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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2 07:26

시티헌터 "심심하고 밋밋한 시티헌터"

시티헌터가 빛의 세계로 가 버렸다!

 
결국 공중파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해결사라는 것을 한국사회와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공중파로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기란 힘들 것이다. 그런 것은 청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화나 책이 어울린다.

시티헌터라? 신출귀몰이라? 하지만 정작 시티헌터 이윤성(이민호 분)이 한 일이란 그다지 없다. 딱 한 회 분량이다. 원수인 5인회의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인 국회의원 이경완(이효정 분)을 몰락시키는데 걸린 시간이다. 우연찮게 구청에 들러 관련 자료를 훔쳐내고, 다시 공무원을 습격해 그로부터 자료를 빼앗고, 그러고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직접 찾아가 자백을 유도한다. 그리고는 천재만(최정우 분)이 보낸 하수인으로부터 이경완을 구해 그를 박스에 담아 검찰청 김영주(이준혁 분)에게로.

사실상 시티헌터로서의 실력이 드러난 부분이란 거의 없었다. 구청에서 서류를 훔쳐낼 때나, 공무원을 공격해 자료를 빼앗을 때나, 이경완의 출판기념회에서 그를 제압하려는 이경완의 하수인들과 주방에서 싸울 때나, 혹은 이경완을 구하려 천재만의 하수인과 싸워야 했을 때, 하지만 과연 굳이 그가 시티헌터여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도둑이어도 좋고 어디 동네 건달이어도 좋다. 차라리 그랬다면 긴장감이나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검찰이 개입한 때문이다. 이경완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이윤성이 고민할 부분은 그다지 없다. 죽여야 하는가? 살려야 하는가? 죽인다면 어떻게? 그를 단죄한다면 어떻게? 이경완의 측근이나 이경완 자신과 고도의 머리싸움을 하며 죽음을 넘나드는 활극을 펼치고. 하지만 그 부분은 모두 검사 김영주가 맡는다. 법의 이름 아래에서.

원작 시티헌터가 재미있었던 것은 시티헌터라는 자체가 사회의 규범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시티헌터 사에바 료 자체가 바로 그러한 사회일반의 가치를 배반하는 인물이었다. 오로지 본능과 욕망에만 충실하며 5초 이상은 진지해지지 못하는 경박함과 천박함은 이제까지 소년만화의 주인공으로서는 없었던 캐릭터였다. 보편의 상식에서 벗어난 사에바 료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일들을 불법적인 수단으로 해결해준다. 바로 그러한 배덕의 짜릿함이 시티헌터의 매력인 것이다.

시티헌터의 직업이 청부업자이고 그가 머무는 것이 도시의 그늘진 구석인 것이 그래서다. 그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회보편의 규범이 그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생긴다. 빛의 세계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어둠 속에서 잿빛의 이방인이 해결해낸다. 빛의 세계가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어둠의 세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습함과 살벌함이, 그 끈적거리는 악의와 탐욕이 서로 부딪히는 모습들이.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빛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잔인하고 음험하며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들이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어두운 그늘이며 또한 밝음을 추구하려는 본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밝음을 온전히 검찰에게 맡겨 버렸으니. 아니 밝음을 검찰에 맡겨 버리는 순간 시티헌터 자신도 더 이상 그늘 속에 머물 수는 없게 되었다. 사건을 해결하고도 오히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원작에서의 사에바 료에 비해 드라마 <시티헌터>의 주인공 이윤성이 어느새 스타가 되어 버린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물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공중파인데 불법을 다루겠는가? 보편의 규범을 지키지 않는 폭력과 모략을 다루겠는가?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악당들의 몫이다. 주인공인 이윤성은 한없이 밝아야 한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어도 그는 빛의 세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가 굳이 복수를 검찰인 김영주의 손을 빌어 하려는 이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진표(김상중 분)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윤성이 하지 못하는 어두운 부분을 대신하기 위해서. 이윤성이 배워야 했던 살인기술의 존재를 내보이기 위해서. 이진표야 말로 이윤성의 또 한 부분일 것이다. 원래는 그가 했어야 했던 역할을.

아무튼 실망이다. 전에도 말했듯 원작 <시티헌터>의 매력은 다름아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데에 있었다. 잿빛 어둠과 화사한 원색의 유쾌함이 항상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불법을 행하지만 그것은 정의를 위한 것이다. 항상 주변부에 그늘에 머물고 있지만 그것은 보편이고 빛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온전히 어둠은 배제한 채 빛만 남겨놓고 있으니.

아마 그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윤성이 살고 있는 집일 것이다. 너무 밝다. 너무 화려하다. 주변이고 그늘져 있었던 사에바 료의 아파트에 비해 너무 크고 밝다. 그가 머무는 공간이다. 드라마 안에서 그가 머무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박민영에서 더 끈적거리는 짙은 어둠이 느껴질 정도로. 원래는 반대 아니었을까?

그는 결코 어둠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다. 그늘이 어울리는 인간도 아니다. 주변이나 변두리에 소외되어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빛의 인간이며 볕의 인간이고 보편의 인간이다. 그저 돈 많고 할 줄 아는 것 많은 남자의 영웅이야기? <시티헌터>보다는 <배트맨>이 지금의 그에게는 - 아니 배트맨에게조차 그늘진 어둠이 있었다. 그는 어느 것도 아니다.

복수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편적인 정의를 위한 것도 아니고, 아마 그 동기가 모호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복수라기에는 증오가 부족하고, 정의라기에는 분노가 부족하다. 그저 김나나(박민영 분)와 아는 사이인 아이들에 대한 동정? 아마 그것도 이경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였을 것이다. 증오는 깊지 못하고 분노는 넓지 못하다. 당연히 그 동기 만큼이나 행동도 좁고 얕다. 볕 잘 드는 개울물같다.

물론 이제 겨우 시작이다. 겨우 국회의원 하나다. 아직 재벌회장에 국방부장관에 심지어 대통령까지 있다. 북파공작원을 저격하던 그 요원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다. 이진표까지 개입하고 나면 - 아니 그래서 이진표의 존재가 거슬린다는 것이다. 그는 이윤성의 그림자와도 같다. 이진표가 개입함으로써 이윤성은 영영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진표가 어둠을 차지하는 만큼 그는 빛으로 나와 어둠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쾌한 가운데서도 느껴지는 치열함과 처절함, 살벌함과 같은 것은 역시 무리일까?

겨우 배역에 익숙해진 듯 이민호나 박민영이나 상당히 연기가 안정되었다. 구하라(최다혜 분) 역시 연기하려 노력하는 것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고. 이준혁은 조금 더 길게 구체적으로 나와봐야 알겠다. 천호진이며 김상중이며 중견연기자의 연기야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김미숙은 참 아름답게 나이를 먹었다. 배우들은 참 괜찮은데, 역시 대본과 연출의 문제일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 과연 공중파에서 시티헌터라는 소재가 제대로 소화되어 구현될 수 있겠는가? 시티헌터가 갖는 반문화적이고 반문명적인 주변과 일탈의 코드를 제대로 소화하여 보여줄 수 있겠는가?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기왕에 이렇게 된 것 밝은 분위기로 밀어붙여 볼까? 하지만 그럴 것이라면 굳이 시티헌터라는 제목을 돈까지 줘가며 사다가 써야 했는가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시티헌터여야만 했는가. 배경도, 설정도, 인물도, 내용도 이렇게나 서로 다른데. 설득이 필요하다. 단지 제목만 가져다 쓰는 정도라도 원작을 아는 팬이 존재하는 한 그들을 납득시키는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태생적 한계가 될 수 있다. 벌써부터 그에 대한 비판들이 적지 않다. 아직도 필자는 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더욱 분발과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내내 무척 심심했었다. 어두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밝은 분위기인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 여상하기까지 하다. 다른 말로 밋밋함? 격정도 열정도 흥분도 전율도 그 무엇도 없는 심심함. 그래도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아쉬움이 많다. 실망스러웠다. 단지 한 가닥 기대만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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