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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8.01.28 13:00

[권상집 칼럼] 정현이 만들어낸 투혼의 4강 신화

지속적인 격려와 지원으로 또 다른 기적 만들어내야

▲ 정현 (요넥스코리아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정현의 쾌속 질주가 끝내 4강에서 멈췄다. 상대는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고 있는 로저 페더러. 지난해만 해도 페더러와 대한민국 선수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그것도 4강에서 겨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일본은 체계적인 선수 육성과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통해 유럽 또는 미국의 테니스 아성에 줄곧 도전장을 냈지만 역부족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반면, 국내의 경우 테니스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스폰서 조차 드문 상황에서 정현이 만들어낸 4강 신화는 분명 되새겨야 할 시사점이 크다.

정현의 승리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오로지 실력 그 자체로 아시아 선수들에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메이저 대회 4강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금수저, 핵수저 등 소위 ‘빽’ 없으면 성공하기도 어렵고 돈을 벌기도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20대 초반의 테니스 선수 정현의 승리는 분명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필자 역시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땀 흘린 과정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했지만 우리 사회에 믿을만한 본보기나 사례가 부족하여 학생들에게 그 믿음을 유지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트코인으로 수천 만원을 벌었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이뿐인가. 특권의식을 바탕으로 박사과정에 부정입학을 시도한 가수 정용화의 이야기는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한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더욱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있어서 묵묵히 수많은 땀을 흘린 여자 선수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젊은이들의 분노는 더욱 높아져 갔다. “메달 가능성이 없으니 단일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총리의 언급은 정치인들이 외치는 공정함, 정의가 얼마나 허울 좋은 이야기인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1월 초부터 우울한 소식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호주오픈에서 거둔 정현의 연승 소식은 분명 “땀 흘린 사람이 결실을 맺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수많은 톱 랭커들과 겨루면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승부하는 그의 모습에서 대중은 진정한 프로의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진통제를 맞아가면서까지 승부에 나서는 그의 모습은 투혼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혹자는 기권 패에 아쉬움을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정현은 20대 초반이다. 지금은 부담보다 격려가 더 필요하다.

다만, 정현의 승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지원과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정치인들이 지금 와서 정현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건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현의 단단한 멘탈을 배워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견딘 정현 선수처럼 국민의 진심을 믿고 정진하겠다”, “실패한 모든 사항을 정현 선수처럼 원점에서 검토하며 반성하겠다”는 메시지는 우리가 듣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다. 정작 테니스 선수 정현이 듣고 싶은 사항은 ‘국가 차원의 지원과 육성 방안’일 것이다. 4강 신화가 마케팅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현 선수 이전에 신드롬을 일으킨 스포츠 선수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 놓은 히딩크 감독,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 선수와 김연아 선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보다 유소년 시스템의 활성화, 해당 종목의 인프라 구축,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등을 한 목소리로 호소했지만 언제나 정치권과 언론은 이들을 마케팅 및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을 뿐 해당 종목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히딩크, 박태환,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의 축구, 수영, 피겨 스케이트 종목이 제 자리로 돌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현 선수가 신드롬까지 일으킨 이유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소위 ‘불공정의 일상화’와 관련되어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로 많은 이들이 공정성, 형평성을 염원해왔고 각계 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공정함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그들의 주장은 매번 공염불(空念佛)에 그쳤다. 가수 정용화의 특권의식, 아이돌 392명이 특정 대학에 재학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다. 블라인드 채용이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권과 일반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채용 비리 특혜 시비는 더 많은 젊은이들의 분노를 지금도 유발하고 있다.

호주오픈을 마친 정현 선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고난 자질보다는 꾸준한 노력으로 오늘의 결과를 얻었다”고 얘기하며 천재형이 아니었기에 더욱 많은 시간을 부단히 연습에 쏟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대중에게 전달해주었다. 그의 투혼과 프로의식이 만들어낸 4강 신화를 대한민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또 다시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묵묵히 실력을 갈고 닦는 이들에게 체계적인 지원과 격려를 해주면 성실한 땀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또 다른 정현처럼 우리 사회에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공정성을 실현하겠다고 주장하는 오피니언 리더 더 나아가 국가가 해야 할 도리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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