 사진도 아닌 움직이는 영상을, 무려 소리와 함께 보여주고 들려준다.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더구나 내용까지 구체적이니 굳이 더하고 빼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 사실은 이렇구나!"

TV를 통해 보여지고 들려지는 내용들이 바보같아서 바보상자가 아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TV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내용들에 의심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기에 바보상자라 하는 것이다. TV는 똑똑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반복해 보다 보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내 생각에는..."

보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까지 할 수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판단까지 내린다. 더구나 그것을 긍정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연결된다.

"1+1이 4 아냐?"

그런데 누군가 대답해 준다.

"4가 맞는데 사람들이 자꾸 2라 하네?"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4가 맞는 건데."

굳이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답을 대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신과 같은 생각과 답을 가진 사람들과만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보았고 들었고 느꼈고 생각했고 판단한 데다가 여기에 다른 사람의 확인까지 더해진다.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그것을 확인받았다. 확신이 생긴다. 

"1+1은 4야. 분명해!"

정보화가 가져다 주는 맹점이다. 차라리 예전에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불확실한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쉽게 대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을 지지해주는 무수한 개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이다!"

비호감의 이유다. 아니 모든 인터넷상의 문제들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아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있고, 내가 비호감이라 하니 비호감이 된다.

작년 벌써 1주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타블로 사태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정작 스탠포드 출신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 게시판에서 스탠포트 졸업자 가운데 하나가 타진요의 주장에 넘어가 타블로의 학력위조 사실을 증명하려 직접 스탠포드에 알아봤다가 이내 학력위조만큼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 결론을 내린 것이 사태가 그렇게 확산되기 바로 직전이었었다. 하지만 스탠포드에도 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스탠포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타블로가 스탠포드에 다닌 적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만큼.

내가 직접 보았다. 내가 직접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했다. 내가 판단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그것이 사실이라 입증해 주었다. 그렇게 확고부동한 진실로 확신을 가지게 되면서 그를 위한 근거들이 여기저기에서 끼워맞춰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또 다시 10만에 달하는 타진요 회원들과 수많은 네티즌들이 지지로써 확인해 주었다. 타블로가 제시한 졸업장이나 성적증명서, 스탠포드 출신자들의 증언은 그에 비하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다. 내가 보았다. 내가 들었다. 내가 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했다. 주위에서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 사람은 비호감이다.

이유는 없다. 어떤 이유가 있기는 했겠지만 이미 비호감이 되고 나면 이유란 그다지 필요가 없다. 그때부터는 비호감이 이유를 만들어낸다. 이솝우화에 있지 않던가.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새끼양에게 늑대는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내가 지금 배가 고프거든?"

늑대의 이유란 단지 양을 잡아먹기 위한 명분쌓기일 뿐. 설사 그 이유들이 아무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배가 고픈 이상에는 결국 양을 잡아먹기 마련이다.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어딘가에 그 근거는 반드시 있다.

당장 최근 크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MBC의 수목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도 국민비호감이라 불리우는 구애정이 그랬었다. 자선경매로 운동화를 내놓았는데 누가 1천만원을 주고 낙찰받아갔다. 그러나 강세리의 한 마디를 계기로 자작극 루머가 퍼지기 시작한다. 스폰서에서부터 심지어 조카 구형규의 입에서 걸레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누구도 사실확인따위는 하지 않았다. 구애정은 그래야 하니까.

말했듯 차라리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은 사회라면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단지 일방적으로 보고 듣는 TV환경만 되었어도 단지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생각하고 판단한 결론이기에 이것은 자존심과도 결부된 문제가 되었다. 지기 싫어서라도 그는 비호감이어야 한다.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그는 비호감이 아니면 안 된다.

타블로의 경우도 학력위조의이 근거없다고 드러날 것 같자 어느새 표절에서 병역기피까지 쟁점이 확산되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타블로 자신은 물론 그 형과 그 아버지, 어먼, 누나까지. 아내인 강혜정씨까지. 원래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그들의 확신을 정당화시켜준다.

비호감의 시대일까? 아마 최근 일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 "한 방에 훅!"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어려워도 싫어하게 되기는 쉽다. 단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그것으로 비호감으로 전락하고 비호감이어야 하는 이유들이 만들어진다. 다시 일어날 수 없다. 10년째 국민비호감으로 3류 언저리를 전전하고 있는 구애정처럼. 설사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서 경연에서 1위를 했어도 옥주현은 여전히 비호감이어야 한다.

사실 논리도 뭣도 아니다. 근거도 뭣도 아니다. 결국은 믿음이다. 자기애일 테고 그에 대한 확신일 터다. 시작이야 단순한 감정적인 불편함이나 불쾌감이었을 테지만 정보의 바다는 그것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실로 만들어줄 근거와 논리들이 넘쳐난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도 너무나 쉽게 연결된다. 문제라면 그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유아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랄까?

멀리는 문희준이 있었다. 당시 도대체 문희준을 왜 욕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무뇌충이라 놀리며 조롱했다. 문보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고 군대까지 갔다 온 그에 대한 뻔뻔스런 칭찬이다. 그리고 불행한 선택을 한 고 최진실씨가 있었고, 그와 얽혀 정선희가 있고 타블로가 있었다. 지금은 옥주현이 그 타겟이 되고 있다. 아예 프로그램 하나를 온통 음모론으로 감싸면서까지.

설사 그 대상이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최진실이 불행한 선택을 했을 때도 그들은 언론과 다른 당사자들을 비난했었다. 얼마전 송지선씨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도 송지선씨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다른 먹잇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결국은 뭐냐면 무엇이 바보인가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적어서?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그보다는 단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을. 내가 들은 것을.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그것이 옳다고 말해주는 주위를. 이성이란 의심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의심해야 할 것이 바로 판단을 내리는 주체인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이성적이기도 쉽지 않다.

하여튼 그래서 악플러치고 인터넷상에 상주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크게 집착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온라인을 너무 맹신한다는 것. 인터넷에 대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 다름아닌 네티즌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네티즌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이다. 개별의 집합에 불과한 것을 단일한 유기체로 바꾸는 단어다. 그리고 그 수와 규모를 권위로 만들고 권력으로 변화시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들이 외우는 주문.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그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 생각하는 거야?"

수는 권위가 아님에도. 아무리 1+1은 4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고 실제 1+1이 4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권력의 세계에서는 때로 권력의 의지에 따라 사슴도 말이 될 수 있다. 비호감이 갖는 근본적인 뜻. 말이 되어 버린 사슴이다. 믿음은 말도 사슴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정보화의 폐해일 것이다. 정보는 결코 정의를 말해주지 않는다. 정의는 단지 자기로부터 판단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는 그것마저 객관화시켜 버린다.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한 확신도 쉽게 가지게 된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잠시의 고민을 가져 볼 팀조차 없이 그렇게 결론내어지고 확정된다. 결론이 있고 나면 얼마든지 끌어다 맞출 수 있다.

바보상자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법, 다른 것 없다. 의심하는 것이다. 바보의 바다로부터 바보가 되지 않고 자기를 지키는 방법,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바는 옳은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고 있는 바는 틀림없이 옳은가? 더욱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을. 그러나 인터넷이란 너무 쉽기에.

벌써 1주년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죽은 이도 있었다. 지금 새로운 타겟이 되어 공격받고 있는 사람도 있다. 물어본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러는가. 정보의 바다가 바보의 바다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스스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성은 의심하는 것이며 가장 먼저 의심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답일 것이다. 한 번 더 의심하고 확인하라.

더 이상의 불행한 일은 없기를 바라며. 원래는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고 나 역시 옥주현과 구애정에 대해 쓰고 싶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야기가 확장되며 묻어두었던 타블로의 이야기가 표면으로 끌어올려지게 되었다. 결국 같은 맥락이라는 뜻이리라.

비호감이라는 말. 그 말을 너무 쉽게 쓰는 사람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너무 자세히 너무 가까이 알게 되어 버린 정보화시대. 모든 것이 쉬운 시대에 모든 것은 또 쉽다. 사람마저 쉽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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