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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7.07.01 17:44

[권상집 칼럼] 옥자와 지드래곤, 콘텐츠 플랫폼의 패러다임 전환

영화 옥자와 지드래곤의 USB, 콘텐츠 플랫폼 경쟁의 신호탄

▲ 영화 '옥자' 봉준호 감독과 티저포스터 컷 (넷플릭스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올해 상반기 가장 언론에 많이 오르내린 키워드는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해당 개념에 대한 학문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지금도 4차 산업혁명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은 학계와 재계에서 여전히 뜨겁다. 4차 산업혁명을 표현하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이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로 아직 고객에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첨단 산업과 깊은 연관성이 없을 것 같던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4차 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최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영화 ‘옥자’와 지드래곤 새 앨범의 유통 방식 변화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전략경영 분야에서 최고의 화두는 ‘플랫폼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있다. 또한 산업의 패러다임이나 틀을 깨는 혁신가들은 언제나 기존의 플랫폼을 파괴적으로 깨뜨리고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했다는 점이 기업경영 분야 학자 또는 CEO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 ‘옥자’와 지드래곤의 ‘USB’ 음반은 문화콘텐츠 분야의 핵심 양대 축인 영화 산업과 음악 산업의 유통 방식을 완전히 뒤흔드는 대표적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몇 달간 모든 언론이 두 사례에 관해 찬반 기사를 쏟아낸 점도 해당 사례를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혁신 또는 시장 생태계 교란 중 어느 것으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 ‘옥자’가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온라인 플랫폼과 영화관 동시 상영을 결정하자마자 곧바로 국내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은 ‘옥자’ 상영을 강력히 거부했다. 영화 산업은 토머스 에디슨이 필름을 통해 내부에서 빛이 투사되는 영사기를 선보인 1893년 이후 화려한 고급 팰러스 극장 도입, 멀티플렉스 도입, 메가플렉스 도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품질의 영상 화질과 음향 시스템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규모의 경제를 강화해 나갔다. 비디오 시장, 동영상 서비스 등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 산업은 상영관, 즉 기존 플랫폼인 극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의 위협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국내 주요 상영관이 ‘극장 개봉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온라인 및 TV 등을 통해 공급하는 유통 질서 중시, 프로세스의 선순환 논리를 내세우며 ‘옥자’ 상영을 거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옥자’는 국내에서 개봉하자마자 높은 예매율을 보이며 많은 관객들에게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멀티플렉스는 ‘옥자’의 온라인 플랫폼 상영은 영화관을 찾는 기존 관객을 급격히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해 나갈지, 그리고 기존 플랫폼인 상영관의 개선과 혁신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노력은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 동안 TV 및 비디오, DVD, VOD 등의 시장이 도입될 때마다 영화 산업의 쇠락을 논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영화 산업은 과거보다 더 많이 성장했고 영화관 역시 수 십년간 꾸준히 두 자리 수 이상의 증가율을 보여 왔다. 이러한 증가는 사실 올드한 플랫폼인 극장을 단순히 보는 매체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원스톱 토탈 서비스 매체로 바꾼 영화사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영화사들은 투자/배급사 영화의 멀티플렉스 몰아주기, 영화관 좌석 차등 요금제 등을 통한 수익 창출에만 몰두해 왔다. 이런 점에서 영화 ‘옥자’의 온라인 상영은 콘텐츠의 패권을 지니고 수익에만 골몰한 거대 영화사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봐야 한다.

영화 산업이 TV 및 비디오, DVD 및 VOD 등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3D와 4D 스크린을 통한 몰입감 유도, 고화질, 뛰어난 음향 등으로 해당 플랫폼의 경쟁을 물리쳐 오고 패권을 지켜온 데 비해 음악 산업은 이미 LP에서 CD, 카세트테이프, 온라인 음원 등으로 유통 플랫폼이 여러 번 교체되었다. 국내 거대 영화관이 굳건한 위상을 자랑하고 있지만 과거 음악 산업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강남의 주요 레코드 가게는 소리 소문 없이 간판을 내렸다. 이 와중에 지드래곤은 음반을 또 다시 USB로 제작, 음반이냐 음원이냐의 논란을 새롭게 업계에 던져 주었다.

▲ 지드래곤 ⓒ스타데일리뉴스

지드래곤의 USB 앨범은 이미 모든 언론이 보도했듯이 ‘음악이 들어가지 않은 앨범’이어서 음반의 개념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 논쟁까지 가열시켰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해당 앨범을 음원으로 인정한 데 비해 한국저작권협회는 이를 앨범으로 간주하는 등 업계의 엇갈린 평가가 나타나는 이유도 음반과 음원의 미래 진화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고민이나 생각을 깊이 있게 못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런 측면에서 생산자 중심의 기존 일방향적인 음원 공급 프로세스를 거부하고 사용자 또는 수요자 중심의 콘텐츠 유통 혁신을 이번 USB 음반이 시도했다는 점에서 YG의 음악 산업을 보는 눈은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주요 기획사가 여전히 아이돌 중심의 기존 수익 창출에 골몰해 있는 동안 지드래곤과 YG는 음원 유통의 미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CJ E&M과 음원 유통을 바탕으로 마찰을 겪기도 한 점, 그리고 MP3 플레이어 등의 파일 재생기가 이미 스마트폰에 밀려 사라진 점 등을 통해 YG는 플랫폼 변화를 시도할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 회사의 아이콘 지드래곤을 통해 또 한번의 플랫폼 혁신을 실행했다. 과거에도 일부 가수가 USB 형태의 음반을 만들었지만 언제나 시장의 플랫폼 장악은 업계 대표 인물에 의해 좌우된다. 플랫폼 변화가 성공할 경우 음악 산업에 대한 YG의 강력한 패권은 이전보다 더욱 확장되고 보다 강력해질 전망이다.

해외는 이미 글로벌 IT 기업들이 콘텐츠 산업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구글, 애플이 음악 스트리밍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을 바탕으로 플랫폼의 헤게모니가 급속도로 변하는 산업이 바로 문화콘텐츠 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옥자’와 지드래곤의 USB 앨범은 문화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플랫폼을 누가 도입하고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대한 본격적 경쟁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콘텐츠 기업은 이제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글로벌 거대 IT 기업과 플랫폼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이번 신호를 외면하고 기존 수익에만 집착하는 기업은 머지 않아 산업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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