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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09 08:32

<나는 가수다> "리메이크라고 하는 양날의 검"

가수들은 항상 원곡자와도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리메이크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이미 검증된 히트곡이다.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두었던 노래들이다. 당연히 보다 세련된 편곡과 신선한 해석을 곁들여 시장에 내놓으면 손쉽게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그렇게 리메이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리메이크가 있어 왔음에도 그 가운데 원곡과 비교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만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시리즈나 평론가들에게도 대중에게도 인정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저 손쉽게 기존의 히트곡에 기대려고만 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아주 드물게만 원곡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보였을 뿐이었다.

결국은 리메이크라고 하는 그 자체의 문제일 것이다. 리메이크란 이미 한 번 누군가에 의해 불려졌던 노래다. 이미 대중적으로 성공하여 히트곡이라 불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탁월하게 소화해 부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탁월하지는 못하더라도 처음 그 노래를 불렀기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최소한 원곡보다는 나아야 한다. 항상 비교되어진다.

8일 MBC의 일요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 - 나는 가수다>에서 사람들을 경악케 만들었던 임재범의 '빈잔'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였다. 하필 필자가 남진이 부른 '빈잔'을 좋아했기 때문에. 원래의 '빈잔'이란 그렇게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안으로 삭이며 약간의 허세를 곁들여 관조하듯 부르는 노래였다. 그런데 그것을 저리 전혀 동떨어지게 부르고 있으니.

물론 훌륭한 무대였다. 압도했다. 도입부의 북소리에서부터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독특하면서도 박력있는 무대는 내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임재범의 호소력짙은 목소리는 심장을 해머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쿵! 쾅!

그러나 다름아닌 '빈잔'이었기 때문에. 남진이 부른 '빈잔'의 원곡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해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곡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과연 그것이 남진이 부른 '빈잔'의 올바른 리메이크였는가? 원래의 맛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개성을 들려줄 수 있는. 아니 과연 그 노래가 '빈잔'이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철저히 임재범의 무대였다. 남진의 '빈잔'을 리메이크하는 것이 아닌 임재범이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임재범이 남진처럼 안으로 삭여가며 관조하듯 불러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는 짐승이었다. 야수였다. 노래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그리고 그것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원곡을 부른 남진이나 노래의 내용과는 전혀 아랑곳 없이.

그게 문제였다. 정작 임재범의 '빈잔'에는 '빈잔'이 없었다는 것. 물론 임재범이기에 임재범 스타일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임재범은 남진이 될 수 없다. 남진이 임재범이 될 수 없듯 임재범은 오로지 임재범일 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과연 그 노래가 '빈잔'이었어야 했는가?

다른 노래여도 좋았을 것이다. 다른 아무 노래였어도 그 사운드에 그 창법으로 얼마든지 비슷한 무대를 꾸밀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임재범인 동안에는. 완성도는 높았는데 원곡에 대한 배려의 부분에서는 많이 미흡하다. 아니 일부러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남진의 '빈잔'을 부른다는 사전정보와 어우러지며 이 노래를 좋아하던 필자의 감수성을 자극한 것이다.

더구나 하필 원곡을 부른 것이 남진이라는 것이다. 남진은 참 노래를 잘 하는 가수다. 임재범이 대한민국 보컬사에 크게 한 획을 그은 전설이라고까지 불리우는 보컬이기는 하지만 남진의 커리어 또한 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새롭기는 하지만 최소한 '빈잔'에 있어 아직 남진의 목소리를 잊을 정도는 되지 못한다. 계속 떠오르며 비교된다.

임재범의 '빈잔'이 그 놀라운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4위에 머문 이유일 것이다. 더 클래식의 청명함을 제대로 살려내지도 극복하지도 못한 YB의 '마법의 성'이 5위에 머문 것이나, 김건모 특유의 끈적함을 넘어서지 못한 김연우의 '미련'이 6위에 머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소라의 'No1'은 보아의 그것을 잊게 만드는 박력이 있었다. 듣는 순간 더 이상 보아의 노래는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보아의 목소리가 더 나았다는 사람들은 또 둘을 비교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아예 원곡을 잊게 만들거나. 아니면 원곡의 느낌을 더 심화시키거나. 박정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놀라움은 적었지만 그 대신 충실했다. 원곡이 갖고 있는 느낌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감정의 선을 더했다. 최소한 대중들에 익숙했다. 다시 말해 앞서 말한 저들 가수들의 리메이크는 너무 생경했다.

리메이크가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부수고 넘어서거나 아니면 충실하게 채워나가거나. 아예 원곡을 잊을 정도가 아니라면 원곡의 느낌 안에서 최대한 살려내야 할 텐데 그것이 쉽지 않은 작업인 때문이다. 자신의 개성 안에서 원곡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살려낸다. 그것도 그 노래를 불렀던 대단했던 가수들과 끊임없이 비교되며 경쟁하면서. 저 대단한 임재범의 무대조차 그래서 4위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리메이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을. YB역시. 김연우 역시. 그들 역시 탁월한 곡해석력과 표현력을 갖춘 보컬들이니까. 그러나 비교대상이 있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비교대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더욱. 원곡자를 뛰어넘는데 대부분 실패하고 있었다. 다른 가수하고만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리메이크하는 노래의 원곡자들과도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BMK의 경우는 원곡과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창법의 특별함이 대중적으로 그다지 인기 있는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조금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녀는 너무 넘친다. 넘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선곡도 그런 점에서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겠가. 그녀의 말처럼 그다지 대중적이지 못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 할 것이다. 가장 불안한 멤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나저나 고작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으로 살았다니. 그 대단한 가수가 차도 없이. 그러고 보면 지난주 임재범이 입고 나온 의상은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수수했었다. 화려하기만한 연예인들에 비해 가난한 아티스트의 모습이랄까? 그 가난이 임재범의 고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래서 더 특별하게 들린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던 락커. 그러나 이제 가족을 위해서라도 대중의 앞에 나설 때가 되었다.

하루 3시간도 채 자지 못해서 몸살감기에 걸리고, 몸이 불덩이처럼 끓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하기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무대에서 죽겠다며 공연을 강행하는 그것이 임재범일 것이다. 전혀 프로같지 않으면서도 가장 프로다운 아티스트. 문득 이야기를 듣는데 눈이 글썽했다.

아무튼 리메이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나는 가수다>의 또 하나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원곡을 부른 가수들과 비교된다. 원곡이 뛰어난 만큼, 원곡을 부른 가수들이 대단한 만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온전히 무대를 즐기기에는 거슬릴 수 있는 부분이다. 과연 더 나은가? 아니면 못한가? 다른 출전가수들과도 경쟁하면서 원곡자와도 경쟁해야 하니. 실력이야 나무랄 데가 없지만 실력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무대가 좋았음에도 좋았다 말할 수 없는 것. 반하고 말  정도로 벅차오름에도 여전히 한 구석이 찜찜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그렇더라도 어기까지 자기 노래로 만드는가. 나의 남진과 '빈잔'에 대한 애정이 더 컸으리라.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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