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22 07:54

내사랑 내곁에 "항상 말은 너무나 쉽다!"

지루할 정도로 쉽지 않은 중대한 결정에 대해...

 
도미솔의 담임 최은희(김미경 분)이 집에 돌아와 도미솔(이소연 분)의 임신사실을 이야기하자 최은희의 남편 이만수(김명국 분)와 시어머니 사라정(사미자 분)의 입장이 바로 갈린다.

사라정은 얼른 부모에게 알려서 해결을 보게 하라. 이만수는 어떻게 뱃속에 자라고 있는 아이를 해결을 볼 수 있는가. 결국에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어린 엄마의 인생이 우선인가? 아니면 뱃속에 자라고 있을 태어나지 못한 생명이 우선인가?

"남자들은 말야 저들이 애 안 낳는다고 그냥 생각없이 말을 툭툭 내뱉는 걸 보면 내가 열통이 터져요, 열통이!"

그토록 살갑던 모자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벽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남자와 자기의 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여자. 그러고 보면 드라마에서도 정작 도미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이 아이를 지울 것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겠느냐며. 심지어 아들 고석빈(온주완 분)을 위해 도미솔을 몰아세우는 엄마 배정자(이휘향 분)마저 도미솔의 앞날을 걱정하던 그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비록 아들을 위한 마음이 더 크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일 테니까. 친엄마인데도 정작 그 사실을 알리기가 그리 두려운 현실. 엄마에게 알려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도미솔은 절규하며 공포에 몸을 떤다.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임신한 것에 대해 엄마 봉선아(김미숙 분)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그래서 죽은 선아(이혜숙 분)의 엄마 강여사(정혜선 분)도 딸을 위해 낳은 자식을 버리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저 낳는다고 끝이 아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경제력이 필요하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했어도 대학도 나오지 못한 여성에게 돌아올 수 있는 일자리란 한 아이를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것들이기 쉽다. 더구나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편견은 어찌 하는가?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보다도 더 잔인하다. 그래서 결국 낳아서 버리고. 혹은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고.

그러고 보면 바로 어제오늘 이종락이라는 목사가 만들어 운용하던 '베이비박스'가 이슈가 되고 있었다. 기왕에 아이를 버릴 것이면 안전하게 이곳에 넣어 달라. 그러면 책임지고 이 아이를 보살피겠다. 그러자 그것이 아이를 버리는 것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과연 베이비박스가 없다고 아이를 버리지 않겠는가? 그리고 버릴 것을 고민해야 할 정도라면 그 아이가 자라는 환경은 어떻겠는가?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 부모는 어떻고?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토론. 그리 깊지도 않다. 그래서 오히려 진실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렇다. 별다른 깊은 고민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이,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생각들이. 생명인가? 아니면 아이 엄마의 삶인가? 그 어떤 것도 결코 그렇게 가벼울 수 없음에도.

바로 그것이 이 드라마의 가치다. 솔직히 재미없다.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는 한 2회쯤 고석빈이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줄 알았다. 3회찜에는 고석빈이 귀국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최소한 3회나 4회에서는 어떻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이를 낳네 마네, 아니 그조차도 없이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문제니까.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주위의 반응들도 너무나 리얼하다. 듣자마자 바로 부정부터 해 버리는 도미솔의 엄마 봉선아와, 아들을 위해 도미솔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하는 고석빈의 엄마 배정자, 그리고 당사자지만 타자가 되어 책임으로부터 도피해 버리는 아이아빠 고석빈, 그리고 담임선생이나 그 가족의 반응들도. 느리지만 바로 이것이 현실일 터다. 바로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비로소 결론은 내려지는 것일 게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그래서 문제다. 드라마는 결론을 내려버리면 안 된다. 먼저 판단해 버리면 안 된다. 시청자로 하여금 판단케 해야 한다.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모으는 것도 판단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비판이든 비난이든 조롱이든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를 준다. 그에 비해 너무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시청자는 드라마로부터 결론을 강요당한다. 아무것도 결론으로 제시한 것은 없지만 마치 묵직한 압력처럼 그 디테일한 사실들이 시청자들에 다가온다. 항상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다. 도대체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려는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도미솔이 아이를 낳고 시간이 흘러 시놉시스대로 결혼도 하고 야심가가 돌아온 고석빈과 관계가 얽히면서 시청율도 어느 정도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애증과 미련이 얽히고, 사랑과 동정이 엇갈리며, 서로 얽히고 섥히며 갈등하고 다투는 과정에서. 그것이 드라마일 테니까. 누가 나쁘고, 누가 옳고.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배정자조차도 한 아이의 엄마로써 현실에서 그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고석빈을 비난할까?

주제의식도 훌륭하고 그 서술방식도 훌륭하지만 드라마로서는 상당히 미달인 작품이랄까? 하지만 그 미숙함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는 것이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을 주변의 이야기인 때문일 것이다. 잔잔히 내 이야기처럼 지켜 볼 수 있는.

마치 물처럼 담백한 드라마일 것이다. 콜라처럼 톡 쏘지도 않고, 주스처럼 시큼하지도 않지만, 우유처럼 고소하지도 않다. 아무 맛도 없이 그대로 몸으로 스미는. 물를 마신다고 하는 자체마저 너무나 당연하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 볼 만한 재미는 없다.

아쉬운 것이다. 그 내용이 좋기에 드라마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러나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과감하게 내보이고 있다는 것도. 작가가 분명 여성일 테지. 여성이 쓰는 여성의 이야기. 여성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 남자는 어쩌면 불편해서 보기 힘들. 아마 그래서도 시청율이 낮을까?

오늘 6회도 그래서 또 한참을 힘들 것 같다. 봉선아와 도미솔의 갈등이. 딸을 위해 딸로 하여금 생명을 버리도록 강요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이. 그런 엄마와 싸우며 자신이 잉태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또 한 엄마의 노력이. 그 아픈 희생과 사랑과 노력들이. 참 아픈 드라마다. 아프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