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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23 07:18

나는 가수다 "어느샌가 느껴지는 획일화의 우려에 대해서..."

<나는 가수다> 스타일을 경계한다!

 
문득 그런 심술궂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BMK의 "아름다운 강산" 무대를 보면서,

"만일 신중현이나 김정미의 원곡으로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섰다면 어떤 평가를 들었을까?"

사실 필자의 경우 이선희가 리메이크한 "아름다운 강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너무 밝다. 그리고 힘차다. 원곡은 그보다는 보다 끈끈하고 우울한 무언가가 있다.

BMK의 무대를 보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그것이다. 소울의 대가 답게 BMK가 리메이크한 "아름다운 강산"에서도 흑인음악 특유의 끈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다만 하이라이트에서 터뜨릴 때는 역시 이선희의 영향이 더 크지 않았을까?

비유하자면 그런 것이다. 술을 진탕 마시고 불콰해져서는 한강 둔치에라도 가서 게워내듯 털어놓는 이야기가 신중현의 원곡이라면, 이선희의 행진곡풍의 락이란 어디 강당이라도 빌려서 청중 앞에서 정장까지 차려입고 결연한 의지로 외쳐 부르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같은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선희의 리메이크에만 존재하는 후련을 가득 채우는 팡파레 "빰빠빰". 원래는 80년 뮤직파워 버전에서 브라스로 채워넣던 소리를 이선희가 직접 입으로 대신해 내게 된 것이다. 곡 전체를 촘촘히 밴드 사운드로 가득 채워넣은 신중현의 사이케델릭하고 아트록에 닿아 있는 원곡에 비해 한결 간결하게 신디사이저의 전자음 하나로 채워 넣은 리메이크 버전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대신 <나는 가수다> 무대에 세우자면 브라스까지 포함된 대형밴드를 무대에 올려 연주를 듣게 해야 할 것다. 무려 최대 12분이나 되는 시간을.

역시 BMK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이 이선희의 리메이크버전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원곡의 블루스에 가까운 사이케델릭함보다는 이선희의 한결 밝고 희망찬 행진곡풍의 락이 대중에 보다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BMK의 그 폭발적인 성량으로 신중현의 버전을 소화해내기란 2주라는 시간으로는 무리가 있었을 테니.

김연우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했다고 여겨지는 이소라의 "사랑이야"가 고작 6위에 머물고 마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첫무대가 다음 무대에 의해 가려져 버린다던가? 나중에는 다시 무대에 올라도 모를 정도로 잊혀졌으리라.

이소라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점점 더 노래를 세게 부르는 것에 귀가 지쳐가는 것 같더라구요, 제 자신이."

바로 지난주 임재범이 중간평가에서 그 전에 <나는 가수다>가 시작되고 2기 멤버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에서 각자 자기 노래를 불렀을 때 김연우만이 유일하게 노래를 불렀다 하는 부분과 통하는 것이다. 노래만 생각하겠다. 오로지 노래 자체에만 충실해 부르겠다. 아무런 기교 없이. 힘을 빼고. 그리고 그렇게 들린 노랫소리는 한결 편안하고 노래가 갖는 느낌을 최대한 전달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6위. 지난번 경연에서 6위에 오르며 이번주 탈락이 유력시되던 김연우의 이번주 경연무대는 그래서 더욱 김연우답지 않은 것이었다. 최대한 절제하며 노래 자체에 충실하던 김연우가 자신의 가창력을 과시하며 대중에 기교를 보이려 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김연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무대를 업그레이드된 것이라 일컫는 평가를 뒤로 하고 종합점수 7위로 탈락.

박정현의 경우는 그녀의 새로운 시도 자체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었다. 긴장해서 소리를 놓쳤고, 편곡은 약간 박정현의 목소리와 따로 놀고 있었다. 한 데 어우러지지 못한 어딘가 어색한 무대였다. 지난 경연에서 1위를 했기에 그것을 믿고 모험을 한 것이었는데, 그러나 결과는 7위. 박정현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소라, 김연우, 힘을 빼고 노래 자체에 충실하는 보컬들이 하나같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김범수의 "늪"은 김범수의 고음과 가창력을 확실히 각인시키고는 있었지만 원곡의 애잔함과 아련함을 재현하는데는 실패하고 있었다. 진성으로도 이렇게 훌륭하게 고음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늪"이라는 노래가 갖는 매력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를 사랑한 남자의 애닲도록 슬픈 자기고백인 것이다. 고음에서도 그 감정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고음 뿐이었다. 물론 훌륭했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임재범이 괴물임을 느낀다. 노래를 했다고 했다. 실제 노래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 자체가 퍼포먼스다. 다양한 톤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어 사용하며 노래가 갖는 감성과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직구로 던지는데 듣는 사람을 그대로 함락시키고 있었다.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임재범에게 노래를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윤도현이 절대 경연에서 떨어질 리 없다는 이유일 것이다. 록밴드는 특성상 라이브에 강하다. 라이브의 현장에 강한 특징을 갖는다. 현장분위기에 맞춰 즉석에서 편곡도 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 여긴다. 목감기로 정상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도 관객과 소통하며 한 바탕 즐겁게 놀고 있는 YB를 보라. 윤도현 자신의 엄살과는 달리 YB의 현장감은 <나는 가수다>에 최적화된 것이었다.

다름아닌 대중에 의한 폭력성.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사실 무대를 즐기는 것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신중현이나 김정미 타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이번 무대에서 이소라가 부른 감상하기 좋은 노래를 더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김연우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음반에서와 같은 - 그보다더 훌륭한 가수의 생목소리를 즐긴다. 이번에 새로운 멤버로 거론되고 있는 조관우도 그 비슷한 경우다. 조관우의 무대도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대한 평가를 주도하는 것은 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즐기는 대중들일 테니까.

이소라의 힘을 뺀 담백함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테고, 김연우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사랑한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러나 수의 논리에 의해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한 무대를 다음에도 또 볼 수 있닌 기회를 박탈당한다. 아니 김연우가 그러하듯 가수들도 그에 맞춰 나간다.

가장 잘 적응한 가수가 바로 김범수다. 김범수가 이런 캐릭터의 가수인가는 처음 알았다. 이제껏 꼭꼭 감춰두었던 끼를 드러내며 이제는 아예 <나는 가수다>의 마스코트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도대체 다음에는 어떤 의상과 어떤 컨셉으로 관객을 즐겁게 할 것인가. 노래도 훌륭한데.

가수를 줄세우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곱 명의 가수를 한 데 모아놓고 듣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의 가수들을. 서로 다른 타입의 가수들을. 그리고 그런 가운데 보다 다수의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공연을 잘 하는 가수일 것이다. 기교도 화려하고 퍼포먼스도 볼 것이 많은. 듣는 이를 감탄케 만드는. 그렇지 못한 가수는 당연히 묻힐 테고.

그래서 이번주에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앞의 노래가 잊혀진다. 앞의 노래가 가려져 묻힌다. 혹은 뒤의 무대가 앞의 무대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보다 다수의 대중에 의해. 다수의 대중에 의해 수의 논리가 소수를 밀어낸다. 등수로써. 그리고 그와 함께 그러한 다수의 의견은 가수들을 압박한다. 다수의 의견을 쫓아 그에 만족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라. 그렇지 않으면 낮은 점수를 받고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려나면 당연히 그 음악은 듣지 못한다.

아마 조관우는 물론 신승훈이나 성시경 같은 발라드 가수들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 아닐까. 아니 새로운 도전이라는 미명 아래 그들에게 이제까지의 스타일을 버릴 것을 강요할 지 모른다. 김연우가 그러하듯. 아니면 완전히 도태되어 사라지거나. 도태가 아니라지만 그와 같은 타입의 무대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도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는 가수다> 스타일의 획일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번의 경연을 통한 합산으로써 퇴출을 결정한다는 것.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지난 경연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박정현과 이소라의 경우 등수를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다. 대신 지난 경연에서 상당히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던 김연우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대로 떨어졌지만. <나는 가수다>에 어울리게.

과연 <나는 가수다>는 아이돌 일색인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다양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나 그 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지는 않을까. 벌써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나는 가수다>의 새로운 가수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중의 폭력성이다. 과연 <나는 가수다>에 어울리는 가수인가? 무대에 서기도 전에 단정하고 단죄하고.

그래서 정말 다행인 것이 <나는 가수다>는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 둘만 되었어도. 설마 이토록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무대를 여럿씩이나 방송국에서 만들려 할까? 하나니까 의미도 큰 것이지 여럿이면 가치도 바랜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음원이 아예 음원사이트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가수다> 스타일의 영향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양성일까? 또 다른 획일화일까?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인한 변화를.

물론 가정이다. 그것도 최악의 가정이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은 당장 보이는 모습이 그다지 보기에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모두가 동의해 버렸다. <나는 가수다>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한다. 어떻게 불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납득해 버리고. 그리고 남은 무대들을 일컬어 최고의 무대라 찬양하고. 신이 되기도 한다.

비판하는 단 한 가지 이유, 경계를 삼고자. 무대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대한민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다. 최고의 가수와 작곡자와 연주자들이다. 그들이 만드는 무대에 대해 무어라 토를 달겠는가? 그리 무도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로 인해 생겨날 만일의 부작용에 대해서.

가치는 다수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다수가 정할 때, 그것이 당연해질 때, 그것은 획일화가 되고 다수에 대한 폭력이 된다. 아니라 해도 그렇게 되기 쉽다. 그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소수일 수밖에 없는 그러나 훌륭한 음악인들을 위해서도.

여전히 감동이었다. 그러나 김연우의 어색한 변신과 탈락은 듣고 난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소라의 너무나 아름다웠던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느샌가 보이기 시작한 패턴과 법칙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것이 그다지 건강에는 좋지 못하겠지만. 온전히 즐기기만 할 수는 없는 이유다.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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