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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2 08:41

최고의 사랑 "와인과 고장난 심박계의 의미"

사랑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끼는 것이다!

 
필요했었다. 이제까지 독고진(차승원 분)의 구애정(공효진 분)에 대한 마음이란 독고진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심박계에 의해 표현되고 있었다. 독고진 자신의 내면의 외침이 아닌 심박계라고 하는 기계를 통해서 수치로써만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외적인 요인들에 구애되며 솔직해질 수 없는 독고진 자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당신은 나한테 들러붙을 때 제대로 나랑 붙을 생각이 있었어요?"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독고진을 구애정이 찾아갔을 때, 그러나 어느새 독고진에게 끌리게 되었다며 고백해 오는 구애정을 안고서도 독고진은 끝내 그녀를 문으로 밀쳐내고 만다. 물론 그 순간 구애정 역시 망설이고 있었다. 망설이는 구애정과 그런 그녀를 잡아끌려 하지 않는 독고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밀쳐지며 떨어지는 두 사람,

"저 사실 많이 설렜었어요. 독고진씨 만나고 내 맘에 벚꽃도 피고, 동백꽃도 피고, 진달래꽃도 피었거든요. 근데 꽃은 피면 언젠간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설레고 기뻤는데 손 내밀기가 두려웠어요. 겨우겨우 한발짝 다가갔는데 다행히 저절로 꽃이 먼저 떨어져 줬네요. 좋은 봄날 정말정말 예쁜 꽃구경 시켜줘서 고마워요."

결국은 이성이 두 사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톱스타로서의 자신과 그런 톱스타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모르는 국민비호감에 3류 연예인에 불과한 자신, 결구은 이것저것 따지고 재게 된다. 독고진도 그래서 항상 제멋대로에 일방적이면서도 주위의 눈을 신경쓰며 자기를 가리게 되고, 구애정은 아예 그런 독고진에게 다가가는 자체가 두렵다. 이대로 좋아해도 되는가? 이대로 서로를 사랑해도 되는가? 그것을 수치스러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그 이성이 바로 독고진의 심박계인 것이다. 그리고 심박계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사랑이 아니라 세뇌라고. 좋아한 것이 아니라 착각이었다고. 여전히 구애정을 의식하고 신경쓰면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납득시킨다. 소속사 사장인 문대표(최화정 분)을 앞에 두고 강세리와의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이대로 계속되었다면 여전히 두 사람 다 주위를 신경쓰느라 끝내 자기에게 솔직해지지 못했으리라. 비로소 오해를 하고서야 해장국을 함께 먹는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다. 솔직해지라고. 심박계 같은 기계가 아닌 자신의 심장소리를 직접 들어보라고. 심박계와 같은 기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손목을 잡고서 그 십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헤아려 보라고. 구애정에게 키스를 하고서도 심박계는 여전히 정상을 가리키고 있고 독고진의 심장은 독고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이 뛰고 있다. 사랑이란 바로 그 순간의 뛰는 심장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다. 솔직하게 헤아리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자신에게 벌을 내린다. 솔직하지 못한 자신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며, 그를 상처입히고, 그로 하여금 떠나가게 만든다.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 달려가봐야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구애정 역시 독고진의 심박계를 믿고 떠밀리듯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발을 내딛는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뺨에 와 닿는 독고진의 얼굴이 새겨진 음료수의 차가움과 윤필주가 배려한 한약의 따뜻함.

다만 여기에도 복선은 있다. 구애정은 와인을 다 마시지 않았다. 독고진이 구애정을 짝사랑한 수치스러운 그동안의 일들을 싹 다 정리하겠다며 그 모든 일들의 빌미가 되었던 피터 감독에게 보냈던 와인을 들고왔을 때, 구애정은 자신도 역시 모든 일들을 받아드이고 정리하겠다며 그것을 한 번에 들이켜 버리고 만다.

"나 이거 절대로 도로 안 토해요. 독고진하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가 다 먹어버리고 다 소화시켜서 똥으로 만들어 버릴 거에요."

독고진이 바라는대로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그동안의 모든 시간과 감정들을 와인과 함께 마셔 버리고 남김없이 배설해 버리겠다. 지우고 잊어버리겠다. 그래서 다음날 그리 담담하게 여상한 태도로 독고진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런데 정작 구애정은 와인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고 마지막에 한 모금을 남겨 버리고 말았다. 마시고 잊어 버리고 지워버려야 하는데 그 만큼이 남아 버렸다. 그녀로 하여금 윤필주에게 다가가려 할 때 머뭇거리게 만든 그 만큼이. 결국은 그 와인이 싹을 틔워 감자처럼 자라지 않을까.

물론 굴곡도 있을 것이다. 독고진과의 지난 시간과 감정들을 마시고 취해 버린 구애정 앞에 그제서야 독고진은 사실을 알고 진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독고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윤필주가 그녀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있었다. 독고진과 헤어지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독고진은 진실을 알고, 윤필주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몇 번이나 반복해 하는 말이지만 정말 작가(홍정은 극분)이 사물을 활용하는 능력은 기가 막히다.

그동안 구애정의 진심을 대신해주던 조카 구형규의 뽀로로 거짓말탐지기는 배터리가 다 되어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석은 마치 독고진과 구애정의 사이를 말해주려는 듯 서로 반발하며 밀쳐냈다가는 어느새 다시 달라붙게 된다. 와인은 독고진과 구애정 사이의 기억과 감정이며, 심박계는 독고진의 심장을 에워싸고 있는 이성적 타산과 판단이다.

최대의 위기다. 독고진의 착각으로 구애정은 떠밀려가고, 마지막 순간 키스에 대해서마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넋두리에 확인사살까지 당하며 돌아서고 만다. 그것은 차가운 음료수 대신 따뜻한 한약이었을 것이다. 한 번 쯤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술을 마시고 과연 음료수를 마셨을까? 한약을 마셨을까? 이제 윤필주의 손을 잡았으니 다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알게 된 자신의 진심에 독고진은 고통에 허덕이고. 믿을 것이라고는 채 다 마시지 못한 남은 와인 뿐일까?

아무튼 확실히 유인나(강세리 역)는 악역과는 안 어울린다. 어쩌면 이리 청순해 보이는가? 전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윤필주 앞에 남의 일처럼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전혀 독기라고는 없이 소녀처럼 순수하고 풋풋하기까지 하다. 윤필주의 작은 몸짓 작은 말 하나에도 마치 작은 새마냥 파드득거리며 반응하고.

"다른 사람 좋아하는 사람 눈앞에서 보는 거 얼마나 아픈데."
"의사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완전 돌팔이네요! 저런 돌팔이!"
"그래요. 진심이에요.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보고 있으면 자꾸 좋아져요."
"조금만 더 있어 주세요.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지니까 좀만 더 같이 있어 주라구."
"좀 전엔 당황했고 지금은 화나죠? 그 감정 꼭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세요. 나중에 설명하기 쉽게."

결국 구애정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설레어 하는 윤필주에게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있는대로 이야기하는데. 하필 또 그 장면이 독고진이 직접 자신의 손목에 손을 대고 맥박을 재는 장면과 교차해서 나오고 있다. 독고진이 자신의 심장에 직접 손을 대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녀 자신도 윤필주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애정언니랑 시작할 마음에 떨리면서 기쁘죠? 그런데 그거 그냥 보고 있기 싫어서 그냥 말해줘야겠네요. 아까 기억하라던 기분 지금 제 기분이에요. 나 윤필주씨 좋아하거거든요."

다만 그렇더라도 윤필주의 마음이 완전히 구애정에게로 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며 그만을 보고 있다. 당황하고 놀라고 기뻐하고 설레하고 행복해 하고. 하지만 악역을 맡기에는 유인나의 캐릭터가 너무 맑고 맑아서. 그리고 윤필주를 만나러 간 한의원에서 그녀의 죄악이라 할 수 있는 한민아(배슬기)를 만나게 되었다. 단지 어린아이처럼 철이 없이 이기를 추구할 뿐 그녀는 악하지도 독하지도 않다. 그렇지 않을까?

정말 제대로 몰입하며 보았다. 전혀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구애정에 대한 마음을 자신에 속이지 못하는 독고진과 이미 예상한 일이기에 담담히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려는 상처입은 구애정, 힘겨운 짝사랑에 순수한 표정을 되찾은 유인나와 그럼에도 한결같은 윤필주. 그 얽히는 감정들이. 그리고 점차 치열하게 첨예하게 드러나는 진심들이. 더구나 작가가 써내려가고 감독이 연출하는 텔링은 그같은 감정의 선을 섬세하게 잡힐 듯 들려준다. 귀에 대고 누군가 속삭이듯 아련하면서도 분명하다.

과연 독고진은 어떻게 구애정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이미 내밀어 버린 손을 구애정은 어떻게 거둘 수 있을까? 윤필주를 향한 강세리의 마음이 결국은 구애정에게로 돌아가게 될 텐데, 아마도 그것이 한민아를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게 되지 않을까. 두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나쁜 여자 제니(이희진 분)의 삼간관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꼬이고 얽히며 해야 할 이야기도 들어야 할 이야기도 늘어 버렸다. 마치 헤어나지 못할 수렁과도 같이 증식해간다. 재미있다.

이승기의 카메오 출연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독고진과 쌍동이를 보는 듯한. 원래 독고진의 캐릭터가 이승기에게로 갔던 배역이었다는데. 확실히 10년 전 심장수술이면 40대인 독고진에게는 약간 안 어울리는 게 있다. 이승기였더고 꽤 재미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독고진이란 차승원이 아닌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니. 차승원은 정말 대단한 배우다. 항상 감탄하며 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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