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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0.27 11:20

위대한 탄생3 "음악의 행복과 사연의 감동, 그리고 냉정한 심사위원..."

식상한 대중을 위한 고려와 배려가 숙제로 주어지다.

▲ 사진제공=M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음악이란 기쁨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많은 음악이 슬픔으로부터 비롯된다. 음악의 위대함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기쁨을 더 큰 기쁨으로 바꾼다.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이 즐거울 락(樂) 하나로 수렴된다. 슬퍼서도 즐겁고 화가 나서도 즐거우며 기뻐서 더 즐겁고 즐거워서 더 즐겁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사람은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사연있는 출연자가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들만을 편집해서 방송에 내보내기도 한다. 노래가 슬프면 슬퍼서, 노래가 즐거우면 또 즐거워서, 그들 자신이 음악을 통해 위안을 얻고 행복을 찾았듯이 시청자 역시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시키며 공감하게 된다. 단지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와 낙천이 음악과 더불어 보는 이들에게도 힘을 준다.

다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 항상 비교하는 바이지만 <전국노래자랑> 정도라면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고, 무언가 더 대단한 특별한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가자 가운데 경연을 통해 우승을 하고 소정의 상품과 상금을 받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위대한 탄생>는, <슈퍼스타K>를 비롯한 거의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은 프로데뷔를 가장 우선적 목표로 둔다. <위대한 탄생>은 더구나 앞에 붙는 수식이 '스타오디션'이다. 가슴아픈 사연이 당장은 화제가 될 수 있어도 멀리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의외의 냉정함이다. 어머니가 아직 어린 아기일 때 집을 나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서지은 참가자의 사연에 같은 김소현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따뜻한 멘토링으로 화제를 모았던 심사위원 김태원은 그녀의 기본기를 한 마디로 지적하며 'Sorry'를 주고 만다. 자기의 팬이라며 눈물까지 글썽이던 추상길 참가자에게도 가혹할 정도로 냉정한 평가와 함께 'Sorry'를 주고 말았다. 하기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시즌1에서도 김태원은 음악인으로서 간혹 냉혹하기까지 한 판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차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관심을 불러모으더라도 결국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아주 운이 좋다면 화제성에 기대어 데뷔하고 반짝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대중의 호감에 기대어 나름대로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뿐. 대중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항상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떠도는 약탈자의 속성을 갖는다. 흥미가 다하면 잊혀지고, 새로운 대상을 찾으면 그리로 시건을 돌린다. 반짝스타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당장의 동정심에, 연민에, 오히려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면. 괜한 기대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지 모른다. 보다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도 좋다. 음악이란 것이 반드시 프로가 되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프로가 되고자 한다면 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타고나야 한다. 타고나지 못했다면 그것을 대신할 무엇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기대는 차라리 절망보다 더 해롭다. 어설프게 데뷔해서는 자신만 상처입을 뿐이다.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김태원쯤 되면 제대로 된 각오도 다짐도 없이 섣부르게 데뷔했다가 망가지고 사라진 이들을 적잖이 보아왔을 것이다. 시즌1에서의 교훈도 있다. <위대한 탄생>의 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그래서 음원을 출시해 프로로서 데뷔하고, 그러나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은 그 다음의 과정이다. <위대한 탄생> 시즌1과 시즌2의 참가자들 가운데 프로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그저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소재일 뿐, 실력이 없다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가차없이 떨구어야 한다.

감탄할 때는 감탄한다. 감동할 때는 감동한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감탄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몇 배는 더 감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냉정해진다. 선을 분명히 한다. 어설픈 것은 없다. 한 가지라도 장점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김태원의 오글거릴 정도의 오버한 멘트와 더없이 차가운 냉정한 평가는 그래서 한 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더 감탄한다. 그는 진정 음악인이며 음악과 인간을 사랑하는구나.

아직까지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착한 멘토 김태원과 독한 멘토 용감한 형제, 의도적으로 그들의 대립구도를 제작진 차원에서 조장하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들도록 연출하고, 김태원과 용감한 형제 자신도 의식적으로 그같은 행동들을 보인다. 시즌1에서도 김태원과 이은미 등의 대립구도가 상당한 화제를 불러모으며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도식적이랄까?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것이 흥미를 반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김태원은 그다지 착한 멘토랄 수 없다.

외모를 지적하고, 스타일을 지적하고 - 이 부분에서도 역시 김태원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시즌1에서 바로 방시혁이 참가자의 스타일을 지적했다가 외모지상주의자로 온갖 비난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태원은 그것을 장난스럽게 호의로 넘어가고 만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사람의 인상에 대한 판단에 있어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다. 늘 보던 오디션이다. 그것이 문제다. 너무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다. <위대한 탄생>과 다른 오디션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멘토제가 다른 프로그램과 <위대한 탄생>을 구분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멘토가 부각됨으로써 참가자가 작아지는 부작용마저 드러내보이고 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전국노래자랑>만 하더라도 프로수준의 참가자들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하면 대중의 식상함을 불식시킬 것인가. <위대한 탄생>, 아니 다른 오디션프로그램들도 긴장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참가자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고작 한 번의 무대로 판단하기에는 음악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불특정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음악이란 더 많은 고려를 필요로 한다. 예선과 본선이 다르다. 생방송무대가 다르다. 역시 그 위화감을 어떻게 드라마로 승화시키는가 하는 것도 <위대한 탄생>이 풀여야 할 과제다. 아직은 지켜본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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